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재보선 지역인 경남 양산은 선거를 한달 이상 남겨놓은 만큼 아직까지는 차분한 분위기다.
한나라당 박희태 전 대표와 김양수 전 의원, 최근 입당한 유재명 전 연구원, 야권 후보 등 각 후보자들 선거사무소 건물에 내걸린 현수막이 재선거 지역임을 보여주고 있을 뿐,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시민들은 바쁜 일상에 여념에 없었다.
경남 양산 초입부터 시야를 제압하는 것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다. 양산과 인접한 부산과 울산으로 출퇴근 하는 시민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만큼 양산 지역에는 순수 양산 토박이보다는 유동인구가 많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 때문인지 양산에 거주하는 원주민과 외지인들간 투표 성향이 다소 다른 것으로 나타나 관심을 끌었다. 기자가 지난 9일부터 10일까지 이틀간 30여명의 현지 시민들과 만나 대화를 나눈 결과 이같은 차이점이 확연히 드러났다.
재보선 특성상 선거 무관심층이 높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박희태 전 대표의 출마 이유, 김양수 전 의원 연고, 송인배 전 비서관의 출마와 문재인 전 실장의 출마 가능성 등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나타내 재선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음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직장인, 자영업자를 비롯해 선거에 무관심 층인 주부들도 대표적인 후보자들의 면면을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중부동에 위치한 한 아파트 주민인 박 모씨(주부, 47세)는 이번 재선거에 대한 질문에 "잘 모른다"면서도 "사실 박희태 전 대표가 국회의장을 하고 싶어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김양수 전 의원은 18대 때 공천을 받지 못해 이번에 나오는 것 아니냐. 아직은 누구를 꼭 찍어서 말하지 못하지만 일단 지켜와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명쾌하게 답했다.
박 씨는 '선거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는 질문에 "그 정도는 다들 알고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며 "하도 시끄러워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말했다.
17대, 18대 총선 무연고 공천과 앞선 지방선거에서 오근섭 양산시장의 무소속 출마, 허범도 전 의원의 선거법 위반 의원직 상실 등 그동안 양산 공천과 선거 과정이 무난하지 않았던 것이 시민들의 관심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첫 선거이면서 양산이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 봉화와 인접해 있다는 점, 또 박희태 전 대표가 출마하고 문재인 전 노대통령 비서실장 등 거물급 정치인들의 출마가 거론된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더라도 이러한 관심도가 재선 투표율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예측하기 힘든 실정이다.
양산 원주민과 외지인 즉, 신도시 주민 사이에서는 확연한 성향 차이를 보이고 있다. 양산 원주민은 타지역 후보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했다. 반면, 신도시 주민들은 후보의 '지역발전 공약'에 따라 외지 후보도 수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양산 인근 시장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최 모씨는 양산 토박이다. 최 씨는 "그동안 양산 출신 후보보다는 타지역 후보가 공천을 못받아 이쪽 양산으로 몰려왔다"며 "박희태, 김양수 다 똑같은 사람들 아니냐"고 불만을 나타냈다.
최씨는 박희태 전 대표와 김양수 전 의원 등을 거론하며 "우리 동네가 낙하산이나 공천에서 떨어진 사람들만 오는 그렇게 쉬운 곳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날을 세웠다.
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심모씨(남, 35세)는 "다들 양산을 웃습게 아는 모양"이라며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심씨도 지역 토박이다.
또 다른 원주민인 김모씨(자영업, 50세)는 "우리 동네 사람을 찍으려고 해도 후보가 없다"며 "매번 공천 때문에 무소속으로 나가고, 결국 외지인을 공천하니깐 이렇게 되는 것 아니냐"고 허범도 전 의원의 선거법 위반과 오근섭 양산시장, 김양수 전 의원간 갈등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이처럼 타 지역 후보의 공천에 불쾌감을 가지면서도 이들은 '영남=한나라당'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최씨는 "그래도 한나라당을 찍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한나라당 공천받은 사람을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원주민은 "그래도 박희태 전 대표가 당 대표도 했고, 그런 힘있는 사람을 찍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특히 이들은 박 전 대표가 국회의장을 희망하고 있고, 2년 이후에는 국회의원을 장담할 수 없다는 인식을 보여줬다.
김양수 전 의원에 대한 호평도 나왔다. 택시기사를 운영하는 조모씨(39)는 "김 전 의원이 17대에서 우리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했고, 정책도 많이 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외지인이라도 한번 지역에서 해본 김 전 의원이 차라니 낫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반면, 신도시 주민들은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부동산중개소를 운영하고 있고, 부산 출신이라는 이모씨(남, 51)는 "양산 사람이 되는게 낫겠지만 지역을 발전시킬 사람이 누구냐가 중요한 것 아니냐"며 "외지인도 큰 상관이 없다. 박희태면 어떻고 김양수면 어떤가"라고 반문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주부는 "박 전 대표가 왜 나오는지도 알겠고 김 전 의원도 있고 야당 쪽에서는 송인배 전 비서관을 내미는 것 같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선거가 불붙으면 그때 후보를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신도시에서 수퍼마켓을 운영하는 한 여성(50대)은 "대충 후보들을 알고 있지만 자세한 것을 모른다"며 "후보들의 공약에 따라 생각을 해보겠다"고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
회사원인 조모씨는 조심스레 "젊은 층에서는 한나라당을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송인배가 나오면 좀 약하지만 문재인이 나올 경우 한나라당은 힘들어질 수 있다"고 야당 후보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20대 후반인 한 대학생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 학생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질문에 "처음 분위기와는 많이 다르다"며 양산이 서거 정국에서 다소 벗어났다는 점을 설명한 뒤 야권에서 문재인 전 실장을 내세울 경우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면 문재인을 찍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도시에 거주하는 한 직장인은 "지금 양산에서는 기존의 정치인이 아닌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며 "만약 신선하고 새로운 인물이 나온다면 투표 성향이 바뀔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견해를 나타냈다.
또 그는 "영남이 한나라당이라고 하지만 주변 사람들도 이제는 꼭 한나라당만을 요구하지 않는다"면서도 "한나라당이 불리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유리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택시기사도 '새로운 인물'이 나설 경우 한나라당 후보 당선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양산 신도시 주민들은 여야를 넘나드는 등 상당한 유연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이와는 달리 한나라당을 고집하는 젊은 층도 눈에 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한 20대 젊은이는 "그래도 한나라당 아니겠는가"라며 "한나라당으로 나오는 후보를 찍겠다"고 지지의사를 표명했고,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젊은이도 "보수 성향의 인물이 될 것 같다"고 한나라당에 손을 들어줬다.
물론 양산 일부 현지인들의 견해가 양산 시민들의 전체 의견을 대변할 수 없지만 양산 원주민과 외지인들 사이에서는 분명한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한나라당 후보=당선'이라는 등식은 옛말로 느껴진다.
무엇보다 한나라당 공천 향배에 따라 무소속 출마자가 속출할 것으로 보이고, '문재인 카드'가 아직 사장되지 않아 양산 선거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흐를 것으로 전망된다.
양산=민철기자 mc0716@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