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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메탈은 완벽했지만 팬택은 약했다…아이폰 귀환 [김문기의 아이씨테크]


[다시 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12부. 4G LTE 성장기

우리나라가 정보통신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첫발인 한국전기통신공사(KT), 한국데이터통신(LGU+), 한국이동통신서비스(SKT)가 설립된 지 꼬박 4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간 이동통신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해 슬로우 무버에서 패스트 팔로우로, 다시 글로벌 퍼스트 무버로 도약했습니다. 5G 시대 정보통신 주도권 싸움은 더 격렬해졌고, 다시 도전에 나서야할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부족하지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동통신 연대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담긴 독자의 제보도 받습니다 [편집자주]
팬택 베가 아이언(IRON) 미디어데이에 등장한 배우 이병헌 [사진=정소희 기자]
팬택 베가 아이언(IRON) 미디어데이에 등장한 배우 이병헌 [사진=정소희 기자]

[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삼성전자와 애플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LTE 시장에서 2위를 수성한 곳은 다름아닌 벤처신화로 불린 팬택이다. 두 번의 워크아웃을 이겨내고 불굴의 의지를 보인 곳이다. 또한 대기업 틈바구니 속에서도 꿋꿋히 견뎌내며 단말 시장의 경쟁을 활성화시킨 효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LTE 시장에서 발생한 과열경쟁은 체급이 낮은 팬택에게는 버티기 어려운 시련이었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규모 경쟁에 나설 수 있는 대기업들과는 달리 팬택은 마치 가랑이가 찢어지는 아픔을 견뎌내며 발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버텨낼 수 있을지 또는 무너질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 팬택은 또 한번의 부활을 꿈꿨다. 팬택의 아이덴티티를 살린 첫 모델인 ‘베가 아이언’의 흥행에 이어 차기작인 ‘베가 아이언2’를 고안했다. 하지만 시간은 팬택의 편은 아니었다. 출시 직전 이통3사가 역대 최장기간인 순차 영업정지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이통3사가 가입자 유치를 위해 삼성전자 ‘갤럭시S5’를 앞세우는 한편, 영업정지 전후로 LG전자가 전략 스마트폰으로 시장 압박에 나섰다. 팬택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하릴없이 시간만 죽일 수밖에 없었다.

"메탈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물질”이었지만, 그 시간을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팬택은 강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해 정부가 선택한 이통3사 순차 영업정지 때문에 팬택이 몰락했다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으나 그만큼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 대해서 대부분은 부인하지 않는다.

15일 오전 상암동 팬택 본사에서 열린 팬택 스카이 스마트폰 '베가(Vega)' 신제품 발표회장 무대에 선 박병엽 팬택 부회장
15일 오전 상암동 팬택 본사에서 열린 팬택 스카이 스마트폰 '베가(Vega)' 신제품 발표회장 무대에 선 박병엽 팬택 부회장

◆ 팬택, 초라한 시작…화려한 성장

직원 6명. 자본금 4천만원.

1991년 당시 창업주인 박병엽 부회장의 팬택 설립 당시 재원이다. 팬택은 1992년 4월 무선호출기 내수 및 수출 판매를 시작해 첫 제품군인 PP X01 시리즈로 성공의 신호탄을 쐈다. 시작은 작았을지 몰라도 성과는 대단했다. 그해 팬택이 세운 매출은 28억원.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이 이만큼의 매출을 기록했다는 점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무선호출기 시장에서 가능성을 엿본 팬택은 1997년 CDMA 단말기 사업을 시작했다. 사세는 당연히 확대됐다. 같은해 CDMA 이동전화 단말기 생산을 시작한 후 6월 시티폰 CT-2 플러스를 출시했다. 1998년에는 당대 1위인 모토로라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같은해 'IM-700'을 개발해 세상에 내놨다.

