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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과학] 공포 등 특정 기억, 지울 수 있을까


카이스트 연구팀, 뉴런에 기억 저장되는 원리 밝혀

시냅스 강도 조절 메커니즘에 의한 기억 저장 뉴런 선택. 카이스트 연구팀이 원리를 규명했다.  [사진=카이스트]
시냅스 강도 조절 메커니즘에 의한 기억 저장 뉴런 선택. 카이스트 연구팀이 원리를 규명했다. [사진=카이스트]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특정 기억을 지우고 싶은 이들이 있다. 공포, 혹은 자신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 등 인위적으로 기억을 지우는 일이 가능할까. 영화 ‘페이첵(paycheck)’은 그런 내용을 다룬다. 페이첵의 주인공은 우수한 연구원으로 특정 기업의 기술을 일정 기간 개발한 뒤 기밀 유지를 위해 당시 일했던 기억을 말끔히 지워버린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주인공의 머리에 침투해 장기 기억을 저장하고 있는 특정 뉴런을 삭제하는 식이다. 과연 이 같은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우리 뇌에는 수천억개의 뉴런이 있는데 특정 기억이 어디에, 어떻게 저장돼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가능한 일이다.

국내 연구팀이 기억이 특정 뉴런에 저장되는 원리를 찾아냈다. 이번 연구를 통해 기억 엔그램(기억을 표상하는 뉴런의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뉴런들이 어떻게 결정되고, 언제 결정되는지에 관한 신경과학적 이해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카이스트(KAIST, 총장 이광형)는 생명과학과 한진희 교수 연구팀이 무수히 많은 뉴런과 이들 사이의 시냅스 연결로 구성된 복잡한 신경 네트워크에서 기억을 인코딩하는 뉴런이 선택되는 근본 원리를 규명했다고 13일 발표했다.

과거의 경험은 기억이라는 형태로 뇌에 저장되고 나중에 불러온다. 이러한 기억은 뇌 전체에 걸쳐 극히 적은 수의 뉴런들에 인코딩되고 저장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뉴런들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원리에 의해 선택되는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이 질문을 해결하는 것은 신경과학의 미해결 난제 중 하나이다. 기억이 뇌에서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규명하는 것으로서 학문적으로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강하게 서로 연결된 뉴런 집합체 형성을 통해 기억이 형성됐다.  [사진=카이스트]
강하게 서로 연결된 뉴런 집합체 형성을 통해 기억이 형성됐다. [사진=카이스트]

캐나다의 신경심리학자 도널드 올딩 헤브(Donald O. Hebb)는 ‘행동의 조직화(The Organization of Behavior)’(1949)라는 책에서 두 뉴런이 시간상으로 동시에 활성화되면 이 두 뉴런 사이의 시냅스 연결이 강화될 것이라는 시냅스 가소성(synaptic plasticity)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후 실험을 통해 학습으로 특정 시냅스에서 실제로 장기 강화(long-term potentiation, LTP)가 일어난다는 것이 증명됐다.

이 발견 이후 LTP가 기억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생각돼 왔다. LTP가 기억을 인코딩하는 뉴런을 어떻게 결정하는지 지금까지 규명된 적은 없었다.

카이스트 연구팀은 이를 규명하기 위해 생쥐 뇌 편도체(amygdala) 부위에서 자연적 학습 조건에서 LTP가 발생하지 않는 시냅스를 광유전학 기술을 이용해서 특정 패턴으로 자극함으로써 인위적으로 해당 시냅스 연결을 강하거나, 약하게 조작하고 이때 기억을 인코딩하는 뉴런이 달라지는지 조사했다.

생쥐가 공포 경험을 하기 전에 이 시냅스를 미리 자극해 LTP가 일어나게 했을 때 원래는 기억과 상관없었던 이 시냅스에 기억이 인코딩되고 LTP가 일어난 뉴런이 주변 다른 뉴런과 비교했을 때 매우 높은 확률로 선택적으로 기억 인코딩에 참여함을 발견했다.

학습하고 난 바로 직후에 이 시냅스를 다시 광유전학 기술로 인위적으로 자극해 이 시냅스 연결을 약하게 했을 때 더는 이 시냅스와 뉴런에 기억이 인코딩되지 않았다.

반대로 정상적으로 생쥐가 공포 경험을 하고 난 바로 직후 LTP 자극을 통해 이 시냅스 연결을 인위적으로 강하게 했을 때 놀랍게도 LTP를 조작해준 이 시냅스에 공포 기억이 인코딩되고 주변 다른 뉴런에 비교해 LTP를 발생시킨 이 뉴런에 선택적으로 인코딩됨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로 기억에 관계하는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뉴런들이 어떻게 결정되고, 언제 결정되는지에 관한 신경과학적 이해가 증진될 것으로 기대된다.

기억 형성 과정에 대한 더 자세하고 높아진 이해를 기반으로 기억 형성 과정에 이상이 생긴 정신 질환인 치매나 조현병 치료법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진희 교수는 “LTP에 의해 뉴런들 사이에서 새로운 연결패턴이 만들어지고 이를 통해 경험과 연관된 특이적인 세포 집합체(cell assembly)가 뇌에서 새롭게 만들어진다”며 “이렇게 강하게 서로 연결된 뉴런들의 형성으로 뇌에서 기억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규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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