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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시대] 文정부 검찰총장에서 대통령까지… 윤석열의 발자취


검찰 26년 봉직… 정부와 대립하다 사직, 제1야당 후보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아이뉴스24 정호영 기자] 3·9 대선에서 국민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대한민국호(號) 수장으로 선택했다. 윤 당선인은 10일 새벽까지 이어진 개표 끝에 득표율 48.56%를 획득,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47.83%)에게 0.73%포인트 차로 신승하며 제20대 대통령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2020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으로서 현재권력에 맞서다 중도 사퇴한 그는 이듬해 6월 말 정권교체 깃발을 들고 대선 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이후 1개월만에 제1야당에 입당하고 7개월간 혹독한 대선 레이스를 질주한 끝에 이 후보를 역대 대선 최소 격차로 꺾고 대한민국 미래 5년을 이끌어갈 대통령으로 우뚝 섰다.

1960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최정자 이화여대 교수의 1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윤 당선인은 검사로 26년을 보냈다. 1983년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무려 '9수' 끝에 제33회 사법시험(1991년)에 합격했다. 제23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대구지검 검사로서 첫 발을 뗐다. 8년 만에 사직한 그는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로 재직했지만 1년 만에 검찰에 복귀했다.

이후 대검 중앙수사1과장·서울지검 특별수사제1부 부장검사·중앙서울지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고 검찰총장까지 올랐다.

검사 생활이 마냥 순탄치는 않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을 지내던 윤 당선인은 2013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과정에 정부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하며 "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해 '강골 검사'로 주목받았다. 이 사건으로 윤 당선인은 평검사로 좌천돼 대구·대전고검에서 근무했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탄핵 정국에서 박영수 특검팀 수사팀장으로 임명되며 반등 계기를 맞았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검찰 핵심 요직인 서울지검장에 발탁됐고,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양승태 전 대법원장 수사 등 '적폐청산' 선봉장으로서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검찰총장까지 고속 승진했다.

하지만 같은 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자녀 입시특혜 의혹 등 의혹 수사를 진두지휘하며 문 대통령 및 여권과 대립각을 세웠다. 2020년 여당 대표를 지냈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법무부 수장으로 취임하면서는 정권과 불화가 가속됐다. 당시 추 장관으로부터 두 차례 직무배제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결국 윤 당선인은 2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지난해 3월 4일 직을 사퇴했다.

윤석열 당시 대선 예비후보가 2021년 7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입당원서를 제출한 뒤 권영세 대외협력위원장, 의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성진 기자]
윤석열 당시 대선 예비후보가 2021년 7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입당원서를 제출한 뒤 권영세 대외협력위원장, 의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성진 기자]

윤 당선인은 같은 해 6월 29일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무너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다. 정권교체를 반드시 해내겠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1개월 뒤인 7월 30일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 당내 경선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현 정부 검찰총장이 중도 사퇴하고 반대진영 대선주자가 된 초유의 일이었다.

각종 야권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늘 선두권을 달렸지만 정치신인으로서 여의도 문법에 익숙지 않은 탓에 여러가지 부침을 겪었다. '전두환 옹호' 발언, 인스타그램 '개 사과' 논란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당내 친윤계를 위시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고, 11월 5일 당 본경선에서 홍준표·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전 제주지사를 꺾으며 제1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윤 당선인의 최대 위기는 12월에서 이듬해 1월 초 사이였다. 선대위 운영을 놓고 이준석 대표와 이른바 '윤핵관(윤 후보 핵심 관계자)'의 내홍이 격화하면서다. 이들과 첨예한 갈등을 벌이던 이 대표가 당무를 거부하고 전국을 떠도는 사태도 벌어졌다.

그러다 일명 '울산 회동(12월 3일)'에서 윤 후보와 이 대표가 화합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집안싸움은 새해까지 이어졌다. 30%대 중후반을 넘나들던 윤 후보의 지지율도 20%대까지 떨어졌다. 반면 경쟁자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지지율은 10% 중반을 돌파하면서 내부 위기감이 고조되기도 했다. 이에 윤 후보는 선대위를 해체(1월 5일)하고 소규모 선대본부로 전면 개편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우여곡절 끝에 영입한 김종인 전 총괄선대본부장도 해촉됐다.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간결하지만 선명한 단문 메시지로 지지율 반등세를 끌어냈다. '여성가족부 폐지', '무고죄 처벌 강화', '원전 최강국 건설' 등이 대표적이다. 또 크고 작은 내부 갈등 등 위험 요인을 특유의 돌파력과 조직 장악력으로 정리해 나가는 한편 당 경선 과정에서 치열하게 맞붙었던 홍 의원, 유 전 의원과 원 전 지사 등과도 원팀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지난달 15일 공식선거운동 기간에 접어들면서는 안 대표의 지지율을 멀찍이 따돌리게 됐고, 이재명 후보와 초접전 양상으로 대선 국면이 진행됐다. 대선 막판 최대 변수로 부각됐던 안 대표와의 단일화는 사전투표 직전일인 지난 3일 극적으로 성사시켰다. 윤 후보는 전날(8일)까지 22일간 진행된 공식선거운동 기간 전국 94곳을 돌며 정권교체를 호소했다. 총 이동거리 9천703km에 달하는 강행군이었다.

윤 당선인은 8일 밤 서울시청 광장 마지막 유세에서 "여러분의 응원과 압도적 지지로 결승선을 1등으로 끊게 도와달라"며 "국민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제대로 한번 바꿔보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리고 이틀 만에 이 약속에 도전할 기회를 부여받았다. 검찰총장을 사퇴한 지 1년여 만에 윤석열 정부를 열게 된 것이다.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 20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실'을 찾아 승리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김성진 기자]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 20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실'을 찾아 승리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김성진 기자]

/정호영 기자(sunris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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