증강현실은 말 그대로 이미 존재하는 현실의 온갖 사물과 현상 위에, 그와 관련된 정보를 더해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체험의 폭과 깊이를 ‘증강’해준다는 개념이다. 증강현실에 대한 인기와 관심을 주도하는 것은 영화 <터미네이터>의 눈 같은 인공안구나 헬멧형 디스플레이가 아니라 애플의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폰이다.
당신은 낯선 도시의 다운타운 네거리에 서 있다. 휘황찬란한 간판들이 빼곡하지만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당신의 머릿속은 백지상태다. 아이폰(혹은 구글의 안드로이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는 자세로 주위를 죽 둘러본다. 아이폰의 화면으로 나타나는 도심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마치 거품이 동동 떠오르듯이 카메라가 겨냥한 건물이며 버스, 승용차, 심지어 행인 곁으로 관련 정보가 즉각 표시되기 때문이다.
길 건너편 건물은 1932년에 지어졌으며 높이는 31m이다. 그 건물 1층에 들어 있는 일식집은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영업하는데 그 음식과 서비스에 대한 평판은 별 다섯에 겨우 두 개밖에 안된다. 그 옆 백화점은 한창 세일중이며 할인 폭은 30% 안팎이다. 한편 그 백화점 뒷골목에서는 지난 주 수요일 밤 강도 사건이 벌어졌다. 당신이 선 주변 2km 안에는 15개의 커피숍이 있으며, 당신 왼편으로 조성된 원색의 화단은 전미원예협회로부터 4년 연속 ‘가장 상상력 풍부하게 조성된 화단’으로 뽑혔다고 아이폰이 알려준다.
그뿐이 아니다. 저쪽으로 걸어가는 여성의 이름은 제인, 지금은 아이팟을 통해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를 듣고 있다. 그녀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아이폰을 통해 그녀와 당신 사이에는 5명의 공통된 페이스북 친구가 있음을 알게 된다(온라인으로든 오프라인으로든 당신과 전혀 관련되어 있지 않은 사람의 정보는, 그가 유명인사가 아닌 한 표시되지 않는다. 프라이버시 때문이다).
만일 이러한 일들이 먼 미래의 일처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바로 지금 벌어지는 현실, 아니 ‘증강현실(增强現實)’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가령 위에서 예로 든 건물이며 거리 정보는 위키튜드(Wikitude) 소프트웨어로 얻을 수 있으며, 내가 있는 근처의 친구나 지인에 대한 정보는 GPS 위치정보와 결합한 브라이트카이트(BrightKite) 소프트웨어로 공유할 수 있다. 물론 몇몇 대목은 지나치게 과장되었고,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러나 ‘터미네이터 비전(Terminator vision)’의 시나리오는 더 이상 가망 없는 먼 훗날의 상황이 아니다. <뉴욕타임스>가 2009년에 ‘가장 널리 유포된 화제어’ 중 하나로 증강현실을 뜻하는 ‘Augmented Reality’를 꼽았을 정도다.
