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시은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2심의 스모킹 건은 '노태우 비자금'이었다.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불법 비자금 300억원이 SK그룹의 성장에 기여했다면서 ㈜SK 주식 등도 재산 분할 대상으로 인정된 것이다.
이에대해 불법 자금으로 증식한 재산을 놓고 항소심 재판부가 범죄 수익을 정당화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서울고등법원가사2부(부장판사 김시철)는 지난달 30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2심 선고 공판에서 "최 회장은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3808억1700만원, 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제시한 핵심 근거는 노 관장의 모친인 김옥숙 여사가 남긴 '선경 300억' 등 메모와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이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최 회장의 부친인 고 최종현 회장에게 흘러 들어갔고, 이를 비롯한 유무형적인 혜택을 통해 SK그룹이 성장했다고 봤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판결의 핵심인 비자금 300억원이 재산분할 대상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반사회질서행위에 해당하는 불법 자금으로 증식한 재산은 환수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의 불법자금 임치가 반사회질서행위가 아니라는 판례를 들어 문제가 없다고 봤다.
법리상 그렇다해도 문제는 불법자금으로 몰래 증여하거나 상속을 해도 법을 어기지 않은 것과 같은 결과가 된다는 점이다. 이를 국민들의 법감정상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강탈이나 사기를 통해 획득한 자금을 결혼한 자녀에게 몰래 줘도 아무 처벌이나 추징 등을 받지 않게 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더해 증여세나 상속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재산을 물려받게 된 점도 실정법이나 형평상 매우 어긋나는 대목이다. 2심 재판부가 이런 점들까지 고려했는지는 불명확해 보인다. 법리를 세우기 위해 불법자금 임치 판례만 내세운 건 아니냐는 법조계 일각의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함께,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심 재판부가 얘기한 노 전 대통령이 태평양증권 인수나 SK이동통신 사업 등에서 노 전 대통령의 후광이 보호막 역할을 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범죄수익은닉규제법상 해당 '정경유착' 역시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 이 경우 노 관장의 약속어음 역시 무효화되며, 분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당초 노 전 대통령은 정치활동 중 기업인으로부터 뇌물수수를 받아왔고, 이것이 1995년 폭로돼 2628억원이 추징된 바 있다.
다만 형사 재판과 달리 가사소송에서는 가정의 기여도를 중점적으로 보면서 자금의 불법성 여부를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판결이 나왔다는 해석도 있다. 아울러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은 2001년 9월 제정된 한편, 이번 비자금 사안은 1991년 있던 일로 소급 적용할 수 없으며, 공소 시효도 지난 상태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1991년도 당시 기준으로 이는 불법 자금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비자금으로 증식한 재산을 국가가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법조계는 사실상 어렵다는 의견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미 비자금이 추징돼 청산한 바가 있고, 당사자들이 모두 사망한 상황에서 수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진보당 등 정치권 일부 의원은 특별법을 제정해 불법 비자금을 환수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한편 SK 측은 비자금 유입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환수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ㅅ=이시은 기자(isieun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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