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예년보다 이른 시기에 인사와 조직 개편을 실시해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글로벌 경기 악화, 반도체 시장 불황 등의 여파로 삼성전자가 올해 부진한 성적을 거둔 데다 신성장 동력 발굴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잇따르자 부회장급을 중심으로 한 새 조직을 만들어 눈길을 끈다.
삼성전자는 27일 사장 승진 2명, 위촉업무 변경 3명 등 총 5명 규모의 '2024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이번 인사에 앞서 삼성전자 및 전자 계열사는 지난 24일 사업지원TF(태스크포스)를 통해 일부 현직 임원진에게 계약 종료(퇴임) 통보를 전달했다.
삼성전자는 통상 매년 12월 초에 최고경영진(CEO) 인사를 진행해왔다. 지난해에는 12월 5~6일에 걸쳐 사장단, 임원 인사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올해는 실적 악화 등이 이어지자 수개월 전부터 '조기 인사설'이 안팎에서 불거져 나왔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이재용 회장이 1주년을 맞아서 내는 인사인 데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신경영 선언 30주년'이 겹치면서 인사·조직 쇄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5월부터 제기됐던 '7월 조기 인사설'이 대표적으로, 당시 한종희 부회장, 경계현 사장 '투톱 체제' 대신 노태문 MX사업부 사장이 한 부회장의 자리를 이어 받아 DX부문장을 맡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또 삼성의 주력 사업인 반도체가 올 들어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경계현 사장 교체설도 끊임없이 나왔다. 내부에선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이 경 사장을 대신해 DS부문장을 맡을 것이란 전망을 쏟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인사에선 내부의 예측이 모두 빗나갔다. 이 회장이 여전히 '사법 리스크'에 얽매여 있는 탓에 올해 인사도 변화보다 '안정'에 방점을 둔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검찰은 최근 이 회장에 대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부당 합병 혐의로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구형한 바 있다.
이에 '60세 퇴진룰'이란 공식을 깨고 사업지원TF장을 맡고 있는 정현호 부회장(1960년생)과 한종희 부회장(1962년생), 경계현 사장(1963년생)은 모두 자리를 지켰다. 또 부회장급을 중심으로 한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해 이들의 체제가 더 굳건해졌다는 평가다.
미래사업기획단에는 정 부회장, 한 부회장 외에 이번에 위촉업무 변경으로 삼성SDI 이사회 의장을 맡던 전영현 부회장이 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 측은 지난 2017년 이 회장의 구속과 함께 해체됐던 '미래전략실'과 미래사업기획단은 전혀 다르다는 설명이다. 미래전략실은 삼성전자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단 점에서 이번에 부활될 지를 두고 재계의 관심이 높았다.
삼성 관계자는 "기존 사업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은 신사업 발굴을 위해 부회장급 조직으로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해 새로운 사업영역 개척의 기반을 마련했다"며 "삼성전자 대표이사 직속으로 편제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전의 미래전략실 같은 조직은 아니고, 어떤 이들이 조직에 더 합류할 지,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와 관련해선 아직까지 알 수 없다"며 "미래사업기획단은 장기(10년 이상) 미래 먹거리 아이템을 발굴할 예정으로, 이곳에서 진행할 신사업은 삼성전자와 전자 관계사 관련 사업을 중심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인사에선 여러 역할을 맡고 있던 한 부회장의 부담이 다소 줄어든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한 부회장은 DX부문장 외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 생활가전사업부장을 맡고 있었다. 이중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 자리를 용석우 사장에게 넘겨줬다. 용 사장은 이번 인사에서 삼성전자 DX부문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 자리를 맡으며 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 관계자는 "용 사장은 TV 개발 전문가로 2021년 12월부터 개발팀장, 2022년 12월부터 부사업부장을 역임하며 기술·영업·전략 다양한 분야에 걸쳐 사업성장을 이끌어왔다"며 "이번 승진과 더불어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을 통해 TV 사업의 1위 기반을 공고히 하고 기술 리더십 강화를 주도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한 부회장과 삼성전자 '투톱'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경계현 DS부문장도 자리를 지켰을 뿐 아니라 SAIT(옛 종합기술원) 원장 자리까지 이번에 겸직하게 됐다. SAIT 원장은 당초 진교영 사장(1962년생)이 맡고 있었으나, 이번에 경 사장에게 물려줬다. '60세 퇴진룰'에 걸린 진 사장의 향후 거취는 현재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전 부회장이 삼성 전자 계열사에서 삼성전자로 다시 돌아왔다는 점도 이번 인사에서 눈여겨볼 점이다. 전 부회장은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와 배터리 사업을 글로벌 최고수준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삼성SDI 대표이사 역임 후 이사회 의장으로서 리더십을 지속 발휘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전 부회장은 그간 축적된 풍부한 경영노하우와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바탕으로 삼성의 10년 후 패러다임을 전환할 미래 먹거리 발굴을 주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 삼성전자 DX부문 경영지원실 글로벌 퍼블릭 어페어(Global Public Affairs)팀장을 맡고 있는 김원경 부사장도 이번에 사장으로 승진했다. 김 사장은 외교통상부 출신의 글로벌 대외협력 전문가다. 2012년 3월 삼성전자로 입사 후 글로벌마케팅실 마케팅전략팀장, 북미총괄 대외협력팀장을 거쳐 2017년 11월부터 글로벌 퍼블릭 어페어 팀장을 맡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김 사장은 풍부한 네트워크와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바탕으로 이번 사장 승진과 함께 글로벌 퍼블릭 어페어실 실장을 맡아 글로벌 협력관계 구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를 두고 2인 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해 경영안정을 도모하는 동시에 핵심 사업의 경쟁력 강화, 세상에 없는 기술 개발 등 지속성장가능한 기반을 구축할 것으로 기대했다. 삼성전자는 부사장 이하 2024년도 정기 임원인사와 조직개편도 조만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또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윤석열 대통령, 정부·재계 인사들과 프랑스 파리를 찾았던 이 회장이 이번 인사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놓을지도 관심사다. 이 회장은 26일(현지시간) 귀국길에 올라 이날 오후 입국할 예정이다.
삼성 관계자는 "기존 사업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은 신사업 발굴을 위해 부회장급 조직으로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하여 새로운 사업영역 개척의 기반을 마련했다"며 "TV 사업의 성장에 기여한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사업부장으로 과감히 보임하고, 글로벌 대외협력 조직을 사장급으로 격상시켜 다극화 시대의 리스크 대응을 위한 글로벌 협력관계 구축에 기여토록 했다"고 자평했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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