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미국의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고강도 규제가 점차 효과를 발휘하는 모양새다. 중국의 반도체 장비, 칩 수입이 올 들어 급감하고 있는 데다, 반도체 기술 자립을 외친 것과 달리 곳곳에서 기술력 부족을 드러내며 칩 생산에 차질만 빚고 있는 분위기다.
◆늘어난 글로벌 반도체 장비 수입…'최대 시장' 中만 '차질'
9일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의 반도체 장비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23% 줄어든 58억6천만 달러(약 7조6천억원)를 기록했다. 직전 분기보다는 8% 감소한 수치다.
이는 지난해 1분기 중국에 판매된 반도체 장비가 전년 동기보다 27% 급증한 76억 달러(약 9조9천억원)에 이르렀던 것과 대비된다. 당시 중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시장이었다.
그러나 올해 1분기 수입 규모가 줄어들면서 중국은 반도체 장비 판매시장 1위 자리를 대만에 내줬다. 3위는 한국이 차지했다.
중국과 달리 전 세계 다른 지역에서는 반대의 흐름이 나타났다. 1분기 전 세계 반도체 장비 매출은 전년 동기 보다 9% 증가한 268억 달러(약 34조8천억원)로 나타났다. 북미 지역 매출이 약 50% 불어나 세계 주요 지역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대만의 장비 수입 규모는 전년 동기 보다 42% 증가했고, 유럽에서의 매출은 19% 늘어났다.
이 같은 결과는 지난해 10월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내린 조치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18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이하 공정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nm 이하 로직 칩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의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이후 중국은 반도체 시장에서 점차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세관 자료에 따르면 1∼4월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반도체 장비와 다른 기계는 전년 동기보다 약 50% 급감한 10억5천만 달러(약 1조4천억원)어치에 그쳤다. 주로 웨이퍼·집적회로(IC)·평판 디스플레이 생산 등에 사용되는 장비들이다.
같은 기간 일본으로부터의 반도체 장비 수입도 전년 동기보다 12% 줄어든 35억 달러(약 4조5천억원) 규모였다. 현재 중국이 수입하는 반도체 장비 중 일본산의 비중이 1위다. 1∼4월 중국이 한국과 대만으로부터 구매한 반도체 장비도 전년 동기 대비 약 50% 줄었다.
◆美 제재에 中 반도체 수입액도 급감…韓·日·臺 감소세 두드러져
중국의 반도체 수입액도 쪼그라들고 있다. 올해 1~5월 중국의 집적회로(IC·반도체 칩) 수입액은 1천319억 달러(약 172조5천9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24.2% 감소했다. 수량 기준으로도 중국은 1천865억 대의 집적회로를 수입, 전년 대비 19.6% 줄었다.
이는 미국 주도의 반도체 동맹이 구체화하며 반도체가 주력 수출 품목인 한국과 대만, 일본 등으로부터 중국의 수입이 크게 줄어든 탓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올해 들어 5월까지 중국이 한국에서 수입한 총액은 전년 동기 대비 26.7% 줄어 중국의 전체 교역국 가운데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대만과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액도 각각 26.2%, 17.6% 줄었다. 중국의 전체 수입액이 6.7%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미국과 반도체 동맹을 맺은 한국·대만·일본에서의 수입 감소가 두드러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반도체 교역 데이터의 하락은 미국이 첨단 반도체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제한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라며 "한국·대만·일본을 포함하는 미국 주도의 반도체 '빅 4'가 점점 구체화되고 있는 현재 상황을 감안하면 반도체 수입 감소가 계속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중국은 앞으로 반도체 시장에서 더 입지가 쪼그라들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7월부터 첨단 반도체 장비·소재 23종의 수출 규제를 강화할 예정이고, 네덜란드도 유사한 조치를 내놓을 것으로 보여서다.
이에 중국 기업들은 장비 수입이 막히기 전에 서둘러 이를 비축해 두려 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태다.
앞서 지난 2월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SMIC는 핵심 장비 확보가 어려워져 베이징 신축 공장에서 제품 양산이 1∼2개 분기 늦춰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 메모리 반도체 제조업체인 YMTC도 수입 장비로 생산 라인을 구축할 수 없게 되면서 올해 사업 계획도 제대로 작성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팹리스 경쟁력 역시 저하되고 있다. 중국의 팹리스인 하이실리콘은 미국의 제재 이후 고사 상태다. 지난달 휴대폰 회사인 오포도 팹리스 사업을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美 제재 中 반도체에 '藥' 될까…"기술력 역부족"
일각에선 미국의 움직임 덕분에 오히려 중국 현지 반도체 기업의 기술 혁신 추진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 4월 중국 집적회로 생산량은 전년 동월 대비 3.8% 증가한 281억 개로 집계됐다. 중국 집적회로 월간 생산량이 증가한 것은 지난해 1월 이후 16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는 정부의 반도체 자립 목표에 따른 전폭적인 지원 덕분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기술력은 역부족인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중국 반도체 기업 바오더가 자체 개발했다고 발표한 기술이 '라벨 갈이'로 드러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바오더는 지난달 6일 '파워스타 CPU'라는 제품을 공개했는데, 곧바로 인텔 CPU를 이름만 바꿔치기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제품 외형이 인텔 i3-10105 코멧 레이크 CPU와 동일했기 때문이다.
결국 바오더는 '파워스타 P3-01105' 제품이 자체 개발 CPU가 아니라는 걸 인정했다. 리루이지에 바오더 회장은 지난 5일 자신의 개인 웨이보 계정을 통해 "파워스타는 인텔의 지원을 받아 출시한 맞춤형 CPU"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자체 개발했다고 했다가 결국 '라벨 갈이'를 인정한 셈"이라며 "인텔, ARM 등의 핵심 반도체 기술 없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어렵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진단했다.
이어 "중국 정부는 ARM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떠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며 "특히 ARM의 기술 없이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첨단 반도체 개발이 어렵다는 점에서 중국 당국이 1년 넘게 ARM의 중국 사업 철수를 지연시키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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