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⑬ 선경에 쏟아지는 집중견제…’007 공모작전’ [김문기의 아이씨테크]


[다시 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제2이동통신사 大戰편

우리나라가 정보통신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첫발인 한국전기통신공사(KT), 한국데이터통신(LGU+), 한국이동통신서비스(SKT)가 설립된 지 꼬박 4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간 이동통신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해 슬로우 무버에서 패스트 팔로우로, 다시 글로벌 퍼스트 무버로 도약했습니다. 5G 시대 정보통신 주도권 싸움은 더 격렬해졌고, 다시 도전에 나서야할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부족하지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동통신 연대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담긴 독자의 제보도 받습니다 [편집자주]

[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 문구 하나로 전국을 들썩이게 한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은 그 관심만큼 많은 오해와 소문, 추측들을 야기시켰다. 물밑에서는 치열한 로비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외부적으로는 선정 당위성을 세우기 위한 작업이 수시로 교차돼 전개됐다. 이같은 수싸움은 결론적으로 선정 이후까지 많은 영향을 끼쳤다.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중) [사진=SK그룹]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중) [사진=SK그룹]

◆ 선경으로 쏟아지는 집중포화

제2이동통신사업자를 놓고 경쟁을 벌인 곳은 선경과 포항제철, 코오롱, 쌍용, 동양, 동부 등 6개 그룹사였다. 이 중 가장 집중적인 포화를 감내해야 했던 곳은 선경이다.

선경으로 향한 집중포격은 사실 예견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정치적으로 최종현 SK그룹 회장이 노태우 대통령과 사돈지간이라는 점이 거론돼 특혜 시비를 불러 일으켰다. 기업 측면에서는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에 참여할 수 없도록 지분제한이 걸린 삼성, 현대, 대우, 럭키금성 등 4대 기업을 제외한 5위 그룹에 속해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시장 측면에서는 가장 유력한 후보를 낙마시킴과 동시에 자신들의 치부를 가릴 수 있다는 일거양득의 전략 구사가 가능했다.

사실 특혜 시비는 선경 이외에도 불거진 바 있다. 포항제철의 경우 박태준 회장이 집권당 최고위원이었고, 코오롱그룹 회장은 정계 유명인사인 김종필 민자당 최고위원과 사돈관계에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두 그룹은 선경과 함께 1차 심사평가에서 나란히 후보군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대내외적인 어려움 속에서 선경이 선택한 전략은 ‘진정성’이었다. 정보통신사업 진출에 대한 당위성을 분명히해야 한다는데 집중했다.

선경그룹은 1975년부터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 목표를 추진해 1980년 11월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하면서 가시적 성과를 거뒀다. 이후 다음 단계로의 진화를 위해 장기경영을 목표로 ‘정보통신사업’을 낙점했다.

선경그룹 사보 ‘선경’의 1992년 1월호에서는 이같은 결정에 대한 故 최종현 SK그룹 회장의 고민이 적혀 있다.

“‘석유에서 섬유까지’의 수직계열화 완성이 가시화될 즈음인 10여년 전부터 앞으로 어떤 사업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심사숙고해왔습니다. 새로운 사업이라고 해서 아무 업종에나 진출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남들이 하니까 한다는 식은 곤란합니다. 당시 각광을 받던 가전업계나 자동차 업계의 진출도 고려한 적이 없지는 않지만 이들 분야는 이미 충분한 경쟁체제가 이루어져 있어 기존 업체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하고 국가적으로도 낭비를 초래할 소지가 있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존업체와의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고 국가산업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분야를 우선적으로 생각했고 급속히 진전되고 있는 글로벌리제이션 시대에서의 성장 가능성도 고려했습니다. 이런 분야들 중 나는 정보통신사업을 다음 사업영역으로 선정하여 그룹의 중점사업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보통신 분야에서도 하드웨어 부문은 기존의 전자업체가 이미 진출해 있거나 진출이 용이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우리가 경쟁우위를 확보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서, 우선 새로운 분야이며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고 경쟁에서 비교우위의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서비스 및 소프트웨어 부문을 중심으로 가자는 것입니다"

목표 설정에 따라 선경은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다. 1980년대 중반부터 정보통신 사업을 준비해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 선경정보통신과 선경텔레콤을 거쳐, 제2이동통신사 선정을 위한 대한텔레콤으로 단계별 절차를 밟아 나갔다.

하지만 국내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1980년초만 하더라도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 발족으로 자회사 격인 한국이동통신서비스(현 SKT)가 운영되고 있었으며, 이동통신을 전담한 한국이동통신서비스의 통신서비스는 무선호출(삐삐)와 차량다이얼전화(카폰)이 전부였다. 법과 제도적으로도 현재의 이동전화를 위한 이동통신 분야는 미개척지였다.

