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창업지원법 및 벤처기업육성에관한특별조치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중소기업 창업투자사들이 투자한 기업에 대한 경영참여가 전격 허용됐다.
지난 5월 정부가 벤처활성화 보완대책을 내놓으면서 제시했던 지분 50% 이상 획득의 대규모 투자가 본격적으로 실시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이와 관련 3일 벤처캐피털 업계는 본격적인 경영참여 목적의 벤처 투자 준비작업을 추진하는등 벤처캐피탈의 투자사를 직접 경영하기 위한 분주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경영참여 투자, 어떻게 바뀌었나
그간 국내에서 창투사들의 경영참여 투자는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됐다.
창투사가 투자를 진행한 기업에 대해 기업가치를 높인다는 전제조건 아래 투자계획서를 작성하고, 중소기업청장의 승인을 얻어야만 50% 이상 지분을 취득할 수 있었던 것.
처음으로 투자를 하는 벤처기업에 대한 경영참여는 아예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관련 법률이 개정되면서 설립 이후 7년 이내의 기업에 대해서는 승인 없이 자유롭게 대규모 지분을 획득할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창업 7년이 초과한 기업에 대해서도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업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경우 중기청의 승인을 통해 경영참여 투자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벤처캐피털 업계는 특히 자본금이 적은 초기단계의 벤처기업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 함께 회사를 일궈나가는 사례가 활발히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영참여 투자 활성화 조짐 보인다
창업지원법 등이 바뀌면서 경영참여 투자를 준비하는 창투사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최근 무한투자(대표 김성택)는 초고속 인터넷 장비업체 우전시스텍에 이어 프린터 카트리지 생산업체 프릭스의 경영권을 인수하고 나섰다. 단 창투조합이 아닌 기업구조조정(CRC) 조합을 통해 인수함으로써 창투사 경영참여 투자의 첫 사례가 되지는 못했다.
무한투자는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회사 경영진을 사업 일선에 배치하고, 경영 일반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투자기업을 육성키로 했다. 이를 바탕으로 투자를 받은 기업과 창투사 간 시너지를 통해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무한투자는 정보기술(IT) 외에 바이오와 엔터테인먼트 부문에서도 지속적인 기업인수를 추진하고 있어 창투조합을 통한 경영참여 투자를 활성화시키는데 앞장설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최근 모태펀드의 출자를 받아 결성된 2개의 초기단계 벤처 전문 투자조합을 통해서도 경영참여 투자가 속속 나타날 전망이다.
이들 조합은 설립 3년 이내의 신생 벤처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도록 돼 있는데다, 조합의 존속기간이 7년으로 긴 편이어서 대규모 투자금을 통한 경영 지원 사례가 다수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초기단계 벤처 전문펀드를 결성한 한 창투사에서 경영참여 투자를 고려, 조만간 자금을 집행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모태펀드 2차 출자를 통해 유한회사형(LLC) 투자조합이 설립될 경우, 이를 통해서도 경영참여 투자가 활기를 보일 전망이다.
LLC형 투자조합은 벤처투자에 오랜 경험을 지닌 펀드매니저를 통해 대규모 자금이 소수 기업에 한해 집행되기 때문에,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초기단계 벤처에 대한 경영 지원이 활성화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지난 2000년 '벤처 붐' 이후 전반적으로 창투조합의 결성 규모가 증가하고 있는데다, 조합의 존속기간이 보통 5년에서 7~9년까지 늘어나고 있어 경영참여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는 기본 발판이 마련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한 때 벤처캐피털의 초기단계 벤처에 대한 투자가 전체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여타 국가에 비해 강세를 보여온 만큼, 이번 경영참여 투자 허용이 신생 벤처기업을 알차게 육성하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경영지배 아니다...벤처기업가, 소유에 대한 집착 버리길"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 간 상생의 관계가 발달해 있는 미국에서는 지분율에 관계없이 투자사의 경영참여가 일반화돼 있다.
벤처기업의 IPO보다 M&A가 더 활기를 보일 정도로 기업가치를 높이는데 있어 회사의 소유권에 대한 창업자들의 집착이 덜하기 때문. 이와 함께 벤처캐피털이 투자에서부터 자금회수 때까지 상장은 물론 경영, 마케팅, 사업제휴 등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어 벤처기업과 투자사 간 협력이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이와 달리 국내에서는 창업자들이 회사 소유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벤처캐피털의 경영참여를 위한 대규모 투자를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벤처캐피털협회의 김형수 이사는 "벤처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영진이 회사에 뼈를 묻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기업 간 제휴나 M&A를 통해 회사가치를 높이는데 있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벤처캐피털에 이익을 빼앗긴다는 생각보다 그들의 전문성을 빌어 회사를 키워나가고, 그에 따른 수익을 공유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그간 창투사들이 벤처 쇠퇴기 과정에서 수익 올리기에 급급해 회사의 가치 올리기를 뒷전에 두고, 자금회수를 위해 압박을 가하는 등의 행태도 고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성인 프리머스벤처파트너스 대표는 "경영지배나 간섭 또는 경영참여란 말도 정확히 부합되지 않을 수 있다"며 "이번 법률 개정을 계기로 벤처기업의 이사회 기능을 강화해 창투사들이 회사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물론 비리나 부실을 방지하는 감사 기능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발전돼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영참여 투자를 계기로 벤처기업이 도덕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지원해, IPO 이전에 상장법인에 준하는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발판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정 대표는 또 "그간 국내 벤처캐피털들은 투자를 한 벤처기업에 대해 제휴나 마케팅, 재무관리, 감사 등에 대해 원활히 지원을 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며 "앞으로 수익률 극대화와 함께 벤처기업 육성이라는 사회적 책임도 다할 수 있도록 개정된 법률을 잘 활용해야 하겠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정부 차원에서 투자조합의 존속기간을 보다 늘려주고, 대규모 투자를 유도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해 나가는 노력도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벤처캐피털이 투자금 회수를 위해 IPO에 집착하기보다 M&A, 바이아웃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방안도 요구된다.
권해주기자 postma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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