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㉕ ‘파워 디지털 017’ 탄생…신세기통신 CDMA 상용화 [김문기의 아이씨테크]


[다시 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편

우리나라가 정보통신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첫발인 한국전기통신공사(KT), 한국데이터통신(LGU+), 한국이동통신서비스(SKT)가 설립된 지 꼬박 4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간 이동통신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해 슬로우 무버에서 패스트 팔로우로, 다시 글로벌 퍼스트 무버로 도약했습니다. 5G 시대 정보통신 주도권 싸움은 더 격렬해졌고, 다시 도전에 나서야할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부족하지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동통신 연대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담긴 독자의 제보도 받습니다 [편집자주]

신세기통신 초기 로고
신세기통신 초기 로고

[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한국이동통신이 CDMA 세계 최초 상용화를 달성한 1996년 1월 1일.

동시 상용화를 계획했던 신세기통신의 입은 바싹 말랐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 242개 기업이 한데 모여 있는 신세기통신은 상용화 전부터 대내외적인 갈등에 시달렸다. 외국 기업의 압박으로 인해 아날로그 방식 이동전화 서비스를 요청했으나 제2이동통신사 선정 조건과 맞지 않아 정보통신부로부터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뭇매만 맞았다. 게다가 그 사이 수장도 바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1월 1일에는 상용화 시기를 6월로 늦춰 달라는 요청을 할 정도로 기약할 수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도 그럴것이 신세기통신은 주파수에 대한 열세, 아날로그 없이 순수 CDMA로만 커버리지를 구축해야 한다는 인프라 제약, 도무지 섞이지 않는 내부 조직문화까지 해결해야할 과제가 산적했다.

이같은 상황을 고려한듯 정태기 신세기통신 사장은 1월초 각 매체를 통해 신세기 통신의 CDMA 로드맵을 공개하고 서비스 차별화를 통해 승부수를 띄우겠다는 출사표를 던졌다. 장치산업 특성과 PCS 도전 등으로 인해 3년간 적자가 예상되기는 했으나 빠른 가입자 확보를 통해 그 시기를 1년 내로 앞당기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기약할 수 없는 4월 상용화를 위기이자 기회라 설득했다.

이후 1월말 6개월 내 상용화를 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는 그 때, 정 사장은 서비스 개시일을 4월로 못박고 비상근무체계에 돌입했다. 임원회의 명칭조차 ‘4월 상용서비스 개시 추진위원회 회의’로 바꿀만큼 강한 의지를 보였다.

◆ ‘전파의 힘이 강하다’…CDMA 경쟁 촉발

신세기통신은 1996년 1월 기지국과 교환국 설치 등 준비작업을 계획대로 진행했다. 관련부서가 비상근무에 들어갈 정도로 전직원이 총동원됐다. 4월 상용화를 위해 우선적으로 2월초부터 수도권과 대전권 등 1단계 서비스 지역에서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2단계는 부산, 3단계는 대구와 광주, 강원권을 대상으로 했다. 사내직원과 관련인사 600명이 달려들어 CDMA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3월에 들어서자 신세기통신은 일반고객 2천명을 대상으로 시범 서비스를 고도화했다. 시범기간동안 모든 요금을 무료로 풀었다. 시범고객은 2월 중순부터 신세기통신 대리점을 통해 접수 받았다. 그 결과 통화소통률 95%를 달성한 신세기통신은 자신감을 얻었다. 올해안에 25만명에서 3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겠다는 내부 계획을 수립했다.

드디어 4월 1일. 정태기 신세기통신 사장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에 올랐다. 그 자리는 상용 서비스를 기념하는 017 개통식이 열린 곳이다. 신세기통신의 식별번호 ‘017’은 ‘전파의 힘이 강하다’라는 슬로건을 통해 ‘파워디지털 017’로 불렸다.

