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개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헌혈금지약물을 투여받은 50만명이 넘는 국민의 인적사항을 대한적십자사에 제공토록 해 논란이 일고 있다.
태아 기형 등 부적격 혈액 수혈로 인한 감염사고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였다지만, 혈액관리법에 근거 조항이 없는 데다 개인의 자기정보 통제권을 인정한 헌법 정신에 반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의 요청으로 보건복지위원회는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부터 지난 3월 23일부터 8월 31일까지 5개월간 헌혈금지약물을 투여받은 56만4천453명의 환자 인적사항을 제공받아 적십자사에 제공토록 했다.
그리고 적십자사의 헌혈현황과 대비시킨 뒤, 손숙미 의원은 이를 근거로 지난 6일 산모가 수혈할 경우 태아 기형을 일으킬 수 있는 약물과 B형 간염 우려 약물, 항암제 치료제 등 감염의 위험이 있어 법으로 헌혈을 금지시키고 있는 약물 복용자 2천546명의 혈액이 2천990건 채혈됐다고 발표했다.
혈액안전에 대한 '경종'의 의미였다고 하지만, 국회 의원이라고 해서 개인 동의나 관련 법적 근거없이 민감한 개인정보(의료정보)를 수집하거나 중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회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부터 개인정보들을 적십자사에 제공토록 하면서 해당 환자들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았고, 현행 혈액관리법에도 심평원 자료를 적십자사에게 줄 수 있는 조항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사안은 행정안전부 내 개인정보보호심의회에서 심의 당시에도 문제점이 제기돼 부결됐던 것으로 확인 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심의회 A 위원은 "당시 심의회에서는 단지 헌혈금지 약물을 복용했다는 이유만으로 헌혈에 참여하지 않은 일반 국민의 개인정보를 적십자사에 주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봤다"고 밝혔다.
개인정보보호심의회 B 위원은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혈액관리법에 근거도 없는 데 헌법을 위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국회에서의 증언및 감정등에 관한법률이 사생활의 자유로 표현되는 적극적인 권리,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을 규율한 헌법 제17조를 위반할 근거는 못된다"고 말했다.
헌법 제17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의 침해를 받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현행 혈액관리법에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보유한 헌혈금지약물 투여 환자 정보를 적십자사에 제공할 근거가 없다.
올 해 2월 28일 제정된 혈액관리법 대안에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정보를 적십자사(혈액원)가 이용할 수 있지만, 이 법률은 내년 3월 28일 공포된다.
이에대해 손숙미 의원실 관계자는 "자료 수집은 증언및감정법에 의거해 동료의원 10명의 서명을 받은 뒤 상임위원장 직인을 받아 이뤄졌으며, 개인정보를 유출한 게 아니라 심평원에서 자료를 받아 그대로 적십자사에 넘긴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또 "행안부내 개인정보보호심의위의 결정은 잘 못됐다"며 "헌혈금지약물이라는 게 건선치료제(무좀치료제)나 여드름 치료제 투약 사실 등 투약받은 개인에게 민감하다기 보다는 수혈받은 사람에게 감염사고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입법를 담당하는 국회의원들이 법적 근거없이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수집했다는 평가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이다.
개인정보심의위 B 위원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보유한 헌혈금지약물투여자의 정보를 혈액관리에 이용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동의받고 이용하라는 것"이라며 "심평원의 개인정보 수집 목적은 병원이나 약국의 보험급여 정산을 위한 것인데, 국회의원이라 해서 이를 수집목적과 무관하게 개인 동의도 받지 않고 법적 근거도 없이 활용해서는 되겠냐"고 말했다.
한편 손숙미 의원은 오는 24일 개인정보심의위 위원장(현 복지부 차관)을 국감 증인으로 부를 예정이어서, 혈액관리의 안정성 확보와 개인정보보호 사이의 논란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김현아기자 chaos@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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