현실에 대한 이해와 체험의 폭과 깊이 ‘증강’
증강현실이라고? 현실을 강화한다고? 요즘 부쩍 유행하는 3차원 입체영화를 가리키는 것인가? ‘가상 현실’과 비슷한 것인가? 그 가상현실 기술이 한창 관심을 끌던 시절, 그와 짝을 이뤄 나오곤 했던 헬멧형(Head-mounted) 디스플레이나 ‘입는 컴퓨터’(Wearable Computer)와 뭐가 다르지?증강현실이라는 말을 처음 듣는 이라면 고개를 갸웃거릴 게 분명하다. 당연한 반응이기도 하다. 증강현실은 어떤 면에서 가상현실의 대척점에 서 있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거나 순수한 정보 환경을 만들어내는 가상현실과 달리, 증강현실은 말 그대로 이미 존재하는 현실의 온갖 사물과 현상 위에, 그와 관련된 정보를 더해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체험의 폭과 깊이를 ‘증강’해준다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정보’가 단순한 숫자나 텍스트만이 아니라 2D/3D 컴퓨터 그래픽, 비디오 등 모든 유형의 정보를 포괄하며, 그 정보가 현실의 사물들에 ‘실시간으로(in real-time)’ 더해진다는 사실이다. 증강현실은 거칠게 비유하면 당신의 눈과 당신이 바라보는 사물 사이에 놓인 일종의 필터인 셈이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한 장면을 떠올려보자. 미래로부터 현재로 날아온 벌거벗은 터미네이터가 옷을 구하려고 바에 들어간다. 그가 바의 손님들을 죽 훑어보는 가운데, 그의 눈(모니터) 양옆으로 스캐닝된 이들의 키와 몸무게, 사이즈 등이 실시간으로 표시되면서 누구의 옷이 자신의 몸에 맞을지를 분석해 알려준다. 이 장면과 앞에 예로 든 시나리오 사이에 별반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그의 바이오닉 눈[眼]을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폰으로 바꾸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가장 큰 공통점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증강현실’이라는 개념과 기술이다.
아이폰으로 증강현실의 멋진 신세계 실험
증강현실에 대한 인기와 관심을 주도하는 것은 <터미네이터>의 눈 같은 인공안구나 헬멧형 디스플레이가 아니라 애플의 아이폰(iPhone)으로 대표되는 스마트폰이다. 일반 데스크톱이나 노트북에 버금가는 성능과 기능성을 갖춘 스마트폰 덕택에 이를 이용한 증강현실 툴(흔히 ‘응용 소프트웨어’를 가리키는 ‘앱(App)’으로 불린다)이 앞 다퉈 선보이고 하루가 다르게 그 효용성을 높여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폰을 통해 증강현실의 멋진 신세계를 실험하는 사례는 매우 많다. 단문 블로그(마이크로블로깅) 사이트인 트위터의 검색창에 ‘Augmented Reality’를 넣어보면 쉽게 확인된다. 레이어(Layar), 토털 이머전(Total Immersion), 주나이오(Junaio) 같은 곳이 특히 이 분야에 집중하는 것으로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사례들이다.
버거킹,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 체인점도 이 기술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 버거킹이 증강현실과 조합해 선보인 온라인 광고는 컴퓨터에 달린 웹캠에 1달러짜리 지폐를 비추면 버거킹의 ‘달러 메뉴’ 아이템이 실시간으로 튀어나온다. 맥도날드, P&G, 나이키, BMW 등도 증강현실을 적용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아이폰 이용자들이 큰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보이는 또다른 실험은 수많은 레스토랑과 바, 소규모 비즈니스 등에 대한 리뷰와 평점을 제공하는 옐프(Yelp)라는 온라인 서비스의 증강현실 앱이다. 레스토랑이나 바에 아이폰 카메라를 사진 찍듯 겨냥하면 그곳에서 제공되는 메뉴는 물론, 그곳의 음식과 서비스 평점까지 알려준다.
물론 이 정도만으로 증강현실이 영화 속 <터미네이터>의 수준으로 당장 업그레이드되었다고 말하기는 난망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추세와 속도로 증강현실의 아이디어와 기술이 계속 진보한다면, 멀지 않아 여느 선글라스와 비슷한 디스플레이를 끼고 거의 모든 활동에서 증강현실의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예컨대 모나리자 그림을 바라보면 그 디스플레이에 관련 정보는 물론,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첫 데이트에서 만난 남자(또는 여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대가 바람둥이인지, 혹은 수상한 과거가 있는지 금방 드러날 수도 있다.
현실보다 더 생생하고 심층적인 증강현실이, 실제 현실의 일부로 자리매김할 날도 멀지 않았다.
/글|김상현(북미 전문 에디터) 401fores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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