2001년은 팬택의 전환기가 마련된 시기다. 팬택은 자신보다 더 규모가 큰 현대큐리텔 인수에 성공했다. 다윗이 골리앗을 집어 삼킨 셈이다. CDMA에 이어 GSM 단말기 사업을 본격화했다.

2005년에는 SK텔레콤이 운영했던 SK텔레텍까지 인수한다. 내수 시장에서 성공기록을 세운 팬택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팬택이 급속한 성장을 이루기는 했으나 그 이면도 있다. 해외 진출을 너무 서두른 것이 오히려 화근이었다. 2007년 첫번째 워크아웃.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이은 2위이기는 했으나 시련은 그렇게 불현듯 찾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택은 다시 일어났다. 2011년 12월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휴대폰 시장 2위는 그대로였다. 위기였으나 슬기롭게 극복했다.

워크아웃 당시에도 팬택은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2010년 5월 첫 스마트폰 '시리우스'를 SK텔레콤을 통해 출시했다. 89만9천800원의 고가 하이엔드 모델이었다.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탑재한 모델로 3.7인치 아몰레드 디스플레이와 퀄컴 스냅드래곤 모바일AP를 장착했다.

당시 스마트폰의 유통의 주체는 이통사였다. 그러다보니 제조사에서 나온 모델은 특정 이통사에 단독 출시되거나 타 이통사에서는 그에 맞게 커스텀돼 다른 이름으로 판매됐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갤럭시S'는 SK텔레콤을 통해 출시됐지만 KT에서는 '갤럭시K', LG유플러스에서는 '갤럭시 U'로 출시됐다. 성능도 다운그레이드됐다.

팬택 '시리우스'도 마찬가지였다. 시리우스는 KT에서는 '이자르'라는 이름으로 LG유플러스에서는 '미라크'라는 이름으로 커스텀돼 판매됐다. 예외적으로 '미라크'는 SK텔레콤에도 도입된 바 있다.

시리우스가 등장한 2010년은 '스카이'에 이은 팬택의 스마트폰 브랜드 '베가'가 탄생한 해이기도 하다. 2010년 7월 30일 SK텔레콤을 통해 '베가'가 세상에 나온다. '베가'는 초기 제품명에 불과했으나 이후 브랜드로 승격된다. 광고 모델로 배우 차승원을 대동했다. 가격은 92만7천300원으로 삼성전자와 LG전자 하이엔드 폰에 정면대결을 펼쳤다. SK텔레콤을 통해 출시된 '베가'는 KT와 LG유플러스에 맞춰 '베가 Xpress'라는 이름으로 보급된다.

팬택은 '베가'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승격시키고, 여성 특화 브랜드로 '이자르'를, 보급형 계열은 '미라크'로 잠정 결정한다. 다만, 이 브랜드 라인업은 결국 '베가'로 통합됐다.

팬택 베가 레이서 [사진=팬택]
팬택 베가 레이서 [사진=팬택]

팬택은 2011년 6월 10일 이통사마다 달리 전략군을 운영하던 LG전자와는 달리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동일 대표 플래그십 모델을 이통3사에 동시 공급한다. 페라리와 함께 등장한 ‘베가 레이서’가 그 주인공이다.

당시 국내 최초 듀얼코어 스마트폰이라는 마케팅 전략 포인트와 '레이서'에 집중해 다양한 프로모션을 전개했다. 배우 이병헌을 광고모델로 기용했다. 여담으로 이병헌은 마지막까지 팬택과 의리를 지킨 모델로 남았다. 콘서트를 열고 경품으로 스포츠카인 페라리를 걸었다. 공격적인 마케팅 투자에 결실도 확실했다.

'베가레이서'는 누적판매량 180만대를 달성할 정도로 팬택 내부에서 기록적인 판매량을 보여줬다. 이같은 성공은 팬택 박병엽 부회장의 결단과 직원들의 포기를 모르는 열정의 결정체였다. 이와 함께 팬택은 드디어 워크아웃을 졸업한다.

