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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추석 특수 노렸는데"…코로나·수해 겹친 상인들 '한숨'


동작 성대시장, 수해로 여전히 몸살…소상공인 자금지원책, '미결과제'로 남아

[아이뉴스24 박소희 수습 기자] "피해요? 어휴… 말도 마세요. '악몽' 같았습니다."

지하에 위치한 생활용품 아울렛 매장을 운영하는 서영재(37) 씨가 묘사한 '지난 8일 밤'은 차라리 깨고 싶은 나쁜 꿈이었다. 서 씨는 이날 "물이 본격적으로 넘치기 시작한 8시부터 새벽 4시 반까지 양수기를 이용해 물을 빼내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빗물 펌프와 환풍기 주변, 위쪽 계단 틈으로 물이 계속해서 역류해 손을 쓰기가 어려웠다"고 참담했던 상황을 전했다. 또 물에 불어 겉은 찢겨나가고, 속이 훤히 보이는 진열장을 가리키고는 "이곳까지 물이 모두 들어찼다고 보면 된다. 물건을 다 뺄 틈도 없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지난 8일 수해로 생활용품 아울렛 매장 곳곳의 벽지가 뜯겨나가 있다. [사진=박소희 수습 기자]
지난 8일 수해로 생활용품 아울렛 매장 곳곳의 벽지가 뜯겨나가 있다. [사진=박소희 수습 기자]

지난 8일 저녁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기록적인 폭우가 대한민국을 덮쳤다. 도림천 일대 동작·관악·영등포·구로구 등에서는 하천 범람과 주택·상가 피해, 차량 침수가 잇따랐다. 동작구 일부 지역에는 서울지역 내 115년만의 최고 수치인 시간당 141.5mm의 비가 쏟아졌다. 별안간 도심 한복판서 맞닥뜨린 재난상황에 모두가 속수무책이었다.

◆'악몽' 같던 그날…불어나는 물살에 발만 '동동'

큰 수해를 입었던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의 한 전통시장을 지난 18일 찾아갔다. 한차례 장대비가 휩쓸고 지나간 곳이지만, 거리만은 어느 정도 치워져 언뜻 보기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평화로운 듯 했다. 시장 초입에는 동네 마실 나오듯 상인들과 익숙하게 인사를 건네는 주민들, 장을 보는 시민들이 보였다.

지난 8일 수해 이후 아직 처리되지 못한 쓰레기들이 성대시장 곳곳에 남아 있다. [사진=박소희 수습 기자]
지난 8일 수해 이후 아직 처리되지 못한 쓰레기들이 성대시장 곳곳에 남아 있다. [사진=박소희 수습 기자]

하지만 골목을 돌아가 보면 그날의 '악몽'은 여실히 모습을 드러냈다. 골목 사이의 후미진 구석자리마다 쌓인 미처 수거되지 못한 쓰레기 봉지, 일부분이 물에 불어 찢겨나간 흔적이 역력한 나무판자 더미 등이 피해 규모를 어렴풋이 짐작케 했다. '단수로 화장실 사용 금지', '임시휴업', '당분간 쉽니다' 등의 안내문구가 부착된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영업을 재개한 매장의 상황도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시장 곳곳의 의류 상점들에서는 상인들이 손수 물에 젖은 포장지를 제거하고 물에 젖어버린 제품들을 세탁해 싼 값에 판매하고 있었다.

Q언더웨어브랜드를 운영하는 민경자(64) 씨는 "매장 아래쪽에 진열해둔 옷은 물론, 창고에 보관하던 일부 옷가지들이 전부 젖었다"며 "아들, 딸들까지 직접 나서 집 세탁기며 손빨래까지 전부 가동해 세탁해 온 것들을 싼 값에 파는 중"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 8일 무릎까지 물이 들어찬 Q언더웨어 매장 모습 [사진=박소희 수습 기자]
지난 8일 무릎까지 물이 들어찬 Q언더웨어 매장 모습 [사진=박소희 수습 기자]

또 여름의 끝자락에서 발생한 이번 수해는 유독 이른 올해 추석 대목을 앞두고 준비를 단단히 했던 상인들의 근심을 더욱 키웠다. 여름 휴가철과 추석 명절 준비 기간이 겹쳐 상인들이 평소보다 이른 재고 확보에 힘쓴 탓이다. 일단 물에 젖으면 상품성이 크게 떨어지는 식품, 나무소재 용품·식기·가구류, 종이포장재 의류 등이 수해 피해를 입어 처치곤란 상태로 남아 상인들은 울상을 지었다.

민 씨는 "속옷·내의를 납품 받는 동대문시장 도매업체가 2주간 여름휴가를 갖는다고 해서 물품을 미리 들여놨다"며 "추석을 대비해 물품 수량을 늘렸는데, 이번 폭우로 모두 젖어 난감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시장 내에서 수입주방용품점을 운영하는 B씨도 "아래쪽에 진열해 둔 주방용품·식기들은 물론, 지하 창고에 있던 고가의 수입용품들도 모두 못 쓰게 됐다"며 "업종 특성상 가뜩이나 값비싼 재고들이 많은데 추석을 앞두고 제사상, 집기류도 추가 구매해 둬 큰 일"이라고 밝히며 한숨 지었다.

