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 KT 회장이 뭔가 착각한 게 아닐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개인-홈-기업 등 3대 사업부문의 마케팅 전략 책임자를 모두 여성으로 채웠을 때다. 개인고객부문의 양현미 전무, 홈고객 부문의 송영희 전무, 기업고객 부문의 이영희 전무 등이 그들이다. 그 중 양 전무와 송 전무는 각각 신한은행과 LG생활건강 출신이다. 과거 경력이 KT의 주력 사업인 방송통신과는 거의 무관하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었다. 이 회장은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알고나 있는 걸까. KTF 합병 등 너무 숨 가쁘게 혁신 조치를 취하다 보니 뭔가 오버한 것 아닌가. 통신판을 아는 이라면 그런 의문을 가졌을 법하다.
실제로 그 자리는 회사 매출과 직결된 중요한 곳이다. 그 자리는 특히 치열한 전략전술, 과감한 베팅 능력, 물러서지 않는 두둑한 배짱 등 고유의 남성성이 요구되던 자리다. 그만큼 통신시장의 마케팅은 거칠고 전쟁과도 같다. 그런데 여성이라니…, 그것도 세 명 가운데 두 명은 통신과 거의 무관한 경력을 가진 여성이라니…. 너무 낯선 발상이다. 그 진의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발상이 낯설기 때문에 독법도 새로워야 한다. 그렇다면 이 회장의 고민, 즉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요체는 뭘까.
순전히 짐작이지만 ‘돈 마케팅’과의 단호한 결별이 아닐까. 이 회장은 KT나 국내 통신시장이나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악습(惡習)으로 ‘돈 마케팅’을 지목한 듯하다. 실제로 국내 통신시장은 업체마다 연간 수조원의 마케팅비를 융단폭격처럼 투하해왔다. 돈으로 고객을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회장은 이 관행이 업계를 공멸시키는 지름길이고, 어떻게든 바꿔야 하는 악습이라고 본 것 같다.
그 방법론이 이를 테면 ‘여성성을 강조한 마케팅’이다. “고객의 마음은 여성이 더 잘 읽는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돈 마케팅’이 중심인 시장판을 서비스와 상품 중심의 본원적 경쟁으로 바꾸는 게 중요한데 그 적임자로 기존 판에 덜 물든 외부의 여성 마케팅 전문가를 선택한 셈이다. 소비자 요구를 섬세하게 파악해 서비스에 신속히 반영하는 마케팅 프로세스를 재정립하는 것도 새 몫이다.
이번 인사가 그처럼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진 만큼 ‘여성 3인방’ 선택 과정에 이 회장이 상당히 공을 들였다고 봐야 한다. 개인고객부문 양현미 전무를 영입하면서 특별히 그 의미를 강조한 점이나, 홈고객 부문 송영희 전무와 기업고객 부문 이영희 전무를 임명할 때도 그 자리를 오랫동안 공석으로 둔 채 숙고한 점이 그렇다. 모험적인 시도인 만큼 차분하게 오랫동안 살핀 결과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3대 사업부문 마케팅 전략 책임자가 모두 여성인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오랜 생각 끝에 단행한 용인술이다.
더 눈여겨 볼 것은 3대 사업부문의 일관된 조직 구조다. 사령탑은 김우식 개인고객부문 사장, 노태석 홈고객부문 사장, 이상훈 기업고객부문 사장 등이다. 과거 통신시장에서 현장 경험이 풍부한 백전노장의 실무형 임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 밑에 각각 여성 전략가를 뒀다. 잘 꾸려진 가정의 부와 모의 조화처럼 절묘한 구조다. 견제와 조화를 통해 안정된 변화와 혁신을 기대한 듯하다.
이 회장의 뜻은 그러하되, 그 뜻이 구현되는 것은 차후 문제다.
우선 조직 내부에서 여성 3인방이 새로운 리더십을 확보하는 게 일차적이다. 어찌됐건 기존의 발상과 조직을 혁신해야 하는 숙제가 그들에게 있고, 그것은 리더십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또 소비자가 피부로 느끼는 가시적인 서비스 혁신이 뒤따라야 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5분 만에 출동하는 ‘애니카’ 서비스가 자동차 보험 시장의 혁신을 가져왔듯이 통신 영역에서도 그에 맞먹는 구체적인 서비스 혁신이 나와야 한다. 그게 무엇일지가 향후 최대 관심사고 소비자 민원에 귀기울일수록 답은 먼저 나올 것이다.
이 두 조건이 성숙될 때 비로소 이 회장의 혁신은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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