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호영 기자] 최근 불거진 '만 5세 취학' 논란은 총체적 난국인 정부여당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6세에서 한 살 낮춘다는 중대 발표를 하면서도 제대로 된 여론 수렴은 커녕 당정 간 사전 교감도 없었다고 한다. 당장 더불어민주당과 교육단체 등의 거센 비판에 직면하자 부랴부랴 공론화 수순을 밟는 촌극이 빚어졌다.
교육부는 지난달 29일 저출산·고령화 및 유아 단계 교육 격차 해소 등을 이유로 이같은 학제 개편 방안을 발표했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왜 이걸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두 자녀를 둔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4일 기자에게 "소통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의도조차 모르겠다. '왜 갑자기?'라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아들이 12월생인데 아직도 학습에 어려움이 많다. 왜 앞당긴다는 것인지 잘 몰라 혼란스럽다"고 토로했다. 일선 교육현장 관계자의 생각이 이럴진대 일반 학부모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싶다.
논의 과정에서 배제된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은 정부에 원점 재검토를 요구했고, 민주당에서는 '국민 패싱", '졸속 정책'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정책 발표 나흘 만인 2일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폐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총리 입에서 '폐기'가 언급된 이튿날(3일) 야권에서는 교육주체 97.9%가 해당 정책에 반대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애당초 취학연령을 조정하려면 초중등교육법 등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반대 여론마저 압도적으로 높다. 달콤한 대(對)정부 공격 포인트만 제공한 셈이다.
사면초가에 몰린 정부는 연일 융단폭격을 맞고 있는데 여당인 국민의힘은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가한 모습이다. 민심과 정부의 가교·완충재 역할을 포기한 듯하다. 대선·지선 연승에 도취되고, 눈앞의 권력 투쟁에 매몰된 탓이다. 당장 반정부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지도체제를 비대위로 바꾸겠다며 최고위원들이 줄사퇴하고, 당이 '비상 상황'인지를 두고 온종일 논의하고, 연판장을 돌렸다. 내부 징계를 받고 전국을 순회 중인 당대표는 비대위 전환 부당성을 설파하는 데 여념이 없다.
대표 직무대행인 권성동 원내대표는 3일과 4일 각각 국회 세종의사당 부지, 영등포 쪽방촌 현장을 찾았다. 당헌 개정과 함께 자신이 지명할 비대위원장도 물색하고 있다. 고강도 당정 분리를 몸소 실천하는 것인가 싶으면서도 최근 대통령에게 보낸 "당정이 하나되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문자를 보면 그런 건 또 아닌 듯 한데, 당정 간 소통 자체는 확실히 미흡해 보인다.
양금희 원내대변인은 통화에서 취학연령 관련 당정 교감 여부를 묻는 말에 "없었다"며 "당 입장은 정부가 국민 의견을 듣고, 반대가 많으면 정책을 채택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미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됐다. 정부에게는 성난 여론을 전달하고, 국민에게는 정부 입장과 자초지종을 알기 쉽게 설명해 논란을 수습해야 한다. 야당과는 협의를 통해 이견을 좁혀나가야 한다. 여당의 책무다. 비대위 전환 여부와 관계 없이 말이다.
/정호영 기자(sunrise@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