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공간에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웹'이란 단어에 '2.0'이란 꼬리표가 붙은 웹2.0은 인터넷 생활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꿔놓을 기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04년말 미국 땅에서 처음 고개를 든 웹 2.0은 불과 1년 여만에 한국 정보기술(IT)업계의 영혼을 사로잡아 버렸다. 1990년대 말을 강타한 '닷컴 붐'을 무색케 할 정도다.
특히 최근 들어선 '웹 2.0'이란 이름만 갖다 붙이면 기본적인 '장사'는 될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실제로 지난 13, 14일 양일간 서울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개최된 '차세대 웹 통합 국제 컨퍼런스(NGWeb 2006)'에는 수 천명의 관람객들이 몰려들면서 웹 2.0에 대한 최근의 뜨거운 열기를 실감케 했다.
◆ 닫힌 웹에서 열린 웹으로
'2001년 닷컴 버블 붕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존속 발전하고 있는 구글, 아마존, 이베이의 강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제기된 개념이 바로 웹 2.0. 이 개념을 처음으로 내건 데일 도허티 오라일리 부사장은 웹 2.0을 '플랫폼으로서의 웹(The Web as Platform)'이란 말로 정의했다.
한 마디로 웹2.0은 데스크톱이 아니라 웹이 지배적인 플랫폼이 되는 구조다. 플랫폼 환경의 최대 장점은 일단 만들어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참여해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 플랫폼 중심 구조로 전환될 경우 정보 독점정책을 고수하는 기업이나 기관은 자연스럽게 시대의 흐름에서 한 발 뒤쳐질 수 밖에 없다.
웹 2.0시대의 상징으로 꼽히는 위키피디아(Wikipedia)는 플랫폼 환경의 위력이 얼마나 막강한 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최근 정보건수 100만건을 돌파한 위키피디아는 순전히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참여만으로 브리태니커 사전에 버금가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베이, 아마존 등 웹 2.0의 개념을 잘 살린 것으로 평가되는 사이트들 역시 자신들이 직접 콘텐츠를 올리거나 관리하지 않는다. 플랫폼 환경을 구축해주었을 뿐이다. 나머지는 '자발적인 참여 정신'으로 무장한 불특정 네티즌들이 알아서 만들어나갔다.
◆ 개방과 공유가 왜 중요한가?
물과 정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한 곳에 고여 있으면 썩는다는 점이다. 적극적으로 외부에 퍼주고 알릴수록 가치가 커지는 것이 바로 정보의 속성이다.
'개방'과 '공유'가 중요한 것은 바로 웹이 정보 소통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슬로건은 웹2.0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결코 외면하지 말아야 할 가치이다.
사실 개방과 공유는 웹의 기본 정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기 웹 이론가들이 꿈꾸었던 것이 바로 정보의 완전한 소통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주요 포털들이 경쟁적으로 '공개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제공' 쪽으로 입장 선회를 하는 데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내려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비록 시장 상황에 밀린 어쩔 수 없는 변화이긴 하지만 '열린 웹'으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은 평가해줄만하다.
웹 칼럼니스트인 김중태는 '웹 2.0 시대의 기회: 시맨틱 웹'에서 "웹의 본질은 연결성이며, 연결 정신이 바로 웹 정신"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웹 창시자인 팀 버너스 리 역시 '언제 어디서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는 원대한 꿈을 꾸었던 것이다.
'개방, 공유' 정신은 초기 하이퍼텍스트 이론가들도 무엇보다 중요하게 간주했던 덕목이다.
'제너두 프로젝트'를 통해 초기 하이퍼텍스트 이론의 기초를 닦았던 테드 넬슨의 '다큐버스(Docuverse)'는 바로 하나의 하이퍼텍스트로 연결된 거대한 문서 우주를 만든다는 구상. 따라서 '다큐버스'는 개방과 공유에 대한 합의가 없다면 애당초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다.