박병엽 부회장의 성공일화는 여러 곳에서 회자됐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삼성전자가 갤럭시S2를 1.2GHz 클럭속도의 듀얼코어 프로세서를 장착한데 자극 받은 박 부회장은 퀄컴을 찾았다. AP 성능 향상을 꾸준히 요구하고 나선 것. 퀄컴은 그런 박 부회장을 돌려 세웠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박 부회장에 퀄컴도 손을 들었다. 박 부회장뿐만 아니라 주요 임원들도 미국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퀄컴 본사를 끊임없이 들락날락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2011년 7월 1일 나란히 4세대통신(4G) 롱텀에볼루션(LTE)를 상용화했다. 팬택도 LTE 스마트폰 마련에 분주했다. LG전자보다 근소한 차이로 '베가 LTE'를 SK텔레톰을 통해 먼저 내놨다. 이 때 팬택은 또 다른 차별화를 위해 사용자인터페이스 브랜드로 '플럭스(FLUX)'를 전면에 내세웠다. UX 자체를 브랜드화해 알릴 정도로 자신감이 있었던 시기다.

이 후 SK텔레콤과 KT에는 공용모델인 '베가 LTE M'을, LG유플러스에는 '베가 LTE EX'를 출시했다.

LTE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팬택은 기세를 몰아 2012년 5월 11일 이통3사를 통해 대표 모델은 2세대 '베가 레이서2'를 내놓는다. 퀄컴의 LTE 원칩을 탑재했다. 팬택이 20분기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팬택은 당시 LG전자와 2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마케팅 적으로는 LG전자를 언급하기 보다는 1위 업체인 삼성전자를 물고 늘어졌다. 팬택은 '베가레이서2'에 대해 LG전자 옵티머스 LTE2보다 품질면에서 월등함을 강조했다. 삼성전자 '갤럭시S3'와 정면대결해도 손색이 없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전세계 시장에서 노키아를 제치고 휴대폰 왕좌에 올랐을 때다.

이러한 단면을 보여주는 모델이 '베가 R3'다. 팬택은 베가레이서2가 출시된 해인 2012년 하반기 전략 스마트폰 '베가 R3' 론칭 무대로 삼성전자의 앞마당인 서울 강남 'M스테이지'를 꼽았다. 서울 상암동 본사에서 신제품을 공개했던 전례를 미뤄봤을 때 이례적 행보였다. 마치 애플 텃밭인 샌프란시스코에서 삼성전자가 신규 갤럭시를 선보인 것과 마찬가지다.

'베가 R3'은 당시 한손 사용성을 중시하는 사용자들에게 맞게 UI를 재편하고 고질적인 전력소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슈퍼 배터리팩'을 도입했다. 대용량 배터리와 초고속 충전기술, 2포트 어댑터를 선보였다. 전력 소모는 낮추면서 충전 속도를 높였다. 베가 R3는 출시 4개월만에 국내 80만대 판매량을 달성했다.

팬택 베가 아이언(IRON) 미디어데이 [사진=정소희 기자]
팬택 베가 아이언(IRON) 미디어데이 [사진=정소희 기자]

◆ 공전의 히트작 '베가 아이언'…때 아닌 불행

불행의 시작은 가장 행복할 때 찾아온다.

2013년 팬택의 최고 제품으로 손꼽히는 '베가 아이언'이 출시됐다. 당시 팬택은 늘어난 부채비율과 줄어드는 판매량, 급락한 영업이익 등이 서서히 겹치면서 어려움이 가중된 상태였다.

이와는 달리 '베가 아이언'은 소비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제 역할을 했다. 일체형 메탈 테두리를 도입한 베가 아이언은 수신감도를 떨어뜨린다는 단점과 비용 상승문제, 어려운 가공 방식이라는 허들을 뛰어 넘은 결과물이었다.