우선적으로 선경그룹은 1984년 1월 미주 경영기획실에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발족시켰다. 선진국인 미국의 기술을 경험하자는 취지였다. 1989년 10월 24일 미국 뉴저지 주에 현지법인 유크로닉스를 설립했다. 국내서는 1990년 5월 선경정보시스템을 세우고 같은해 10월 YC&C를 출범시켰다. 1991년 4월 선경텔레콤으로 역량을 집중시켰다. 이 선경텔레콤이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에 공모한 선경그룹의 컨소시엄 ‘대한텔레콤'의 전신이다.

선경그룹이 미주 경영기획실에서 정보통신사업을 구상했을 당시 최태원 SK 회장이 그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SK 50년사에서는 최태원 회장이 직접 회상한 당시 상황이 묘사돼 있다.

“당시 미국에서는 AT&T와 같은 회사들의 분할이 진행되고 있었고 셀룰러폰이 나오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지금처럼 이렇게 성장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습니다만 꽤 유망해 보였고 리스크도 적어 보였습니다. 또한 선경그룹이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해서 이동전화를 초석으로 깔고 상황을 봐서 사업을 확대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회장님(최종현 회장)께 드렸습니다. 그 이후로 미국 이동전화회사에 투자를 하고 경험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선경그룹으로서는 1990년 7월 체신부가 통신사업구조조정안을 내놓고 제2이동통신사업자를 선정하겠다는 발표가 반가웠을 수밖에 없었다. 선경은 유공과 함께 1989년부터 독자 추진하던 정보통신관련 사업팀을 그룹차원에서 경영기획실 산하 사업개발팀에 통합하고 정보통신사업을 위한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 ‘공정성’ 논란 정면돌파 나선 체신부

제2이통신사업자 공모에 공정성 논란이 발생할 것으로 예견한 체신부는 시작부터 공정한 심사를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내비쳤다. 실제 제2이동통신사업자 심의를 진행할 통신위원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기존대로 제2이동통신사 선정에 나서겠다고 부처내 합의가 이뤄짐에 따라 곧장 현판식을 개최하고 업무에 돌입했다.

통신위원회는 윤승영 초대 위원장을 필두로 이건웅 서울고법 부장판사, 전윤철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 상임위원, 김세신 법제처법제조정실장, 경상현 한국전자통신연구소장, 조백제 통신개발연구원장, 김길창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박정식 서울대 교수 등 8명으로 구성됐다.

체신부는 아울러 각 컨소시엄들의 공모 관련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 일례로 컨소시엄이 4월 24일 체신부에 제출한 질문은 1개월이 채 안된 5월 13일 답변이 배부됐는데 그 분량이 무려 134쪽에 달했다.

제2이동통신사업자 공모 실무 책임자인 박영일 체신부 통신정책심의관은 언론을 통해 거듭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공정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선정 이후 결과를 공개하고 엄격한 심사를 통해 특혜를 철저하게 배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에 따른 심사중점 사안들도 공개했다.

1차 심사에서는 ‘재무구조’를 가장 큰 비중으로 살피겠다고 발표했다. 이동통신사업은 장치산업이라는 특성상 초기 막대한 투자비용을 감내해야 한다. 계속적인 연구개발비 투입도 병행해야 하기에 최소한 사업을 시작한 이후 5~6년동안 적자가 예상됐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체력이 있어야 가능했다.

아울러 사업허가 후 1년6개월내 최소 1천400억원의 자본금을 납입하고 상당액의 이동통신기술연구개발비 일시 출연금도 내야 했다. 적어도 2000년까지는 5천억원에서 1조원 가량을 설비투자비와 연구비에 쏟아 넣어야 했다.

1차 심사는 상위 2개사와 나머지 업체와의 점수가 현격한 경우를 제외하고 3개사를 선정하기로 했다. 2차심사에서는 다각도의 논의를 거쳐 1개 사업자가 최종적으로 선택된다.

2차 심사에 대한 업계의 관심은 ‘연구개발출연금’으로 귀결됐다. 업계 납입할 출연금 액수 다과에 따라 점수가 배정됐기 때문이다. 즉, 출연금이 점수와 직결되기에 경쟁 컨소시엄 대비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는 평가항목이기도 했다. 다만, 어디까지 쏟아 넣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부담감 역시 상당했다.

이에 따라 체신부는 상한성을 설정해 초과하는 금액은 평가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출연금의 상한선 기준은 정부가 이동통신기기에 관한 연구개발비 722억원을 책정하고 이동통신 올 한해 출연금이 226억원인 점을 감안해 결정하기로 했다. 출연금 상한선은 심사 이후 모두 공개하기로 한 만큼 2차 심사 결과와 아울러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기술개발출연금이 여당의 정치자금으로 쓰이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을 제기하고, 해당 기업들간 업계 추산치 차이가 커 불확실성을 거둬 달라는 차원에서 적정 수준 여부에 대한 민원이 재차 접수됐다.

