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전화(VoIP)를 사용하면 지불해야 하는 망 이용대가와 관련해 업계가 시끄럽다.
KT나 하나로텔레콤과 같이 '갑'의 입장에 있는 인터넷망 제공업체(ISP)들은 법으로 정해진 망 사용대가를 빨리 정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을'의 위치에 있는 별정통신사업자들은 못내겠다고 버티고 있다. 정부가 중재안까지 내놨지만 소용이 없다.
망이용대가 제도는 인터넷전화 사업자가 가입자당 월 1천500원을 ISP에게 지불하라는 게 요지다. 인터넷전화를 제공하기 위해 인터넷망의 일정 트래픽을 항상 점유하고 있으므로 그만큼의 돈을 내야 한다는 것.
1천500원이란 금액이 나온 근거는 초고속인터넷의 월 사용료(약 3만원)에 5%를 곱해서 나온 수치다. 이 금액에 대해 지난해 별정통신사업자와 기간통신사업자들이 합의했고 정부가 고시안까지 발표했다.
이 합의로 정산을 하려고 보니 가입자의 기준이 모호했다. 몇개월째 논쟁 끝에 작년 말 가입자의 기준을 070 사용자로 하는데 다시 합의했다. 그런데 070 가입자 중에는 소프트폰 사용자도 있다. 기간통신사업자들은 소프트폰 사용자까지 망이용대가 정산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이 다시 제기됐다.
이처럼 망이용대가와 관련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첫 단추부터 잘못 뀄기 때문이다.
인터넷전화에도 착신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정부는 070이라는 착신 번호를 부여했다. 인터넷전화 착신 서비스를 위해서는 인터넷전화 사업자와 KT 등 기간통신사업자간의 상호접속이 필요했다.
그런데 기간통신사업자들은 인터넷전화가 트래픽을 점유하고 있는 것에 대한 망이용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접속을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망이용대가는 인터넷전화가 기존 유선시장을 잠식할 것을 두려워한 기간통신사업자들이 짜낸 묘안이었다.
기간통신사업자들은 처음에는 가입자당 4천원을 요구했다. 별정통신업체들은 500원을 적정수준이라고 봤다. 수개월간 논쟁이 지속됐다. 정통부는 할 수 없이 1천500원의 중재안을 내놨다.
한시라도 인터넷전화 착신서비스가 급했던 별정통신사업자들은 가입자당 1천500원에 합의한 끝에서야 기간통신사업자의 망에 접속할 수 있었다. 가입자의 구체적인 기준도 차후에 논의하기로 했다.
이처럼 '1천500원'이란 금액은 과학적인 근거에서 보다는 '정책적 판단'에 의해 만들어졌다. 정말로 인터넷전화가 초고속인터넷 사용량의 5% 가량을 차지하는지 트래픽에 대한 정확한 조사도 없었으며 다른 서비스와의 형평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도 없이 진행됐다.
2년마다 진행되는 기간통신사업자간의 상호접속료 산정을 위해 정통부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의뢰해 수개월동안 사전 조사를 진행한다. 그것도 모자라 사업자간 의견 조율 기간도 상당하다. 이때 치열한 로비전이 펼쳐진다.
그런데 인터넷전화 망이용대가와 관련해서는 그러한 조사가 있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당연히 인터넷전화가 초고속인터넷 대역폭의 5%를 점유한다는 것에 대해 논란이 존재하고 있다.
별정통신사업자들은 이제라도 망이용료 산정 기준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간통신사업자들은 먼저 정산부터 하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통부는 일단 법을 집행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2007년까지 망이용대가 제도 개선 작업을 진행하겠다고 한다.
법을 지켜야 하는 정통부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정부 스스로 망 이용대가 제도 개선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다면 지금은 원칙보다는 융통성을 발휘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법은 존중되고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여러 유예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망이용대가 제도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시장의 약자를 더욱 궁지에 모는 게 정부의 역할은 아닐 것이다.
잘못 꿰어진 단추는 과감하게 풀어서 처음부터 다시 꿰는 수 밖에 없다. 억지로 맞추다가는 거울 속에 우스꽝스러운 자신의 모습만 비춰질 뿐이다.
강희종기자 hjkan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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