당시 이준우 팬택 기술전략본부장(부사장)은 2년 이상 가치를 지속할 수 있는 제품, 획일화된 디자인 속에서 차별화된 디자인, 사용할 수록 가치가 돋보이는 소재를 사용하자는 일념하에 200여 명의 연구인력을 투입, 6개월 간 선행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중간에 품질을 더 높이기 위해 5개월의 추가 개발기간과 200억원의 추가 개발 비용도 투입됐다.

이 과정에서 5번의 설계 변경, 10번의 디자인 변경이 이뤄졌다. 출시 4개월 전까지만해도 출시 여부조차 불분명했다. 문제해결을 위해 3천 시간의 연구 개발 기간과 3만번의 통화 테스트, 2만번의 품질 테스트, 생산공정 변경까지 단행하며 마침내 '베가 아이언'을 완성해냈다. 베가 아이언의 별명으로 인해 모델로 가수 '백아연'이 나서기도 했다.

혁신적 제품을 내놓긴 했지만 팬택은 해를 넘긴 2014년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했다. 이통3사가 불법 보조금으로 영업정지에 빠지면서 4월 출시 예정이었던 전략 스마트폰 '베가 아이언2' 출시를 뒤로 미뤄야 했다. 그 사이 팬택은 또 다시 워크아웃을 맞이했다.

물론 팬택은 워크아웃 탈출을 위한 노력을 경주했다. 지문인식 기능을 도입한 '베가 LTE-A', 스타일러스 펜을 내장한 '베가 시크릿노트', 사운드 특화 뮤직 스마트폰인 '베가 시크릿업'을 차례로 선보였다. 팬택만의 아이덴티티가 녹아든 신제품이었다.

팬택은 2014년 8월 19일 법정관리가 시작되면서 회생절차를 밟았다. 팬택은 기존 사용자들을 위해 서비스센터를 정상 운영했다.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도 꾸준하게 진행했다. 내외부적으로 팬택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현실은 냉혹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팬택은 마지막 '스완송'을 부른다. '베가 팝업 노트'를 어렵게 출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결국 팬택은 또 다른 주인에게 넘겨졌다.

2015년 11월 26일 팬택은 법정관리 15개월만에 기업회생절차를 마치고 같은해 12월 1일 신설법인 팬택이 공식 출범했다. '아임백'을 출시하면서 부활을 꿈꿨던 팬택은 많은 염원에도 불구하고 현재 많은 추억만 남겼다.

서울 서초구 반포1동 LG 유플러스 서초직영점에서 'iphone6, iphone6+' 론칭 행사가 진행된 모습
서울 서초구 반포1동 LG 유플러스 서초직영점에서 'iphone6, iphone6+' 론칭 행사가 진행된 모습

◆ 대화면 장착 '아이폰' 귀환

팬택의 몰락과 함께 그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각축전이 발발했다. 그 중에서도 한 자릿수 점유율로 하락한 애플이 칼을 갈고 있었다.

앞서 2009년 11월 28일 KT를 통해 국내 정식으로 첫 선을 보인 애플 아이폰(아이폰3GS)는 즉각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선적으로 대항마로 불린 휴대폰들이 줄줄이 시련을 겪으면서 반사효과를 얻기도 했다. 2010년 9월 10일 KT가 두번째 아이폰(아이폰4)를 내놓자 당시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의 고민도 더 커졌다.

결국 SK텔레콤은 KT보다는 늦었지만 2011년 3월 16일 아이폰4를 도입했다. KT와 SK텔레콤이 동시에 아이폰을 판매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에서는 경쟁의 한 단면 정도 수준이었으나 전세계 시장에서는 꽤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시 애플 정책은 한 국가당 복수 이통사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 정책이 처음으로 깨진 사례가 바로 한국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팬택의 3강 구도와 쏟아지는 외산폰 속에서도 아이폰을 점차 힘을 키워 두 자릿수 점유율을 유지했다. SK텔레콤과 KT 역시 대대적인 이벤트와 마케팅을 쏟아부었다. 아이폰이 나올때마다 가입자 뺏기에 혈안이었다.

