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원천 기술 업체 퀄컴이 중국에 이어 2번째로 한국에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한다. 퀄컴은 지금까지 국내 휴대폰 업체, 이동통신사와 함께 제품 개발에 대한 협력은 계속 해 왔지만 신 기술을 연구하는 리서치 부문의 시설이나 인력은 전무했다.
1일 방한한 폴 제이콥스 퀄컴 회장은 "한국 휴대폰 업체와 이동통신사의 기술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라며 "차세대 모바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한국 업체와 긴밀한 공조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연구개발 센터를 설립키로 했다"고 밝혔다.
퀄컴은 중국에 이어 2번째로 한국에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한다. 상용화 이전 기술 개발도 함께 나서겠다는 것. 아직 구체적인 운영 방안이나 투자 금액 등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퀄컴은 시설과 인력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에 투자하는 새로운 시도라고 자평했다.
업계는 퀄컴이 투자에 나선 이유로 삼성전자와 LG전자와의 관계 개선을 꼽고 있다.
퀄컴은 CDMA 이후 3세대(3G) WCDMA 칩셋 시장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모바일TV 기술인 '미디어플로'와 4세대(4G) LTE 칩셋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미국 800여개 지역 방송사 등이 창설한 '오픈 모바일 비디오 연합(OMVC)'의 모바일 디지털 TV 표준을 공동 제정한 바 있다.
두 회사는 방송 신호를 수신하는 칩 기술을 하나의 모바일 디지털 표준인 ATSC-M/H로 완성했다. 미국 시장에서 1위, 2위를 나란히 차지하는 휴대폰 업체가 칩 기술 표준화를 위해 손을 잡은 것.
지난 1월 미국 최대 가전쇼 'CES 2010'에서 발표된 이 기술은 미국 방송사들이 별도의 주파수를 할당 받지 않고 기존 주파수를 사용해 모바일 TV를 구현한 기술이다. 때문에 무료로 모바일TV 기술이 가능해진 것.
미국에는 그동안 국내와 비슷한 방식인 DMB와 퀄컴의 미디어플로가 모바일TV 기술로 채용됐지만 사실상 가입율이 2%에 불과해 사장된 서비스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ATSC-M/H 기술이 새로운 물꼬를 틀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통신 칩셋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시장에서도 퀄컴을 위협하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4세대(4G) 유력 통신 기술인 롱텀에볼루션(LTE) 핵심 기술인 베이스밴드 칩셋을 완성한 상태다. 삼성전자는 3세대(3G) WCDMA용 베이스밴드 칩셋도 개발한 적은 있지만 상용화 되지 않았다. 퀄컴과의 협상이 어려워질 경우 대안으로 사용하기 위해 개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LTE 칩셋 시장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삼성전자가 개발한 '칼미아'는 해외 업체들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이미 상용화된 단말기로 출시돼 유럽에서 세계 최초 LTE 상용 서비스에 사용됐다. LG전자 역시 최신 LTE 표준에 따라 베이스밴드 칩셋 개발을 마치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칼미아'를 통한 통신 칩셋 비즈니스에도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아직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통신 칩셋 비즈니스에 나설 수도 있다"며 "현재로서는 우리와 LG전자만 LTE 베이스밴드 칩셋을 공급할 수 있는 상황으로 업계의 고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퀄컴이 의욕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AP 스냅드래곤 역시 암초 중 하나다. 암(ARM) 계열 CPU가 모바일 기기에 채용되면서 TI, 프리스케일 등의 업체들이 다양한 제품을 내 놓고 있는데다 삼성전자까지 자사 스마트폰에 직접 개발한 AP를 사용하며 독자 노선을 걷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옴니아2'에 직접 개발한 속도 800MHz의 AP를 사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1GHz 속도의 AP 개발 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에도 삼성전자의 AP와 관련 기술이 탑재된다.
이런 상황에서 퀄컴 역시 국내 업체들과의 관계가 기존 협력에서 본격적인 경쟁 구도로 접어들자 연구개발 센터를 통해 한국 업체 끌어안기에 본격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 관계자는 "최근 퀄컴이 어떤 과제를 공동 연구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서를 보내온 바 있다"며 "예전 CDMA 시절 퀄컴과 좋은 성과를 냈듯이 연구개발 센터를 통해 낼 수 있는 시너지 효과도 클 것"이라고 말했다.
명진규기자 almach@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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