이에 따라 체신부는 2차 심사결과 발표 후 공개하기로 한 기술개발출연금 상한선을 공모 접수 시작일 직전인 6월 25일 300~400억원이라는 대강의 기준을 각 컨소시엄의 지배주주측에 통보해 불신을 해소했다.

◆ 공모 서류만 트럭 11대·캐비닛 100여개·80여만쪽…"줄을 서시오"

6월 24일 저녁.

제2이동통신사업자 공모를 이틀 남겨두고 6대 그룹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공모를 이틀 앞두고 있는 예민한 상황에서 경쟁자들이 얼굴을 맞대게 된 셈이다. 이렇게 모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소위 '순서뽑기'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공모 관련 서류의 양이 너무나 방대하고 보안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만큼 만일의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체신부가 이들을 불러 세운 것. 마치 월드컵 본선 조추점에 나서듯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부 사업공모에 내노라하는 재벌가 대표들이 모인 것 자체가 이례적 풍경이었다.

순서 뽑기 결과 동양이동통신(동양)과 신세기통신(포항제철), 제2이동통신(코오롱)이 한 조로 13시부터 순차 접수하기로 했다. 2조는 미래이동통신(쌍용), 동부이동통신(동부), 대한텔레콤(선경)으로 순차 이어가기로 결정되면서 전야제는 막을 내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6월 26일. 12시.

예상한대로 체신부 뒤뜰과 접수처인 15층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뤘다. 통인익스프레스, 대한통운 등 운수업체들의 트럭 11대와 80여만쪽의 서류가 담긴 100여개의 캐비닛이 바쁘게 움직였다. 체신부가 배정한 비표를 받은 관련회사 직원들은 서로를 견제했다. 각 컨소시엄당 20여명의 경호 및 운송요원의 눈 역시 바쁘게 움직였다.

앞서 이같은 방대한 분량의 공모 관련 서류를 위해 컨소시엄마다 각고의 노력(?)이 따르기도 했다. 6천~1만쪽에 이르는 사업신청서를 인쇄하기 위해서 미국과 싱가포르에 인쇄 작업을 의뢰한 곳도 있었다. 분실의 위험이 있어 2대의 항공기를 띄우기도 했다. 500쪽 책을 2만5천여권 쌓을 분량의 높이 수준의 서류가 이 과정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포항제철의 경우 아예 여의도 63빌딩 본부 내 초고속 복사기와 제본설비를 직접 구축했다. 트럭 2~3대 분양의 신청서를 자체적으로 인쇄하기 위함이다.

선경그룹은 보안요원 30명을 동원해 특수장금장치가 붙은 철제 캐비닛 25개를 2대 트럭에 나눠 옮겼다. 동부그룹은 이동전화 셀사이트 망작업으로 전국의 지세 및 산세 조사에 전국 지역지도 1만여장을 사들이기도 했다. 또 다른 컨소시엄은 원본과 복사본을 포함해 2.5톤 트럭 두 대를 갖추고 가스총을 소지한 경원경찰을 대동해 24시간 감시체제에 돌입했다.

접수 당일 역시 작은 헤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동양이동통신은 일부 서류에 일련번호를 누락해 접수 현장에서 수백쪽에 달하는 번호를 써 내느라 진땀을 뺐다. 포철은 대부분의 지배주주들과 함께 서류 포장을 마친 후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각 컨소시엄의 절실함이 컸다는 의미다.

007 작전을 방불케한 제2이동통신사업자 공모 접수는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끝마쳤다. 심사위는 1차 심사 결과를 내기 위해 합숙에 돌입했다. 그리고 7월 29일 1차 심사 결과 발표에 따라 제2이동통신사 사업자 후보군이 3곳으로 압축됐다.

▲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1부. 삐삐·카폰…이동통신을 깨우다

① '삐삐' 무선호출기(上)…청약 가입했던 시절② '삐삐' 무선호출기(中)…‘삐삐인생' 그래도 좋다③ '삐삐' 무선호출기(下)…’012 vs 015’ 경합과 몰락 ④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上)…"나, 이런 사람이야!"⑤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下)…’쌍안테나' 역사 속으로

2부. 1세대 통신(1G)…삼통사 라이즈

⑥ 삼통사 비긴즈⑦ 삼통사 경쟁의 서막⑧ 이동전화 첫 상용화, ‘호돌이’의 추억➈ 이동통신 100만 가입자 시대 열렸다⑩ 100년 통신독점 깨지다…'한국통신 vs 데이콤’

3부. 제2이동통신사 大戰

⑪ 제2이통사 大戰 발발…시련의 연속 체신부⑫ 제2이통사 경쟁율 6:1…겨울부터 뜨거웠다
/김문기 기자(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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