아이폰 도입 경쟁의 절정은 2011년 11월 11일. '11'이라는 숫자가 3번이나 겹치는 날이었다. KT와 SK텔레콤이 동시에 아이폰4S를 내놓게 된 것. 비가 내리는 악천우 속에서도 아이폰4S를 구매하기 위해 긴 행렬이 들어섰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속 타는 곳은 3위 사업자 LG유플러스였다. LG유플러스는 당시 통신규격과 주파수 대역으로 인해 외산폰 도입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애플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통용되고 있는 유럽식 GSM 방식으로 ‘아이폰’을 설계했기에 2G CDMA를 채택한 LG유플러스는 그림의 떡이었다.

애플이 GSM 방식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미국 이통사 AT&T와 함께 버라이즌에서도 아이폰을 공급하기로 결정, 버라이즌에 맞는 CDMA망을 활용할 수 있는 ‘아이폰’을 별도로 내놨다. 하지만 이번에는 주파수 대역에 발목이 잡혔다. 애플이 설계한 2G용 아이폰은 800MHz와 1.9GHz 주파수 대역의 리비전.A 통신규격을 지원했는데 당시 LG유플러스는 1.8GHz 에서만 리비전.A를 운용하고 있어 맞지 않았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던 아이폰은 그 이후 벼랑 끝에 섰다 .외형상 큰 변화가 없는 아이폰4S, 3.5인치에서 크기를 4인치로 키웠으나 여전히 대화면 트렌드에서 벗어난 아이폰5, 비슷한 디자인의 아이폰5S까지 이어졌으나 시장 반응은 냉랭했다. 그 사이 아이폰의 점유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

하지만 2014년 애플에게 반등의 기회가 왔다. 국내 이통시장의 불안감이 오히려 상승 요인이 된 것. 불법보조금을 잡기 위한 단통법의 시행, 팬택의 몰락과 해외 제조사의 시장 철수, 대화면으로 전환한 애플의 아이폰 정책 등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우선, 순차 영업정지 및 단말기 유통법 도입으로 인해 불법보조금 기반의 마케팅 경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든게 주효했다. 통상적인 보조금은 이통사의 지원금과 제조사 장려금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애플에게는 장려금 개념이 없다. 당대 아이폰이 비싼 이유였다. 불법보조금이 줄어들면서 단말 가격차가 줄어들고, 대신 요금을 할인받는 선택약정할인이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안드로이드폰뿐만 아니라 아이폰에게도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여기에 국내 제조사 중 팬택이 회생에 어려움을 겪은데 이어, 대다수 해외 제조사가 외산폰의 무덤인 우리나라 시장을 철수하면서 빈틈이 생겼다.

결정적으로 애플은 팀 쿡 CEO 체제로 전환하면서 아이폰6 시리즈에 승부를 띄웠다. 팀 쿡 CEO는 2014년 9월 9일 미국 쿠퍼티노에 위치한 디 앤자 칼리지 내 공연시설인 플린트센터에서 이벤트를 개최하고 전작과는 다른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를 공개했다. 두 개 모델 동시 출시도 이례적이었으나, 한 손 그립감을 핵심으로 작은 크기의 화면을 고수하던 애플이 각각 4.7인치, 5.5인치로 확 늘렸다. 대화면에 목마른 국내 아이폰 사용자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게다가 LG유플러스의 아이폰 도입도 영향을 미쳤다. 통신규격과 주파수 대역 부족으로 인해 상당한 골치를 앓았던 LG유플러스는 LTE를 통해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LTE에 대한 공격적인 운영으로 그간의 발목을 잡았던 규격에 대한 제한이 풀렸다.

이 역시도 전세계적으로 이례적 사례였다. 한 국가의 모든 이통사가 아이폰을 도입한 곳 역시 우리나라가 처음이었다.

