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5년간 반기업 정서로 눈치보기에 바빴던 주요 그룹들이 '친기업' 기조를 보이고 있는 새 정부가 들어선 후 국내 경제 활성화를 위해 앞 다퉈 나서고 있다. 윤석열 새 정부 출범과 조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을 계기로 미래 신사업을 중심으로 한 재계의 대규모 투자 활동도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 현대차, 롯데, 한화, 두산에 이어 SK, LG도 이날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7개 그룹이 지난 24일부터 3일간 발표한 투자금은 총 945조6천억원으로, 올해 국가 예산인 607조7천억원을 훌쩍 넘는다.
이 중 재계 맏형인 삼성은 가장 많은 투자금을 내놨다. 향후 5년간 국내외서 450조원을 투자키로 한 것이다. 이는 삼성이 문재인 정부 때 5년간 투자한 330조원 대비 120조원 늘어난 것으로, 이 중 80%인 360조원은 국내에 투자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나설 방침이다. 단일 기업 중에선 사상 최대 투자액이다.
이번 대규모 투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의지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 부회장은 다양한 공식 행사에서 좋은 일자리 창출과 대규모 투자에 앞장설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해 온 바 있다.
삼성은 이번에 반도체·바이오 등 2대 첨단 산업, 신성장 정보기술(IT)을 중심으로 신규 투자를 확대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5년간 반도체, 바이오, 신성장 IT 등에서 8만 명의 청년을 채용하기로 했다. 스마트공장 지원 고도화, 협력 회사 상생 프로그램 강화 등 중소기업과의 상생 협력에도 힘을 싣는다.
올해 재계 2위로 올라선 SK그룹은 반도체(Chip), 배터리(Battery), 바이오(Bio) 등 이른바 BBC 산업으로 압축되는 핵심 성장동력을 강화하기 위해 오는 2026년까지 247조원을 투자키로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5만 명의 인재도 국내서 채용키로 했다.
SK그룹은 이 중 179조원을 국내에 투자해 국가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방침이다. 국내 투자 금액은 투자를 발표한 주요 대기업 중 가장 많다.
특히 최 회장은 반도체 및 반도체 소재에 전체 투자 규모의 절반이 넘는 142조원을 투자키로 했다. 이 외에 ▲전기차 배터리 등 그린 비즈니스 67조4천억원 ▲디지털 24조9천억원 ▲바이오 및 기타 12조7천억원을 투자한다.
현대차그룹은 오는 2025년까지 4년간 국내에 63조원을 투자키로 했다. 현대자동차·기아·현대모비스 등 3사를 주축으로 전동화·친환경, 신기술·신사업, 기존 사업 경쟁력 강화 등에 나설 방침이다. 특히 전동화·친환경 사업 고도화에는 16조 2천억원, 내연기관 차량의 상품성·서비스 향상에는 38조원을 각각 투입한다. 이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대미 투자 전략을 공개한 데 이어 국내 투자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후 오는 2030년까지 국내에서만 전기차 분야에 21조원을 투자키로 한 바 있다. 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에 맞춰 지난 22일 미국 조지아 전기차 공장에 55억 달러(약 7조원) 신규 투자를 비롯해 자율주행·인공지능(AI) 등 미래 사업 분야에 50억 달러(약 6조3천600억원)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직접 영어로 발표해 주목 받았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역시 국내 경제 활성화를 위해 팔을 걷어 부쳤다. 또 한국을 LG그룹의 최첨단 고부가 제품 생산기지 및 연구개발 핵심 기지로 삼는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LG그룹은 배터리, 전장, AI, 바이오 등 미래 성장 분야를 중심으로 오는 2026년까지 국내에만 106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 중 10조원 이상을 배터리와 배터리 소재 분야에, 3조6천억원은 AI 분야에, 1조5천억원 이상을 바이오 분야에 집중 투자할 방침이다. 또 2026년까지 매년 약 1만 명을 직접 채용하는 한편, 국내 협력사와의 상생 생태계 구축을 위한 투자도 계속 늘려나갈 계획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신규 사업 추진으로 국내 산업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5년간 총 37조원을 집중 투자하기로 했다. 신성장 테마인 헬스 앤 웰니스, 모빌리티, 지속가능성 부문을 포함해 화학·식품·인프라 등 핵심 산업군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또 코로나19 이후 위축됐던 유통∙관광 산업 역량 강화를 위한 시설 투자도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바이오 의약품 CDMO 사업 진출을 준비 중인 만큼 롯데는 해외 공장 인수에 이어 1조 원 규모의 국내 공장 신설을 추진한다. 롯데케미칼은 5년간 수소 사업과 전지소재 사업에 1조6천억 원 이상을 투자한다. 유통 사업군은 8조1천억원을 투자해 상권 발전 및 고용 창출에 앞장선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역시 오는 2026년까지 에너지, 탄소 중립, 방산·우주항공 등의 분야에 총 37조6천억원을 쏟아붓기로 했다. 국내에만 20조원이 투하되며 이를 통해 2만 명 이상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내다봤다.