세상을 뒤흔들 희망봉으로 추앙받고 있는 웹2.0이란 개념이 사실은 인터넷의 기본 정신에 바탕을 둔 '정교한 재활용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웹 2.0은 이 같은 기본 정신에 RSS나 아작스(Ajax), 그리고 위키(wiki) 같은 신기술을 덧입히긴 했지만, 기본 출발점은 '문서 우주'를 지향했던 초기 하이퍼텍스트 이론가들의 사상인 셈이다.
◆ 문제는 사람이다
개방과 공유를 중요한 모토로 하는 웹 2.0에서 특히 중요한 개념이 바로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다. 열린 네트워크인 웹을 통해 서로 연결된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지식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막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집단 지성이라는 것이 전체주의적 총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율성을 가진 인간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공동 위키(wiki)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소셜 텍스트(Social Text)의 로스 메이필드 최고경영자(CEO)는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웹1.0이 커머스(commerce)라면 웹2.0은 사람(people)이다"고 강조했다.
'집단 지성'에 대해 남다른 조예를 보여주고 있는 피에르 레비 역시 "오로지 살아 있는, 실제의 인간들만이 집단 지성을 실행시킨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특히 피에르 레비는 사이버 공간의 무분별한 '집단 지성' 논란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집단 지성'에서 "집단 지성의 토대와 목적은 인간들이 서로를 인정하며 함께 풍요로워지는 것이지 물신화되거나 신격화된 공동체 숭배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집단 지성이란 '톱 다운식' 전체주의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혁명의 산물이라는 얘기다.
그는 또 "사이버 공간의 개방으로 집단 지성과, 다양성 속에서 인간에 대한 가치 부여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적, 사회적 조직 형태들을 고려할 수 있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아직도 계속해서 "누가 멀티미디어 시장을 석권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묻고 있다"고 꼬집었다.
피에르 레비의 이 같은 비판은 국내의 웹 2.0 담론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실제로 지난 13, 14일 이틀 동안 코엑스에서 열린 'NGWeb 2006 컨퍼런스'에 참가한 많은 업체들은 '인간에 대한 가치 부여'라는 점보다는 '어떻게 시장을 잡을 것인가'란 점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정교하게 포장된 마케팅 용어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일부 참석자들은 "도대체 사용자들을 위한 집단 지성 전략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인 서비스 구도를 고수하고 있는 국내 포털들이 웹 2.0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철학
일제시대 프로문학 이론가 중 한 명이었던 박영희는 카프(KAPF)를 탈퇴하면서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다"라고 주장했다. 박영희의 이 같은 주장은 '핵심을 망각한 논쟁'에 대한 일종의 사망 선언이었다.
최근의 웹 2.0 열풍을 보면서 우려 어린 시선을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웹 2.0 선두주자'로 평가되는 구글, 아마존, 이베이 같은 업체들의 진정한 경쟁력이 '사용자를 존중한다'는 이들의 정신에 있다는 것을 망각한 채 화려한 서비스란 '허울 좋은 이데올로기'만 흉내내고 있기 때문이다.
'웹 2.0 최대의 수익 모델은 컨퍼런스다'는 노골적인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국내 포털들의 '웹 2.0 전략'에 대해 의구심 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야후코리아의 성낙양 대표가 'NGWeb 2006 컨퍼런스'에서 던진 화두는 경청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성 대표는 포털이나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현재의 선점 효과보다는 우수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유저들의 개방적, 참여적 네트워킹을 지향해 정보 및 콘테츠를 꾸준히 축적해 나가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웹 2.0 전도사들 중에선 당장이라도 인터넷 세상을 뒤흔들 듯한 화려한 비전을 내놓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물론 이들의 비전은 웹의 발전을 위해 더 없이 소중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웹을 만들자'는 기본 철학이다.
이제 섣부른 흥분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우리 주변을 되돌아보자. 그리고 웹 2.0의 약속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진지하게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그래야만 웹 2.0이 또 다른 거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조금 늦더라도 '정도'를 달려야만 마지막 순간에 웃을 수 있다. 웹 2.0 역시 이 같은 진리의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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