개통식을 마친 정 사장은 다시 서울 호텔신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곳에서는 신세기통신의 CDMA 상용화를 기념하기 위한 축하행사가 열렸다. 이수성 국무총리와 이석채 정보통신부 장관, 김우석 내무부장관, 이우영 중소기업청장, 이각범 청와대 정책기획 수석, 심우영 청와대 행정수석뿐만 아니라 김만제 포스코 회장과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도 자리했다. 경쟁사인 서정욱 한국이동통신 사장도 함께 했다.

화려한 시작을 알리기는 했으나 신세기통신에게는 해결할 수 없는 핸디캡이 있었다. 한국통신과 같은 유선 네트워크 인프라도, 한국이동통신의 아날로그 무선 이동통신 인프라도 없기에 온전히 CDMA로만 서비스가 가능했다. 즉, CDMA 커버리지가 없다면 아날로그로 연결한 한국이동통신과 달리 속절없는 셈이다.

신세계통신은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핸디캡을 인정했다. 시스템이나 네트워크 안정성 등의 문제는 해결했으나 초기 가입자들이 불이익을 받은 가능성이 있기에 보상 차원에서 한시적 요금할인 혜택을 3개월간 적용했다. 그 내용으로 기본료 2만2천원은 그대로였으나 당초 요금보다 50%를 할인된 10초당 15원을 책정했다. 여기에 정 사장은 통화 중 끊어지면 요금 자체를 받지 않는 과금제도 도입을 예고하기도 했다.

신세기통신의 가세로 CDMA 가입자는 빠르게 늘어났다. 서비스 2개월도 채 안된 5월 27일. 한국이동통신 3만5천명, 신세기통신 1만5천명을 기록하면서 5만명을 돌파했다. 공급 대비 수요가 폭증하자 단말 수급을 위한 신경전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물론 초기 서울 수도권과 대전권에만 CDMA 서비스를 상용화했던 신세기통신은 타 지역에서 통화가 되지 않는다는 고객 불만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한국이동통신과 신세기통신이 빠르게 시장 선점에 나서기는 했으나 이후 PCS 도전으로 인해 우리나라 이동통신 시장은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목차

1편. 삐삐·카폰 이동통신을 깨우다

① '삐삐' 무선호출기(上)…청약 가입했던 시절

② '삐삐' 무선호출기(中)…‘삐삐인생' 그래도 좋다

③ '삐삐' 무선호출기(下)…’012 vs 015’ 경합과 몰락

④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上)…"나, 이런 사람이야!"

⑤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下)…’쌍안테나' 역사 속으로

2편. 1세대 통신(1G)

⑥ 삼통사 비긴즈

⑦ 삼통사 경쟁의 서막

⑧ 이동전화 첫 상용화, ‘호돌이’의 추억

➈ 이동통신 100만 가입자 시대 열렸다

⑩ 100년 통신독점 깨지다…'한국통신 vs 데이콤’

3편. 제2이동통신사 大戰

⑪ 제2이통사 大戰 발발…시련의 연속 체신부

⑫ 제2이통사 경쟁율 6:1…겨울부터 뜨거웠다

⑭ ‘선경·포철·코오롱’ 각축전…제2이통사 확정

⑮ 제2이통사 7일만에 ‘불발’…정치, 경제를 압도했다

⑯ 2차 제2이통사 선정 발표…판 흔든 정부·춤추는 기업

⑰ 최종현 선경회장 뚝심 통했다…’제1이통사’ 민간 탄생

⑱ 신세기통신 출범…1·2 이통사 민간 ‘경합’

4편.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⑲ ‘라붐’ 속 한 장면…2G CDMA 첫 항해 시작

⑳ 2G CDMA "가보자 vs 안된다"…해결사 등판

㉑ CDMA 예비시험 통과했지만…상용시험 무거운 ‘첫걸음’

㉒ 한국통신·데이콤 ‘TDMA’ vs 한국이통·신세기 ‘CDMA’

㉓ 한국이동통신 도박 통했다…PCS 표준 CDMA 확정

/김문기 기자(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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