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최상국 기자] "과학문화 대중화는 교양과학을 넘어 과학적 소양을 갖추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과학문화 시민을 지향합니다. 과학관은 이제 관람객 수를 늘리는 양적 확대보다는 질적 성장을 통해 과학문화의 플랫폼이 되고자 합니다."
과학관은 과학문화의 중심이다. 과천과학관은 수도권 유일의 국립종합과학관으로 최신 과학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전시관이다. 코로나19 발생 이전까지만 해도 학생들과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로 항상 북적이던 곳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과학관은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근 3년 동안 휴관과 부분 개방을 오가며 정상적인 운영을 하지 못했다. 한 해 100만명이 찾던 과학관이 문을 닫자 때맞춰 과학 유튜버들이 크게 성장했다. 과학관도 찾아가는 콘텐츠들로 무장했다.
지난 4월 새로 취임한 한형주 국립과천과학관장은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과학관들이 큰 변화를 겪고 있다면서 국립과학관이 과학 대중화의 플랫폼으로서 새로운 모델을 선도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과학문화의 대중화라고 할 때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은 단지 어린이들을 과학자로 양성하려는 게 아니라 좀 더 합리적인 사고를 함으로써 합리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하려는 것"이라며 "1년에 한 번 소풍가는 곳이 아니라 동네 주변의 작은 곳부터 큰 과학관까지 수시로 찾는 과학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과학관 문을 거의 열지 못했으면서도 시대변화에 대응한 새로운 운영방식과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애쓴 전임 이정모 관장과 직원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여러 차례 표현하면서 이를 이어 나가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2년간 국립과천과학관을 이끌 한형주 신임 관장을 만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 과학관의 미래'에 대해 들어보았다.
◆다음은 한형주 관장과의 일문일답
-지난 3년간이 과학관에게는 ‘암흑기’였을 것 같다.
"연간 100만 명이 찾던 곳이었는데 19만 명대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국립과학관은 사업비를 벌어서 써야 하는 책임운영기관이라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웠다. 하지만, 과학관의 내실을 다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내부적으로는, 그동안 실행하기 어려웠던 3년 주기의 중장기 전시 기획 프로세스를 시도할 수 있었고, 온라인 콘텐츠 개발에 전직원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과학관 소통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전임 이정모 관장님의 역할이 컸다."
-무슨 얘긴가.
"코로나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서 온라인 콘텐츠를 강화했는데 예산도 없어서 과학관의 모든 직원들이 다 직접 기획·제작·출연했다. (전임)관장이 워낙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로서 몸소 본보기가 되니까 직원들의 숨겨놨던 끼를 끌어내고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현재 과학관 유튜브 구독자 수가 8만이 넘었다.
또 새로운 운영방식을 많이 시도했다. 코로나 때문에 가능해진 측면도 있는데 하나의 전시를 3년에 걸쳐 준비하는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자생적인 연구모임에서 출발해서 아이디어가 숙성되면 전직원 앞에서 제안발표회를 하고 그 중에서 하나를 진행한다. 3년에 걸쳐서. 그렇게 해서 나온 첫 전시가 작년에 했던 '바이러스의 고백(Go-Back)'이다.
올해 4월에 오픈한 '탄소C그널'도 그렇게 진행됐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국립기관이 4월에 전시회를 개막할 수 있게 된 게 이 프로세스 덕분이다. 사업예산이 확정되고 회계년도가 시작된 후에 기획을 시작하는 기존 절차로는 늘 전시회가 하반기에 쫓기듯이 개막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콘텐츠를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만들지 않고 내부인력이 충분히 준비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체제를 만든 것이 의미가 있다. 앞으로도 이런 중장기 기획프로세스로 순차적으로 돌아갈 거다. 이 제도가 잘 착근되도록 하는 게 제 역할이다."
-방역조치는 다 풀렸는데 아직도 좀 한산한 느낌이다.
"좀 회복이 되기는 했는데 예전같지 않다. 인구감소 측면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단체관람이 줄었다. 아직 조심하는 학교들이 많은 것 같다."