LG유플러스의 기세는 대단했다. 그간의 설움을 한번에 설욕하고자 했다. LG유플러스의 아이폰6는 국내서 출시된 아이폰 중 가장 저렴한 78만9800원에 책정됐다. 이전 '아이폰5C'가 가장 저렴한 제품이기는 했으나 파생형 보급폰임을 감안했을 때 역대 가장 저렴한 아이폰이기도 했다.

애플의 기세는 등등했다. 한 자릿수에 불과하던 점유율은 곧장 두자릿수로 올려섰다. 당시 2위 자리에 어렵게 오른 LG전자를 압박했다. 연말에는 역전에 성공해 삼성전자에 이은 2위 자리를 차지했다.

다만, 2014년말 애플과 삼성전자는 나란히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애플은 아이폰6 플러스가 악력에 의해 휠 수 있는 일명 ‘밴드게이트'로 고초를 겪었다. 청바지 뒷 주머니에 넣어놓은 아이폰6가 기역자로 꺾이는 이상 현상이 보고되기도 했다. 삼성전자 갤럭시노트4는 명함이 꽂히는 '유격 논란’이 부상했다. 실제 명함을 꽂는 사진들이 각종 SNS에 올라오기도 했다.

이에 따라 애플은 차기 모델부터 아이폰의 외형 재질을 변경했다. 삼성전자는 수리 편의성을 위한 제조방식일뿐이라며 정면돌파에 나섰다.

▶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목차

1편. 삐삐·카폰 이동통신을 깨우다

① '삐삐' 무선호출기(上)…청약 가입했던 시절

② '삐삐' 무선호출기(中)…‘삐삐인생' 그래도 좋다

③ '삐삐' 무선호출기(下)…’012 vs 015’ 경합과 몰락

④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上)…"나, 이런 사람이야!"

⑤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下)…’쌍안테나' 역사 속으로

2편. 1세대 통신(1G)

⑥ 삼통사 비긴즈

⑦ 삼통사 경쟁의 서막

⑧ 이동전화 첫 상용화, ‘호돌이’의 추억

➈ 이동통신 100만 가입자 시대 열렸다

⑩ 100년 통신독점 깨지다…'한국통신 vs 데이콤’

3편. 제2이동통신사 大戰

⑪ 제2이통사 大戰 발발…시련의 연속 체신부

⑫ 제2이통사 경쟁율 6:1…겨울부터 뜨거웠다

⑭ ‘선경·포철·코오롱’ 각축전…제2이통사 확정

⑮ 제2이통사 7일만에 ‘불발’…정치, 경제를 압도했다

⑯ 2차 제2이통사 선정 발표…판 흔든 정부·춤추는 기업

⑰ 최종현 선경회장 뚝심 통했다…’제1이통사’ 민간 탄생

⑱ 신세기통신 출범…1·2 이통사 민간 ‘경합’

4편.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⑲ ‘라붐’ 속 한 장면…2G CDMA 첫 항해 시작

⑳ 2G CDMA "가보자 vs 안된다"…해결사 등판

㉑ CDMA 예비시험 통과했지만…상용시험 무거운 ‘첫걸음’

㉒ 한국통신·데이콤 ‘TDMA’ vs 한국이통·신세기 ‘CDMA’

㉓ 한국이동통신 도박 통했다…PCS 표준 CDMA 확정

㉔ ‘디지털·스피드 011’ 탄생…세계 최초 CDMA 쾌거

㉕ ‘파워 디지털 017’ 탄생…신세기통신 CDMA 상용화

5편. 이동통신 춘추전국시대 개막

㉖ 제3 이동통신사 찾아라…新 PCS 선정 개막

㉗ ‘LG텔레콤 vs 에버넷’…‘한솔PCS vs 글로텔 vs 그린텔’

㉘ PCS 사업자 확정…‘한국통신·LG·한솔’

