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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오바마와 사이버 모욕죄


4년 전 미국 대선에선 블로그가 화제였다. 그리고 그 열풍의 진원지는 민주당 경선 주자로 나선 하워드 딘이었다. 물론 딘의 뒤에는 블로그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딘사모'가 있었다.

당시 인터뷰했던 한 블로그 전문가는 '딘사모'의 힘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그 전해 한국 선거 판도에 큰 영향을 미쳤던 노사모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인터넷 강국 한국에 대한 강한 경외심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4년. 이번엔 민주당 대선 후보인 버락 오바마가 또 다시 IT 선거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오바마는 단순히 블로그 활용하는 차원을 넘어 아이폰과 게임까지 적극 껴안고 있어 4년 세월의 힘을 실감케하고 있다.

오바마는 이달 초 '오바마 '08: 공식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이란 소프트웨어를 내놓으면서 IT 선거운동의 불을 지폈다. 아이팟 터치에서도 작동하는 이 소프트웨어는 각종 이슈에 대한 오바마 후보의 입장을 비롯해 사진, 동영상 등이 포함돼 있다. 특히 위성항법장치(GPS)를 활용해 가까운 곳에 있는 오바마 선거 사무실을 찾을 수 있도록 해 온오프라인 선거 운동을 자연스럽게 결합시켰다.

오바마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기타 히어로3'를 비롯해 '인크레더블 헐크' 'NASCAR 09' 'NBA 라이브08' 'NFL 투어' 등 마이크로소프트(MS)의 엑스박스 라이브용 게임 18개에 대형 홍보물을 설치했다.

또 일렉트로닉 아츠(EA)의 자동차 경주 게임 '번아웃 파라다이스' 속에 대형 선거 광고판을 만들었다. 게임 속에서 자동차를 몰면서 거리를 달리는 게이머들이 자연스럽게 오바마의 선거 광고판을 볼 수 있도록 한 것.

외신들에 따르면 광고판에는 오바마가 연설하는 모습과 함께 오바마 홍보 웹사이트인 '변화를 위한 투표(www.voteforchan ge.com)' 주소까지 나와 있다. 가상 세계에까지 선거 유세에 본격 나선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4년 전 블로그란 뉴미디어를 껴안았던 하워드 딘이 '콘텐츠 부족'으로 탈락했던 점을 감안하면 오바마의 IT 선거 운동은 눈이 부실 정도다. 이 정도 분위기면 또 하나의 삶으로 각광받고 있는 '세컨드라이프'에서 직접 선거 유세를 하겠다는 얘기까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불과 4년 사이에 뛰어난 IT 선거 운동을 선보이는 미국 정계의 모습을 보면서 제 자리 뛰기를 하고 있는 우리 현실을 떠올리게 됐다. 화려한 IT 기술로 무장한 미국의 선거 운동을 지켜보면서, 규제 일변도로 흐르고 있는 우리들의 인터넷 공간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각종 규제로 제자리 걸음을 하는 우리와 달리 미국은 IT 세계와 정치를 자연스럽게 결합하고 있는 듯 해서다.

여기서 잠시 우리 상황을 되짚어 보자.

지난 해 대선은 사상 최고의 IT 전쟁터가 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아날로그 대결'에 머물고 말았다. 화려한 논쟁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됐던 인터넷 공간은 '겨울 공화국' 신세를 면치 못했다. 각종 규제 때문이다.

요즘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른 사이버 모욕죄는 또 어떤가? 한 인기 여배우의 자살과 댓글을 곧바로 연결시키면서 아예 언로 자체를 막아버리려는 시도에선, 유신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듯 해 두려운 생각까지 든다.

물론 댓글 공간이나 인터넷 게시판의 폐해가 적지 않다는 점은 모르는 바 아니다. 무분별한 악플러들이 내뱉는 말의 홍수에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고 있다는 점도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법으로 찍어누르려고 한다면, 도대체 기술 발달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바마가 게임 속에 선거 광고판을 설치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4년 전 우리와 비슷했던, 아니 어떤 면에선 우리를 보고 많은 것을 본받으려 했던 미국이 저만큼 앞서가는 동안, 우리는 제자리 걸음을 하다 못해 뒷걸음질 치고 있는 듯해서다.

인터넷 같은 신기술을 활용하다 보면 시행착오를 겪게 마련이다. 특히 한 발 앞서 도입하다보면 어느 정도의 혼란과 역기능은 필요악이다. 이럴 진대, 어찌 시행착오가 있다고 해서 지금까지 발전해 온 것들을 '없던 일'로 할 수 있겠는가?

멀리 바다 건너에서 들려온 단신 하나에 지나치게 오버한 듯 해 조금 쑥스러운 기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긴 호흡 강한 걸음'으로 차분하게 전진하는 그들의 모습이 부러운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뉴미디어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은 4년 세월의 더께 속에 감춰져 있는 한국과 미국의 상황 변화에 좀 더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그게 뉴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올바른 자세가 아니겠는가?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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