-인구감소가 과학관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건가.
"인구감소가 정말 심각하다. 과학관의 주요 관람객인 초중등 학생들의 인구규모가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는 모든 연령에서 40만명대였지만 과천과학관이 20주년이 되는 5년 뒤에는 초등 저학년의 경우 25만명 내외로 감소할 거라고 한다. 과천은 특히 체험형 과학관이라고 해서 아이들이 매일 뛰어다니는 곳이다. 그게 성인 관람객이 잘 안오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성인들이 박물관, 미술관처럼 관람할 수 있는 문화가 좀 정착이 되기 어려워서 브랜드 기획전 같은 전시를 할 때는 어린아이들만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관람객 주 타겟이 성인으로 바뀐다는 건가
"그건 아니다. 주 타겟은 다음 세대라는 건 변함이 없다. 어린이들이 과학을 처음 쉽게 만나도록 하는 정체성은 그대로 유지된다. 재미있게 쉽게 접해야 그중에서 과학하는 사람들도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기존 방식과는 조금 다르게 과학관을 운영해야 할 환경에 놓여 있다. 이제는 많은 관람객을 유치하는 것에만 목표를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양적 목표를 주로 설정했다면 이제는 질적인 성장을 목표로 해야 한다. 새로운 관람 영역을 창출하고 다양한 맞춤형 프로그램들을 개발해 모든 계층과 연령대가 만족할 수 있는 전시, 교육, 행사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한다.
과학관은 아이들이 가는 곳이다, 과학은 어렵다. 이런 선입견이 있어서 성인 관람객이 좀 많이 안 왔던 것 같은데 요즘은 온라인 콘텐츠가 활성화되면서 과학이 일종의 교양으로 소비되고 있는 추세다. 과학관도 거기에 맞춰서 계속 변하고 있는 중이다. 다양한 수요에 맞춰 수준높은 강연이나 과학교양서 출판, 창작 공방, 생태 환경 프로그램, 실험세트 구독서비스 등 지금도 다양하게 하고 있고 계속 새로운 걸 만들고 있다."
-일상 회복과 함께 취임했다. 새롭게 그리는 과학관의 미래상은.
"과천과학관은 수도권에 위치한 유일한 국립종합과학관이다. 위치적 장점 때문에 방문객 수도 많았다. 국립과학관들은 각자의 기능을 특화하고 있는데, 과천과학관은 첨단과학기술 중심의 체험형 과학센터로 육성이 됐다. 그런데 코로나19의 상황을 지나면서 체험형 과학센터라는 과학관의 운영형태, 그리고 수도권이라는 활동 지역의 경계가 희미해졌다.
그래서 과천과학관의 비전을 ‘성공적 전환을 통한 과학문화 가치창출 플랫폼의 고도화’라고 정리했다. 과천과학관의 정체성은 한 마디로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플랫폼으로서의 과학관, 어떤 의미인가.
"전시는 다양한 기관과 협력해 기획, 공유하고, 교육은 전문기관이나 시민이 함께 참여해서 기후위기, 탄소중립 같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참여·탐구형으로 운영되고 있다. 과천과학관의 모든 콘텐츠나 프로그램들은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도록 유튜브로 공유, 확산되고 있다. 브랜드 기획전은 지역 과학관 순회 전시로 이어지고, 이동식 전시품은 국내는 물론 해외 과학관에서도 한국의 과학문화를 알리고 있다.
또 현재 27개의 수도권 소재 과학관들 간 협의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네트워크의 거점으로서 협력과제를 발굴하고 있다. 과천과학관이 가진 자원과 노하우 등을 더 적극적으로 공유, 확산하고 유관기관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체계를 조성해 과학문화 활성화에 기여해 나갈 예정이다.
해외 과학관들과의 협력을 위해서는 내년에 과천과학관에서 개최되는 ASPAC(아시아-태평양지역과학관협회) 2024 연례컨퍼런스를 준비하고 있다. 단순히 일회성의 행사개최로 끝내지 않고, 지속적으로 회원 과학관들과 도움과 자극을 주고받는 체계를 만들고 싶다.
