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국내 면세점들은 지난 2012년 말 황당한 일을 겪었다. 중국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국내 면세점 시장이 호황을 누리자 홍종학 당시 의원이 사업권을 가진 기업들이 특혜를 누리고 있다며 특허심사 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해 법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이후 국회에선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은 채 날치기 통과를 했고, 결국 2013년 1월부터 '관세법 개정'이 적용돼 면세 사업의 불확실성만 높아졌다.
최근 의원발의 법률안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홍종학법'으로 불리는 '관세법 개정'처럼 과잉·졸속·부실·묻지마 법안 등 저품질 법안으로 현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입법영향분석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8일 한국경제연구원이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홍완식 교수에게 의뢰한 '과잉·졸속입법 사례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법률안의 숫자는 제17대 국회부터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제17대 국회는 6천387건, 제18대 국회는 1만2천220건, 제19대 국회는 1만6천729건, 제20대 국회는 2만3천47건, 제21대 국회는 1만5천106건(올해 6월 20일 기준)으로 그 증가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의원발의 법률안이 증가하게 된 원인은 제17대 국회 이후 시민단체들이 국회의원 법률안 발의 및 처리실적을 분석·공개하면서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이 활성화됐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이 활성화되고 의원발의 법률안이 많아졌다는 사실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돼야 하는 점"이라면서도 "지나치게 많은 법률안이 발의되면 부실하게 심의·의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내용이 유사하거나 부실·졸속 법률안이 발의된다"며 "특히 규제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분석·검토 없이 규제 법안이 발의되는 경우 매몰비용 등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홍 교수는 "대안 통과 기준 가결률에 비해 원안·수정안 통과 기준 가결률은 매우 낮다"며 "이전에 발의된 법률안과 유사한 법률안을 함께 대안에 반영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를 가결된 것으로 보는 것은 의원발의 법안의 불필요한 증가를 초래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현행 제도 상 급증하는 법안에 대한 체계적이고 신중한 검토와 심사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잉·부실입법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 과잉·졸속·부실 입법 사례로는 ▲면세점 특허기간 단축으로 발생한 해고와 혼란 ▲윤창호법 위헌 ▲게임셧다운제 도입과 폐지 등을 들었다.
우선 면세점 특허기간을 5년으로 단축한 관세법 개정과 관련해선 재심사 탈락 면세점의 강한 민원 제기 등 부작용에 대해 면세점 추가 선정 등의 미봉책으로 대응해 혼란이 발생한 점을 지적했다. 이는 법안이 가져올 효과에 대한 입법영향분석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음주운전에 대한 법정형을 강화하는 국회의 도로교통법 개정(일명 '윤창호법')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회 이상 음주운전에 대한 일정한 시간적 기준 제시와 법정형의 세분화를 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위헌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는 국민의 법 감정에 기대지 않고, 신중한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게임셧다운제도 모바일 게임은 규제하지도 못하면서 글로벌 성장잠재력이 큰 국내 게임 산업을 위축시킨 대표적인 규제로 꼽힌다. 이는 지난해 11월 폐지됐으나, 효과도 거둘 수 없는 시대착오적인 규제로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조경엽 한경연 경제연구실장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속전속결로 입법된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도 산업계의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 없이 법안이 마련된 졸속입법 사례"라며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기업 규제 입법으로, 조속히 개선돼야 하는 규제"라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국회의 입법권을 제약하지 않으면서도 법안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제도적 보완장치로서 '입법영향분석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입법영향분석은 어떠한 법률안이 제대로 만들어지고 있는지, 집행가능성이나 현실적합성은 따져보았는지, 어떠한 재정적 효과를 초래할지, 수범자들에게 과도한 부담이나 규제를 내용으로 하는 것은 아닌지 등을 법률 시행 전에 검토하자는 것"이라며 "입법권을 침해하는 제도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국회의 자율적 규제라는 제도설계 측면에서 홍 교수는 "입법영향평가서를 작성하는 주체는 법률안을 발의하는 국회의원임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며 "국회 입법조사처와 국회 예산정책처 등 국회 소속의 입법지원조직이 입법영향평가서 작성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적정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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