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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여행]<32> 배고픈 게 아니라, '터치헝거(Tough Hunger)'랍니다


치매어르신의 몇 가지 대표적인 증상 가운데 하염없이 반복되는 '배가 고프다'는 하소연이 있다. 아침 식사를 하고 돌아서면, '언제 아침을 먹느냐'고 묻는다. 한 주간보호시설의 경우 오전에 간식을 나눠 주는데 몇몇 치매 어르신이 '왜 나만 간식을 주지 않느냐'고 계속 따지는 바람에 애를 먹는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이렇게 치매 어르신이 계속 밥을 조르는 현상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단기기억장애'를 원인으로 꼽는다. 우리의 기억은 단기적으로 해마에 저장됐다가 대뇌피질로 이동해 축적된다. 그런데 치매에 걸리면 해마의 기능이 망가져 단기기억을 저장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주로 밥 먹은 일을 까먹을까? 세수한 것을 까먹고 다시 세수를 한다거나,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고맙다'는 말을 계속하는 일은 없는데 말이다.

치매어르신의 이상행동의 배경에는 항상 초조와 불안이 있는데 이 초조와 불안이 허기짐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영혼의 목마름이나 외로움이 '배고픈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사람을 굶주리게 하는 것은 음식물만은 아니라고 한다. 최근에 '터치 헝거(touch hunger)'라는 새로운 용어를 접하게 됐다.

악수, 포옹, 볼키스 등 스킨십이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서구에서는 '터치'가 금지됐던 지난 2년간 수 많은 사람들이 불안, 초조 등 정신적 문제를 경험했다고 한다. '터치 헝거'가 괴로운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스킨십이 발달한 문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몸의 온기가 전하는 위로와 안심이 얼마나 큰 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병상의 환자, 슬픔에 잠긴 사람에게 구구절절한 위로의 말보다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된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딱 36.5도의 체온이 상대방의 체온에 닿을 때 인간은 승인, 공감, 연대감을 느끼도록 진화한 모양이다.

스킨십은 친밀하거나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을 때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 회의를 시작하기 전 협상 상대방과 악수를 하는 것 만으로도 협상이 더 잘 풀린다 거나 반대로 독방에 갇혀있는 죄수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죄수들에 비해 훨씬 더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보이게 된다는 연구들은 우리에게 체온의 힘을 알려준다. 스킨십이 부족할 때 우리는 더 쉽게 우울해지며 면역체계가 떨어지고 몸 안에는 염증이 만들어지고 불안과 초조가 극대화 된다.

터치, 또는 스킨십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점은 과학적으로도 밝혀진 사실이다. 기분 좋은 스킨십을 할 때 사람의 몸에서는 사랑의 호르몬이라 불리는 '옥키토신'이 배출된다. 옥키토신은 산모가 태아를 출산하거나 수유를 할 때 주로 배출되는 호르몬으로 사회적 소통, 짝짓기, 모성애 등 다양한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옥키토신은 진통 효과와 면역력을 증가시키는 효과도 갖고 있다고 한다.

스킨십 결핍은 모든 사람들의 문제가 됐다지만, 터치가 가장 결핍돼 있는 사람들은 바로 노인이 아닐까 싶다. 독거 노인들에게 사람이 바로 사치품이다. 따뜻한 눈빛과 손길, 친밀함은 점점 드물어진다.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노인들의 경우 역시 신체적 접촉은 최소한으로 이뤄진다.

노인의 '터치헝거'가 심각해 지는 데에는 노인을 터부시하는 문화의 영향도 작용할 것이다. 우리는 노인의 몸을 닿아서는 안 되는 금기의 대상으로 여긴다. 노인냄새, 조류의 발과 같이 딱딱하게 굳어진 손, 몸비듬, 이런 것들은 우리를 질색하게 하고, 노인의 아우라처럼 여겨지는 죽음은 이들을 외면하고 싶게 한다.

친구들에게 '부모님의 몸을 만져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손톱을 깎아드리고, 발을 씻겨드리고, 등을 밀어드리고, 어깨를 주물러 드렸다는 친구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한 친구는 '엄마를 안았는데 왜 이리 작고 가벼운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수술실에서 아버지를 안아 옮겨야 했던 한 친구 역시 '이 작은 체구의 노인이 그 동안 가족들에게 갖은 횡포를 부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독재자처럼 군림할 수 없는 아버지를 더 이상 미워할 수 없다는 사실도 털어놓는다.

치매 노인에게 허그와 스킨십은 최고의 약이다. 치매 노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도, 손을 잡고 등을 어루만지는 행동은 할 수 있는데 이런 단순한 스킨십의 효과는 크다. 단지 손을 잡거나 가볍게 허그하는 것만으로 치매 노인의 불안과 초조는 조금씩 진정될 것이다.

사람과의 터치와 허그를 대신할 것은 없을까? 네덜란드의 한 연구자는 '사물을 안는 것도 불안을 덜어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발표했다. 커다란 곰 인형을 안고 있거나, 애완동물을 안는 것도 똑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려동물이 주는 진정효과는 노인이나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극대화된다. 영국의 한 호스피스병동을 방문했을 때 마침 말기암환자의 배 위에 훈련 받은 반려견을 올려놓는 것을 봤다. 그 반려견은 영국의 애니멀세러피협회에 의해 선발돼서 훈련 받은 특별한 개라고 한다. 반려견은 환자의 배 위에 고개를 얹어 놓고 가만히 있을 뿐인데 환자의 숨결이 차분해지고 얼굴에 편안한 표정이 번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국내에도 이런 훈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유기견들을 훈련시켜 독거 노인들과 함께 지내게 하는 방법도 궁리해 볼 만하다.

하지만 그 어떤 궁리에 앞서, 우리의 온기를 나누어줄 친절이 먼저 필요하다. 누구에게도 예외가 아닌 노년과 죽음, 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문화는 언제나 아쉽다.

◇김동선 조인케어(www.joincare.co.kr)대표/우송대학교 사회복지아동학부 초빙교수는 30대에 초고령국가 일본에서 처음 노인문제를 접한 뒤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 두고 노인문제전문가로 나섰다.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 '마흔이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노후대책7'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번역)' '노후파산시대, 장수의 공포가 온다(공저)' 등을 썼으며 연령주의, 치매케어등을 연구하고 있다. 치매에 걸려서도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며 좋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요양 현장을 만들기 위해 '사람중심케어실천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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