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올해 3억원의 상금은 물론 대한민국 최고라고 인정하는 최고과학기술인상은 수십 년 동안 한길을 걸러온 의사과학자에게 영광이 돌아갔다. 최근 의사과학자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눈길을 끈다.
2023년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은 의사과학자로 유명한 고규영 한국과학기술원(KAIST) 특훈교수에게 돌아갔다. 고 교수는 치매를 일으키는 뇌척수액 노폐물 주요배출경로를 세계 최초로 규명하는 등 치매 연구의 전문가로 꼽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이종호)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회장 이태식)는 2023년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자로 고규영 교수(기초과학연구원 단장, 65세)를 선정했다고 2일 발표했다.
고 교수는 뇌 속 노폐물 배출경로, 림프절에 도달한 암세포 생존전략을 규명하는 세계적 연구 성과를 보였다.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Nature), 사이언스(Science) 등에 연구 성괴를 발표해 림프관 분야에서 연구동향을 선도하는 등 우리나라 연구수준을 세계적으로 드높이는 데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을 유발하는 뇌 속의 노폐물이 뇌 밖으로 배출되는 주요 경로가 뇌 하부에 있는 뇌막 림프관임을 처음으로 알아냈다. 같은 연구에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노폐물 배출능력이 떨어지는 뇌막 림프관 기능 저하를 함께 확인했다.
이 연구결과는 뇌의 인지기능 저하,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 치료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학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 교수는 림프관 경유 암세포가 림프절로 전이하기 위해 지방산을 핵심 연료로 활용한다는 사실도 최초로 규명했다. 기존 연구에서는 대부분의 암세포가 포도당을 주 에너지원으로 쓴다는 것이 정설이었는데 고 교수는 기존 암 연구와 다른 접근법을 적용했다.
면역기관인 림프절에 전이돼 성장하는 암세포의 생존전략을 규명했고 이 번 연구결과는 앞으로 암 치료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 교수는 연구 중심의 의사과학자로도 유명하다. 임상의만 선호하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한 길을 걸으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의사과학자로도 이름을 알렸다.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의과학분야 석박사생 등 인재를 양성하고 국제혈관생물학회(IVBM) 회장을 역임했다. 2015년 7월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연구단 단장으로 선정돼 활발한 연구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고 교수는 수상수감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기초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의사과학자가 많이 배출되기를 희망한다”며 “앞으로 의사과학자의 역할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은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탁월한 연구 성과를 이룬 과학기술인을 발굴해 국민들에게도 널리 알려 명예와 자긍심을 높이고자 2003년부터 시상해온 우리나라 최고 권위의 과학기술인상이다.
올해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의 경우 지난해 말부터 공모와 발굴, 추천을 통해 접수한 후보자 총 23명을 대상으로 3단계 심사과정(전공자심사–분야심사–통합심사)을 거쳐 최종적으로 수상자 1명을 선정했다.
과기정통부는 오는 5일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개최하는 제1회 세계한인과학기술인대회 개회식에서 고 교수에게 대통령 상장과 상금 3억원을 수여할 계획이다.
◆다음은 고 교수와 일문일답.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을 축하한다. 수상 소감은.
“기쁘다. 이제까지 같이 연구해온 연구원, 학생연구원, 국내외에 계신 동료연구자들에게 마음을 다해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을 유발하는 뇌 속의 노폐물이 뇌 밖으로 배출되는 주요 뇌막 림프관이 뇌 하부에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했다. 이런 연구에 관심을 가진 배경이 궁금하다.
“우리 몸에서 뇌가 가장 활동을 많이 하는 장기이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많은 만큼 노폐물과 독성물질들을 많이 생성한다. 이 물질들이 150ml의 뇌척수액에 녹아 있는데 배출되려면 림프관을 경유해야 한다. 그 배출경로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로 난제로 남아 있었다. 이를 밝히고자 우리 연구팀이 도전한 것이다.”
-치매 치료가 가능할까.
“발견한 뇌막 림프관을 통해 배출되는 뇌척수액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감소한다. 이 때 노폐물이 너무 많이 뇌에 쌓이면 치매 같은 뇌퇴행성 질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배출을 원활하게 해주면 치매 방지, 진행을 막을 수 있다.
대부분의 발견이 생쥐 실험동물을 통해 이뤄졌다. 현재는 영장류에서 재현하고 있다. 확증이 되면 대상 환자를 대상으로 도전하고 싶다.”
-진료 중심의 의사가 아닌, 연구 중심의 의사과학자로서의 삶을 택했는데.
“양쪽을 다 알고 있으니 연구의 폭과 깊이가 더 있는 것 같고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초 연구를 하니까 더 심오해진 것 같다.”
-의사과학자들 지망하는 후학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우리세대 보다 좋은 환경인 것 같은 데 불안한 마음과 조급함이 있는 것 같다. 해당 분야를 공부할수록 연구에 대한 욕구가 생길 것이다. 차분히 재미있게 집중하다 보면 중요한 발견을 하고 그에 따라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훌륭한 리더가 되려면 ‘헝그리 정신’을 가지고 바닥부터 올라가야 한다.”
-연구철학, 좌우명 등이 있는지.
“지금도 하는 연구에 대해 배가 고프다. 연구실 책상에 앉아서 죽는 것이 꿈이다.”
-지난 5년 동안 4대 과학기술원, 포항공대 자퇴생 1천여명이 의대로 재입학했다는 언론보도 등이 있었다. 최상위권 의대 쏠림, 이공계 엑서더스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의사과학자로서의 의견을 듣고 싶다.
“학생 개개인의 바람보다는 사회적 구조 때문이다. 삶의 격차가 좁아지고 연구하는 좋은 문화와 환경을 만들면 뜻있는 젊은이들이 모여들 것이라고 본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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