두산그룹도 향후 5년간 소형모듈원자로(SMR), 수소터빈, 수소연료전지 등 차세대 에너지 분야에 5조원을 투자키로 했다.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 한미 정상회담 후 원전 기술 이전과 수출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양국의 '원전 동맹'을 공식화한 데 따른 것이다. 이를 통해 국내 에너지 산업 생태계 활성화에 적극 나서는 한편, 향후 협동로봇, 수소드론, 반도체 등 미래형 사업에도 투자를 늘려나간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기업들이 일제히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은 것은 윤석열 정부의 핵심 경제 기조인 '민간 주도 성장'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는 한편, 이에 화답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기업들은 지난 26일 최태원 회장 주도로 '신(新)기업가정신'을 선포한 직후 경쟁적으로 대규모 투자 계획을 쏟아 내고 있다. 최 회장이 신기업가정신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방식으로 '청년 채용 릴레이' 등을 각 기업들에 제안한 바 있다.
일각에선 지난 5년간 '반기업 정서'를 드러낸 문재인 정부 체제에서 눈치만 보던 기업들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규제 개혁과 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맞물리며 선제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현대차 등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한 데 대해 '국내 투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지난 10일 취임 후 기업들의 기를 살리기 위해 주요 그룹 총수들을 정부 주도의 굵직한 행사에 잇따라 초대하고 있다는 점도 이번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해석도 있다. 실제로 5대 그룹 총수들은 대통령 취임식과 이후 진행된 만찬에 이어 지난 20일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만찬 자리에도 초대돼 모습을 드러냈다. 또 미국 측과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하며 양국 기업 간 협력 체제도 더 강화했다. 지난 25일에는 국내 5대 그룹 총수들이 윤 대통령의 초청으로 사상 처음 중소기업 관련 행사에 모두 참석해 주목 받았다.
재계 관계자는 "친노조·각종 규제 등으로 기업들에 어려운 시기였던 문재인 정부와 달리 윤 대통령은 기업의 발목을 잡는 '족쇄'를 풀겠다는 이른바 '친기업' 노선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며 "새 정부가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방해하는 규제를 없애겠다면서 민간 중심의 성장전략을 제시한 만큼 기업들도 속속 이에 화답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윤 대통령의 향후 움직임에 대한 재계의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윤 대통령 역시 기업들에게 화답하기 위해 경제단체들이 그동안 지적해왔던 반기업 규제들에 대한 칼질을 본격화 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기업들은 윤 대통령이 과도한 정규직 보호와 주 52시간제, 최저임금제 등 문재인 정부에서 강화됐던 노동 시장 규제에 대한 대대적 손질과 함께 중대재해법을 보완해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규제 적용 방식도 법·정책에서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될 것으로 예측했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 때 급격히 올라간 법인세도 인하될 지를 두고 기대하는 눈치다.
일각에선 이재용 부회장, 신동빈 회장 등에 대한 사면 결정도 조만간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앞서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5단체는 지난달 25일 이재용 부회장, 신동빈 회장 등이 포함된 '특별사면복권 청원서'를 청와대와 법무부에 제출했으나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주요 경제단체장인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석가탄신일 당시 불발됐던 기업인 사면을 조만간 새 정부에 재차 요청할 계획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미국뿐만 세계 각국에서 관심 있게 지켜보는 영향력 있는 기업인으로, 반도체가 국가기간산업으로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의 역할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며 "이 부회장이 적극적인 경영 활동으로 경제성장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삼성 컨트롤타워인 이 부회장의 리스크를 빠른 시일 내에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친기업 행보를 보이고 있는 데다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기업들이 한국 경제 성장의 주역일 뿐 아니라 경제안보까지 책임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줬던 것이 기업들에겐 힘이 됐던 것 같다"며 "앞으로 새 정부가 과감한 규제개혁과 투자 인센티브 등 제도적 환경을 조성한다면 이 기업들 외에 다른 기업들도 보다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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