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성화 기자] 글로벌 백신 제조사와 총판을 맡은 국내 제약사 등이 백신구매 입찰에서 장기간 담합을 해오며 이득을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들을 무더기 적발,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 등 무더기 제재를 내렸다.
20일 공정위는 백신 제조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을 비롯, 광동제약·녹십자·보령바이오파마·SK디스커버리·유한양행·한국백신판매 등 6개 백신총판 업체, 의약품도매상 25곳까지 총 32개 백신 관련 사업자에게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409억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은 2013년 2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조달청이 발주한 170개 백신 입찰에서 사전에 낙찰예정자를 정하고, 들러리를 섭외한 후 투찰할 가격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담합했다.
담합 대상이 된 백신은 모두 정부 예산으로 실시되는 국가예방접종사업(NIP) 대상으로, 인플루엔자·간염·결핵·파상풍·자궁경부암·폐렴구균 등 모두 24개 품목에 이른다.
공정위는 "백신입찰 시장에서 장기간에 걸쳐 고착화된 들러리 관행과 만연화된 담합 행태로 인해 입찰담합에 반드시 필요한 들러리 섭외나 투찰가격 공유가 용이했다"며 "각자의 역할이 정해지면 굳이 투찰가격을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투찰함으로써 이들이 의도한 입찰담합을 용이하게 완성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글로벌 제약사가 생산하는 백신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정부가 전체 백신 물량의 5-10% 정도였던 보건소 물량만 구매하던 '제3자단가계약'을 연간 백신 물량을 전부 구매하는 '정부총량구매'로 조달방식을 변경했다.
이에 따라 제3자단가계약 방식에서는 의약품도매상끼리 낙찰예정자와 들러리 역할을 바꿔가면서 담합했지만, 정부총량구매방식에서는 글로벌 백신제조사와 공동 판매계약을 체결한 백신총판 업체들이 낙찰예정자가 됐다. 이 과정에서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직접 들러리를 섭외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170개 입찰에서 담합을 통해 147건을 낙찰 받았으며, 이중 117건(80%)에서 100% 이상의 낙찰률을 보였다. 낙찰률은 조달청이 설정한 상한가격 대비 낙찰된 금액 비율로, 통상적인 최저가 입찰에서 100% 미만인 것과 달리 높은 가격에 낙찰됨으로써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수익을 확보할 수 있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공급확약서 발급 권한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가격으로 낙찰 받을 수 있도록 다른 사업자들을 이용했다. 공급확약서는 백신을 제조하는 회사가 백신 공급을 약속하는 증표로, 백신입찰에서 낙찰받은 업체는 최종 계약 전에 공급확약서를 조달청에 제출해야 한다. 이때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원하는 가격을 거절한 1순위 업체보다 투찰가를 높게 쓴 2순위 업체에게 공급확약서를 발급해 시장을 교란했다.
공정위는 "녹십자, 보령바이오파마, SK디스커버리 등 3개 사는 인플루엔자 백신 담합으로 2011년 6월 제재를 받은 이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이 사건 입찰담합에 참여함으로써 시정명령과 과징금 처분을 받게 됐다"며 "이번 조치는 국내 백신 시장 사업자들이 대부분 가담한 장기간의 입찰담합 실태를 확인하고, 백신입찰 시장에서의 부당한 공동행위를 제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화 기자(shkim0618@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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