◆의용대·자원봉사자에 '감사'…소상공인지원책엔 '글쎄'

앞서 언뜻 보기에 상황이 모두 말끔히 정리된 듯했던 시장의 모습은 발 빠른 대처 덕분이었다. 깔끔한 거리 환경에는 군·소방 의용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컸다. 동작구는 군 병력, 자원봉사자, 구청 직원 등을 포함해 총 4천 명에 달하는 인력과 차량 및 장비 417대를 총동원해 주요 수해폐기물 발생지역에서의 집중수거를 진행했다. 구에 따르면 지난 17일까지의 구 수해폐기물 누적 수거량은 약 3천600톤에 달한다.

시장 상인들도 자원봉사자들의 노고를 체감하며 입을 모아 "이 정도라도 거리가 복구된 건 자원봉사자들이 자기 일처럼 도왔기 때문"이라고 감사를 전했다.

지난 18일 성대시장 인근 한 주민센터에 수해 관련 자원봉사·피해접수 안내 문구가 부착돼 있다. [사진=박소희 수습 기자]
지난 18일 성대시장 인근 한 주민센터에 수해 관련 자원봉사·피해접수 안내 문구가 부착돼 있다. [사진=박소희 수습 기자]

하지만 금세 활력을 되찾은 시장 거리와 달리 상인들의 일상 회복은 좀처럼 쉽지 않아 보였다. 이미 못 쓰게 된 물품·시설들과 수해로 납품 기한을 맞추지 못한 거래 등은 여전히 미결 과제로 남은 듯 했다. 당장의 실질적인 피해가 막대하다는 이야기다.

시장 골목에 위치한 사우나 운영자 A씨는 "못 쓰게 된 지하 시설의 철거도 아직 마치지 못했다"며 "지하 변압기와 펌프 등 설비가 모두 고장나 피해만 4~5억원대로 예상된다. 영업을 언제 재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심정을 밝혔다.

이 같은 소상공인들의 피해에 정부도 서둘러 대안을 내놓고 있다. 지난달 14일 정부는 제2차 비상경제민생대책회의에서 '금융 부문 민생안정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소상공인 채무조정을 위한 '새출발기금'에 30조원을 투입하고, 저금리 대환대출 프로그램에 8조5천억원, 안심전환대출에 45조원, 맞춤형 자금지원책으로 41조2천억원을 투입한다는 것이 골자다.

새출발기금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부실 또는 부실 우려 채권을 금융사에서 매입해 원금의 60~90%를 감면해주는 채무조정 프로그램이다. 이를 두고 "성실하게 빚을 갚은 사람만 억울해진다"며 상인들 사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이어 41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지원방안과 관련해선 이중 신보 보증이 15조원이며 나머지는 대출이다. 이를 두고도 금융권에서는 비판적 시각이 제기된다. 고금리 시대에 서민들이 대출 부담을 크게 느끼는 상황임에도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정책은 여전히 '보증·대출'에 그쳐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시휴업 상태인 수입주방용품점에서 판매하지 못하게 된 식기들을 쌓아두고 있다. [사진=박소희 수습 기자]
임시휴업 상태인 수입주방용품점에서 판매하지 못하게 된 식기들을 쌓아두고 있다. [사진=박소희 수습 기자]

이처럼 대출이자 감면과 대출금 납부기한 연장 등 정부의 금융지원책이 눈에 띄지만, 이에 대한 상인들의 반응은 시원찮아 보였다. 지난 18일 만난 시장 내 자영업자들은 모두 코로나19로 인해 영업·매출에 큰 타격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과반수가 경영난으로 인한 대출 또한 받은 적이 있음을 언급했다. 때문에 현재 논의되는 '새출발기금'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시장 내에서 식료품 매장을 운영하는 C씨는 "아무리 금리를 인하해준대도 이미 가진 빚도 더 갚기 어려워진 상황에 또 빚을 얹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되물었다.

이번 폭우에 대한 정부의 자금 지원책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10일 발 빠르게 소상공인 침수 피해 지원을 약속했고,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7일 열린 취임 100일 기념식에서 "이번 수해피해와 관련해 1조원 규모의 긴급생활안정지원금, 2천500억원 규모의 에너지 바우처를 지원했다"고 밝혔다. 또 윤 대통령은 "소상공인에 대해서는 정부 출범 직후 추가경정예산을 긴급 편성해 손실보전금 등 25조원을 지원했다"고 언급했다.

지난 18일 성대시장에 수해피해 신고접수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박소희 수습 기자]
지난 18일 성대시장에 수해피해 신고접수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박소희 수습 기자]

서울시도 지난 16일 정부에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입은 구로구, 금천구, 영등포구, 동작구, 관악구, 서초구, 강남구 등 7개 자치구를 대상으로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요청했다. 이 중 현재까지 영등포구, 관악구, 강남구 개포1동만이 정부 기준을 충족해 지난 22일 특별재난지역으로 우선 선포됐다. 시의 요청이 반만 받아 들여진 셈이지만, 정부는 이달 말까지 합동조사를 통해 기준을 충족하는 지역을 추가 선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 복구비용 중 지방비의 50~80%가 국비 지원된다.

이처럼 곳곳에서 대책을 내놨지만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워낙 막대해 피부로 느껴지는 도움은 제한적이라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수입주방용품업체 운영자 B씨는 "이 쪽 한 칸만 해도 200만원이고, 전체 피해액은 못 해도 1억~1억5천만원으로 예상한다"며 "신청해둔 지원금은 감사하게 기다리겠지만 워낙 당장의 피해가 커 걱정"이라고 말했다.

/박소희 수습 기자(cowh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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