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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위키리크스가 던진 질문


폭로 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연일 시선을 모으고 있다. 한 건 터뜨릴 때마다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설립자인 줄리안 어산지는 이제 세계적인 명사가 됐다.

위키리크스는 지난 4월 미국 아파치 헬기가 이라크 민간인들을 무차별 난사하는 동영상을 공개한 것을 필두로 연이어 굵직한 '비밀'들을 쏟아냈다. 지난 달 28일엔 미국 외교문건 25만 여 건을 공개했다.

공개된 비밀 문건에선 한국도 거론됐다. 지난 해 가을부터 한국 정부가 북한과 정상회담을 위한 접촉을 벌였다는 사실이 폭로된 것. 위키리스크에 따르면 한국은 정상회담 직전 경제적 지원을 바라는 북한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민감한 외교 문건이 공개되면서 미국 정부는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사실상 전 세계를 사찰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때문이다.

반면 독자들은 모처럼 쏟아지는 시원한 뉴스에 꽤 흥이 난 모양새다. 기존 언론에서 좀체 접하지 못하던 '신선한 소식'에 귀를 쫑긋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후폭풍도 만만치 않다. 줄리안 어산지의 은행 계좌를 차단한 스위스 은행 포스트파이낸스와 후원 계좌를 막은 페이팔이 사이버 공격을 당했다. 어산지를 성폭행 혐의로 기소한 스웨덴 검찰청 홈페이지도 사이버 공격으로 다운됐다. 위키리크스에 대한 기부금 결제를 중단한 마스터카드와 비자의 웹사이트도 예외 없이 공격당했다.

'전통 언론'의 영역에 자리잡고 있는 기자에게 이런 상황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뭔가 뒷맛이 개운치 않다.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사이 누군가 내 일을 '대신한' 느낌 때문이다.

물론 저널리즘의 본령이 '폭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밀 문건을 입수해서 폭로하는 것만이 특종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불편한 건 언론에 산업 논리가 강하게 적용되면서 '야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권력의 힘 때문이든, 아니면 자본의 위세 때문이든,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사이 위키리크스가 그 빈자리를 메운 듯한 느낌 때문이다.

'공론장의 구조 변동'이란 책으로 유명한 하버마스도 일찍이 이런 점을 잘 지적했다. 17, 8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카페, 살롱에서 공론장의 전형을 찾았던 하버마스는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공론장이 재봉건화됐다고 주장했다. '가치 있는 공적 담론'이 사라진 곳에 자본의 이념과 가치를 전파하는 담론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비판이다.

줄리안 어산지가 성폭행 혐의로 체포된 뒤 촘스키를 비롯한 많은 미국 지식인들이 구명활동에 나서고 있는 모양이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유력 언론들도 '어산지를 위한 변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위키리크스 파문은 전통 언론들에도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줬다. 어떤 칼럼니스트의 지적처럼 "과연 언론들이 거짓말을 거짓말이라고 지적하고 있는가?"란 질문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들었다.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뉴욕타임스의 사시는 '보도할 가치가 있는 모든 뉴스를 다룬다('All the news that is fit to print).'는 것이다. 대중들이 위키리크스에 환호하는 이 시대에, 우리 스스로 '보도할 가치가 있는 뉴스'의 범위를 자꾸만 좁히고 있는 것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김익현 통신미디어 부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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