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국무총리가 사실상 '세종시 백지화'를 공식화하면서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한나라당 내부 갈등이 점차 격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정 총리는 전날(4일)에 이어 5일 대정부질문에서도 "행정기관 이전보다는 기업위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며 세종시 수정추진 정면돌파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 또한 '효율성'에 방점을 찍고 수정론에 힘을 실어줬다.
반면 당내 최대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원안고수' 입장을 견지하면서 친박계 의원들도 가세, 정부의 '수정론'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는 이 대통령이 그간 강조해온 '실용'과 박 전 대표의 '원칙'이 첨예하게 맞붙는 형국이다.
이날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정 총리는 세종시 문제를 실용적 측면에서 접근했고, 그에 따른 수정 방향을 제시했다.
앞서 정 총리는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세종시의 현재 자족률이 6,7%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족기능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고, 30일에는 세종시 현장을 방문해 기업과 연구소 유치 의사를 밝히는 등 세종시를 대학과 기업,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한 '교육과학산업 도시' 구상을 제시한 바 있다.
이날 대정부질문에서도 정 총리가 "초기 강력한 인구 유입과 고용 효과를 위해서는 행정기관 이전보다 기업 위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며 "부처 분산시 (공무원들의)잦은 출장과 국가위기관리, 통일 후 대비 등에 문제가 있다"고 효율성을 강조했다.
특히 정 총리는 이 자리에서 "세종시 비효율의 핵심 문제 중 하나가 행정부와 입법부를 멀리 떼어놓는 것"이라며 "행정부처 분산은 위기 관리상 심각한 차질이 발생할 수 있어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즉, 기존안의 핵심인 행정부처 이전은 백지화 또는 최소화하는 대신 기업과 대학을 유치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
이는 전날(4일)이 대통령이 "(세종시)대안의 기준은 첫째 국가경쟁력, 둘째 통일 이후의 국가미래, 셋째 해당지역의 발전"이라며 "이같은 점을 염두에 두고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 맥이 닿아 있다.
반면, 박근혜 전 대표는 비롯한 친박계, 야당들도 원칙론을 강조하며 정부를 몰아붙이면서 오는 극단의 대치를 예고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세종시 수정이 '원칙 후퇴'라는 입장이다. 효율성은 둘째 치고라도 대국민약속을 한 이상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
박 전 대표는 세종시 논란과 관련해 연이어 '원안처리'를 고수하고 있고, 최근 정 총리의 설득 언급에 "(세종시 수정 추진이 갖는 의미를)정 총리가 잘 모르시는 것"이라며 "의회 민주주의 시스템 하에서 대국민 약속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지 잘 모르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누구보다 '원칙'을 강조해온 박 전 대표로선 세종시 수정은 자신의 '원칙'을 뒤집는 것이나 다름없다.
5일자 중앙일보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정 총리의 '세종시 수정 로드맵' 발표 이전 측근들과 만난 자리에서 원칙과 국민 약속을 무시하는 당내 기류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신문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당 대표 시절)공천을 할 때 부정부패와 비리에 대해서는 100만원만 나와도 배제를 하고 내부 감찰단을 만들어 의혹이 나오면 검찰에 고발까지 했다"며 "그 이후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박 전 대표는 또 "한나라당이 개혁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했던 것이 여러 부분에서 희석되고 국민과 약속도 소홀히 하는 당이 된다면 또 다시 지난번(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직후)처럼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박 전 대표가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약속을 할 때는 정말 잘 만들도록 공약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한 것 아니냐"며 지난 7월 "대통령 양심상 세종시 원안 그대로 하기 어렵다"고 한 이명박 대통령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했다고 전했다.
친박계도 이명박 정부의 수정론에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서면서 계파 갈등 양상이 본격화 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 출신이 유정복 이날 오전 한 라디오에 출연해 "세종시에 대한 효율적, 비효율적이라는 상대적 효율성이 대국민 약속이나 민주주의 기본원리보다 더 큰 가치가 될 수 없다"며 "교각살우(矯角殺牛)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한선교 의원도 "세종시법에는 행정기능 중심의 복합형 자족도시, 쾌적한 친환경도시, 안전성을 갖춘 인간중심도시, 문화와 첨단기술이 조화되는 문화정보도시 등이 다 들어 있다"면서 "이것을 플러스 알파로 보완하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세종시를 놓고 여권이 '실용'과 '원칙'이 맞붙고 있지만 관건은 국민여론의 향배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의 '원칙'이 힘을 얻고 있는 모습이지만 정부의 세종시 대안 마련 과정에서 세종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증폭될 경우 자칫 '원칙론'에 상처를 입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민철기자 mc071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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