㉙ ‘016’ 한국통신프리텔·‘018’ 한솔PCS·‘019’ LG텔레콤

㉚ ‘PCS 경합’…64세 어르신도 번지점프 했다

㉛ 이동통신 5사 ‘각자도생’…춘추전국시대 개막

6편. 이동통신 혼돈의 세기말

㉜ 3G IMT-2000 향한 첫 항해 시작

㉝ 이동통신 1천만 돌파했으나 ‘풍요속 빈곤’…新 브랜드 ‘SKY’ 탄생

㉞ 스무살의 011 TTL·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묻지마 다쳐

㉟ ‘SK텔레콤+신세기통신’ 인수합병…사상 첫 점유율 낮추기

㊱ '한국통신프리텔+한솔PCS' 인수합병…춘추전국→삼국정립

7편. 3세대 이동통신(IMT-2000)

㊲ ‘SK·한통·LG·하나로’ IMT-2000 도전…춤추는 정부

㊳ 하나로통신 007 작전…’정부·재벌’ 허 찔렸다

㊴ SK텔레콤·한국통신 IMT-2000 입성…LG·하나로 ‘탈락'

㊵ LG텔레콤 vs 하나로통신…동기식 IMT-2000 주인 찾았다

8편. 3G 시대 개막

㊶ IMT-2000 표류…CDMA2000 비상

㊷ 연기 또 연기…3G WCDMA 초라한 등장

㊸ '011·016·019→010 통합' 논란…번호이동 패닉

㊹ 유선망 2위 사업자 ‘파워콤’ 인수전…하나로 vs 데이콤 ‘격돌’

㊺ 휴대인터넷 세상 열겠다…와이브로 출항기

9편. 3G 삼국정립

㊻ SKT ’T 브랜드’ 탄생 vs KTF ”쑈(SHOW)를 하라”

㊼ “악법도 법이다”…LGT IMT-2000 사업권 반납

㊽ SK텔레콤, 하나로 품다…유무선 통합 1위 도전

㊾ KT-KTF 합병…이석채 회장 통합KT 시대 개막

㊿ ‘LG 삼콤사’ 텔레콤·데이콤·파워콤 = LGU+ 통합 출범

10편. 아이폰 쇼크

(51) ‘이통사 중앙집권화’…韓 단일 표준 플랫폼 ‘위피’ 몰락

(52) ‘아이폰’…韓 3년을 못봤다

(53)’아이폰' 스마트폰 깨우다…옴니아·베가·옵티머스, 그리고 갤럭시

(54) 모바일 OS 잡아라, 심비안 하락…안드로이드·iOS 부상

(55) 3G 데이터 무제한 시대…”무적칩을 아시나요”

(56) ‘와이파이·블루투스’ 재조명…3G와 ‘동반성장’

11편. 4G LTE 시대 개막

(57) SKT·LGU+ 국내 최초 LTE 상용화…과도기 ‘설왕설래'

(58) “LTE를 사수하라” 국내 첫 주파수 경매…’승자의 저주’

(59) ‘별정4호’…알뜰폰 비긴즈

(60) KT 2G 종료 ‘삼고초려'

(61) LTE 가입자 100만 돌파…양→질적 성장

(62) "쓸데없이 크다?" 갤럭시노트 '반전'…LTE 대화면 시대 ‘활짝'

12편. 4G LTE 성장기

(63) LTE 제2고속도로 개통…올아이피 시대 도래

(64) '카카오톡'에 무릎 꿇은 이통3사…RCS 참패의 역사

(65) 역대 가장 복잡했던 2차 주파수 경매

(66) LTE 주파수 엮다…광대역 LTE-A 논란

(67) 국내 LTE 시장 '외산폰 무덤'…LTE-A 킬러콘텐츠 찾기

(68) '불법보조금' 이통3사 역대 최장 영업정지…'단통법' 시발점

/김문기 기자(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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