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종성 기자] '유럽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라 불리는 핵심원자재법(CRMA)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폐배터리 리사이클링(재활용) 사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 EU '핵심원자재법(CRMA)', 이르면 2~3월 세부안 공개…폐배터리 리사이클링이 한 축
3일 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가 원자재 공급망 확보와 다변화를 위한 CRMA를 추진하며 이르면 2~3월 중 구체적인 법안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1일(현지시간) '탄소중립 시대를 위한 그린딜 산업 계획'을 담은 20장 분량의 통신문(Communication)을 발표했다. 통신문은 EU 집행위가 추진하려는 정책 내용을 담은 의견서로, 집행위의 통신문 채택을 시작으로 EU 이사회와 유럽의회가 세부 논의를 진행한다.
이미 입안을 예고한 '탄소중립산업법(Net-Zero Industry Act)를 비롯해 이와 별개로 CRMA를 추진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CRMA는 2020년부터 추진되기 시작한 정책으로, 지난해 4분기까지 의견 수렴을 마쳤고, 올해 1분기 중 세부안이 발표될 것으로 계획돼 있다.
CRMA 내용의 핵심은 미국의 IRA와 유사하다. 유럽 유럽 역내에서 생산된 리튬, 희토류 등 원자재가 사용된 제품에만 세금과 보조금 혜택을 주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미국 IRA에 이어 한국 기업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가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최근 주요국의 핵심광물 확보전략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핵심광물의 안정적 확보가 디지털전환과 그린전환에 따른 미래산업 경재우위 확보의 성패를 결정하게 된다는 인식 하에 중국은 자국내 자원통제를 강화해가고 있고 미국, 유럽 등은 자국 생산역량과 우방국 간 자원동맹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니켈, 리튬, 희토류 등 핵심광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도 안정적 핵심광물 확보 전략이 필요하다"며 "해외자원개발 확대 및 지원책 정비, 폐자원 재순환·활용과 탄소가스 저감·대체기술 등 기술개발 확대, 동맹국간 공급망 구축 논의 참여를 통한 공급선 다변화 등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럽의 CRMA 정책 방향은 크게 2가지다. 유럽 내 핵심 광물의 생산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우선 역외에서 수입하되, 수입국을 다변화함으로써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또 리사이클링을 통해 일정 부분을 자체 조달하는 방식이 예상된다.
특히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분야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할 때 폐배터리 리사이클링을 통해 추출한 원자재가 일정 비율 이상 포함되도록 의무화하는 조치가 시행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유럽의회는 지난해 3월 'EU 배터리 법안'을 채택하며 배터리 법안의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폐배터리 회수율 목표도 한층 강화했다.
법안에 따르면, 산업 및 전기자동차용 배터리의 경우 2030년부터 코발트, 납, 니켈 물질의 재활용 원료 사용이 일정 비율 의무화되고, 2035년부터 해당 비율이 증가할 예정이다. 예를 들어 재활용 원료 의무 사용 비율이 2030년부터 코발트 12%, 납 85%, 리튬 4%, 니켈 4% 적용되지만, 이후에는 코발트 20%, 납 85%, 리튬 10%, 니켈 12% 등으로 높아진다.
◆ 국내 기업,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생태계 구축 가속화
폐배터리 리사이클링을 통한 원자재 조달이 CRMA 정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막 시장에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사업에 뛰어든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도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LG화학과 북미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 '라이사이클(Li-Cycle)'에 지분 투자를 단행하고, 배터리 핵심 소재인 황산니켈을 10년 동안 공급받기로 했다. 이 밖에 폐배터리를 재사용해 만든 전기차용 충전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스템을 오창공장에 설치했다. 해당 시스템을 충분히 테스트해 수명이 남은 폐배터리 재사용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검토한다.
SK이노베이션은 신성장동력으로 BMR(Battery Metal Recycle)을 선정하고, 최초 개발한 수산화리튬 추출 기술을 앞세워 폐배터리에서 고순도 광물 추출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SDI는 폐배터리 재활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2020년 천안·울산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스크랩 순환 체계를 구축했다.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스크랩을 재활용 전문 업체가 수거한 뒤 공정을 거쳐 황산니켈, 황산코발트 같은 광물 원자재를 추출하는 형태다. 회수된 광물 원자재는 배터리 소재 파트너사로 전달돼 삼성SDI에 공급되는 원부자재 제조 공정에 재투입된다. 헝가리, 말레이시아 등의 해외 거점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협력을 통해 원자재 재활용을 확대할 예정이다.
소재 업체들도 앞다퉈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코스모그룹은 폐배터리에서 양극 소재를 수거하는 리사이클링 사업에 2021년 300억원을 투자했고, 작년에도 159억원을 추가 투자해 설비를 증설하기로 결정했다.
고려아연도 기존 비철금속 제련 기술력을 활용해 폐배터리에서 금속을 회수하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최근에는 계열사 켐코가 LG화학과 전구체 합작법인(JV)을 설립하고, 총 2천억원을 투자해 폐배터리와 폐기물 등에서 추출한 리사이클 금속이 적용된 전구체 생산 설비를 갖추기로 했다.
엘앤에프도 미국 폐배터리 재활용 기업 레드우드 머티리얼즈에 3천만 달러(약 390억원)를 투자하고 폐배터리 재활용을 통한 메탈·리튬 공급, 전구체·양극재 분야 협력을 진행 중이다.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전문기업인 성일하이텍은 포스코홀딩스, SK이노베이션 등과 연합 전선을 구축해 주목받고 있다. 폐배터리 재활용 전문기업으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대규모 습식제련을 통해 리튬이온 배터리 내 코발트·니켈·망간·구리·탄산리튬 등을 회수하고 있다.
포스코홀딩스는 지난해 8월 폴란드에 연산 7천 톤 규모의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 'PLSC'(Poland Legnica Sourcing Center)를 준공했는데, 성일하이텍이 공장의 설계, 설비 도입, 건축 등 EPC를 담당했고, 운영도 직접 한다.
SK이노베이션은 성일하이텍과 연내 국내에 폐배터리 재활용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2025년 첫 상업공장을 건설한다는 목표다. SK이노베이션이 독자 개발한 수산화리튬 회수 기술과 성일하이텍이 보유한 니켈·코발트·망간 회수 기술을 결합해 시너지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향후 미국과 유럽 등 해외 공장 증설도 추진한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유럽 CRMA는 폐배터리 리사이클링을 통한 원자재 조달이 정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수혜가 가능한 업종은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분야"라며 "아직 관련 산업이 본격적으로 개화하기 전인 분야인 만큼 정책적으로 모호한 내용들이 상당히 많은데, 향후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산업이 안정화되기 위한 관점에서도 EU의 정책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종성 기자(star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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