이처럼 그동안 역할해 온 과학문화 대중화를 위한 전당으로서 뿐만 아니라 국립기관인 과천과학관이 먼저 다양한 시도로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는 성공사례를 만들어 ‘과학관의 새로운 모델과 역할을 제시하는 과학문화 플랫폼’의 역할을 강화해 나가려고 한다."
-'과학의 대중화’와 '대중의 과학화'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한다.
"‘과학의 대중화’는 다소 계몽적인 느낌, 시혜를 베푼다는 느낌이 있고, 대중적 소재에만 집착해 흥미 위주로만 소비되는 걸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대중의 과학화’는 ‘과학 대중화’의 활동으로 얻어진 관심을 바탕으로 대중이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하는, 과학문화 시민이 도달해야 하는 지향점을 제시했다고 본다. 관점이 다르긴 하지만 둘 다 유용한 과학문화 확산의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과학문화의 대중화라고 할 때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은 단지 어린이들을 과학자로 양성하려는 게 아니라 좀 더 합리적인 사고를 함으로써 합리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하려는 거다. 과학 교양을 넘어서 과학 소양인들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관장 재임 동안 ‘이것만은 꼭 해보고 싶다’는 게 있다면.
"‘전환’의 시대를 잘 준비하는 과학관 경영을 하고자 한다. 3가지로 말씀드리면 디지털 전환, 탄소중립으로의 전환, 지역으로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화두는 선도적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하는 과천과학관이 모범을 보여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전시, 교육, 행사의 콘텐츠와 관계될 수도 있으나 엄밀하게는 콘텐츠의 운영, 작업 프로세스, 조직 경영 등의 방향과 더 밀접하다.
탄소중립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그동안 기후 환경 위기에 대한 전시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왔는데, 정작 과학관이 실행할 수 있는 기후 위기 해결 노력에는 소극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과학관 경영 시 탄소배출 최소화를 위한 방안뿐만 아니라 전시폐기물 최소화, 전시품 재활용 프로세스 제도화 등 실질적인 탄소중립 계획을 추진하려고 한다."
-과학관의 지역전환, 무슨 뜻인가
"우리가 과학문화 대중화 이야기할 때 과학관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과학관이 가진 자원, 노하우, 인력 이런 걸 확산시켜서 다른 곳들을 활성화시키는 것도 국립과학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안 하면 과학문화의 대중화는 어렵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일 년에 한 번 정도 관광지 가듯이 큰 과학관을 찾는다면, 집 또는 학교 주변의 작은 전시, 교육, 행사장에서 과학을 접해보고 관심이 생기면 좀 더 자주 큰 전시관을 찾아온다. 그래서 종합과학관이라는 데를 그냥 소풍 갈 때 한 번 오던 것을, 집 근처에 있는 소규모 과학문화 공간을 활성화시켜 자주 가게 하고 좀 더 다양한 과학 체험을 하고 싶어서 큰 과학관에 더 찾아오게 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올해 주요 전시계획을 소개해 달라.
"4월 14일에 개막한 브랜드 기획전 ‘탄소C그널’은 3년 전부터 준비된 전시다. 과천과학관의 기획·제작 역량이 결집된 전시로 8월 20일까지 보실 수 있고, 9월부터는 수도권 과학관 공동기획 전시인 ‘모든사물의 역사<3편 학교>’가 이어질 예정이다. 6월에는 ‘누리호 3차 발사’에 맞춰 특별전도 준비했으니 많은 분들이 과학관에 오시면 좋을 것 같다."
▲한형주 관장은=행시 41회로 교육부, 과학기술부,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거치며 사교육대책팀장, 유아교육지원과장, 국립과천과학관 서울과학관장, 연구제도정보과장, 미주아시아협력담당관, 과학기술정책조정과장, 성과평가정책과장 등을 역임했다. 2022년 1월부터 국립과천과학관 전시연구단장으로 일한 뒤 2023년 4월 제8대 국립과천과학관장에 임명됐다.
/최상국 기자(skcho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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