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이 반도체 시장에서 위기를 맞았다.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 반도체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인 칭화유니그룹까지 파산 절차에 들어가면서 중국의 '반도체 굴기(우뚝 일어섬)'가 붕괴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칭화유니그룹의 채권자인 휘상은행은 지난 11일 중국 베이징 법원에 파산 구조조정 신청을 했다. 칭화유니가 만기 채무를 상환할 능력이 없고 모두 부채를 갚기에 자산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해서다.
◆ 中 정부, 몰락한 '칭화유니' 살리나
지난 1988년 설립된 칭화유니는 미국에 맞서 '반도체 굴기'를 실현하려던 중국이 공을 들이던 회사였다. 중국 칭화대가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지난해 11월 13억 위안(약 2천300억원)의 회사채를 갚지 못해 첫 디폴트를 기록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칭화유니의 총 채무는 2천29억 위안(약 35조9천억원)에 이른다.
종합 반도체(IDM) 회사인 칭화유니는 원래 낸드플래시만 만들 계획이었으나 중국 정부의 요구로 지난 2019년 D램 진출까지 선언했다. 당시 칭화유니는 "2022년 D램 양산에 돌입한다"고 밝혀 주목 받았다.
또 2015년에는 미국 마이크론을 230억 달러에 인수하려다 미국이 허가를 하지 않아 실패했다. 계열사로는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YMTC, 통신칩 전문업체 쯔광짠루이, 팹리스인 쯔광궈웨이 등이 있다.
칭화유니의 몰락은 무리한 투자가 원인이 됐다. 낸드플래시와 D램 모두 투자 대비 성과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것이 유동성 위기를 가져온 것이다. 실제로 칭화유니는 프랑스 스마트칩 업체 랑셍, 휴렛팩커드, 웨스턴디지털, 스프레드트럼 등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인수·합병(M&A)을 진행했다. 또 중국 화웨이의 설계 전문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미국의 제재를 받자 연구 인력 대부분을 쯔광짠루이로 이동시키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칭화유니가 중국 반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의미나 비중이 작지 않다"며 "중국 정부가 무분별한 확장으로 위기에 몰린 칭화유니의 파산을 그대로 지켜만 볼 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칭화유니가 공중 분해되면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 굴기' 전략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결국 중국 정부가 막대한 부채 탕감을 통해 칭화유니 살리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 中 견제 나선 美…'중국 제조 2025'에 차질
이번 일로 미국에 대항해 반도체 자립에 나서려던 중국의 계획도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됐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15년 '중국 제조 2025' 전략을 발표하며 반도체 자급률을 2020년 40%, 2025년 70%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이에 중국은 반도체 자급률 향상에 사활을 걸며 지난 2015년부터 향후 10년간 1조 위안(약 170조원) 규모의 투자를 추진 중이다. 또 2019년에는 '중국 반도체 산업 국산화의 원년'으로 삼고 대대적인 반도체 산업 육성에 나서며 '기술 국산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기에 2025년까지 2조 위안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반도체 시장의 70%를 국내 제조 업체들이 공급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제조 2025' 전략은 기업에 대한 보조금과 기술 탈취, 특혜 등의 시비에 휘말리며 미·중 무역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움직임에 맞서 중국 반도체 관련 업체를 '수출 통제 기업 리스트'에 올려 부품 공급을 막고,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인이나 기업이 중국 업체에 직·간접 주식 투자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등의 방법으로 견제했다. 이 과정에서 푸젠진화·하이실리콘·화웨이·SMIC 등 중국 대표 기업들은 미국의 제재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또 최근에는 TSMC가 중국 난징에 증설하려는 12인치(300㎜) 웨이퍼(반도체 원판) 파운드리 공장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도울 것을 우려해 미국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TSMC는 자동차용 반도체 생산을 늘리기 위해 중국 난징에 28㎚(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급 공정 라인을 추가할 계획을 세웠으나, 미국 정부의 압박으로 차질을 빚게 됐다.
◆ 美의 계속된 中 압박…EUV 장비업체 ASML도 수출 차단
더불어 미국은 전 세계 1위 EUV 장비업체 ASML에도 중국에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수출하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중국 업체가 ASML의 장비를 확보할 경우 중국의 반도체 기술 수준이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라고 판단해서다. 이에 미국은 지난 4월 ASML에 중국 수출을 금지할 것을 요청했으나, ASML 측이 이를 거부했다.
이후 미국은 네덜란드 정부를 압박하는 방법으로 ASML의 장비 수출을 차단하고 있다. 실제로 네덜란드 정부는 안보 등의 이유로 지난 2019년 6월 만료된 ASML의 EUV 장비 대중 수출 허가를 갱신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 탓에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로 끌어올리겠다는 중국의 목표 달성 가능성도 희박해졌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와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자료에 따르면 오는 2030년 중국의 반도체 생산 점유율은 현재 15%에서 24%로 늘어난다. 시장조사업체인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내 반도체 생산은 227억 달러(약 26조원)로 자급률은 15.9%에 불과했다. 또 중국 반도체 업체의 생산 규모는 5.8%인 83억 달러(약 9조5천억원)였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중국 제조 2025' 전략에 찬물을 붓고 있어 중국 정부가 목표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도 "중국이 미국의 제재가 집중되는 분야를 중심으로 자체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지속적으로 밝히며 노력한 결과 최근 반도체 설계나 제조, 테스트·패키징 능력이 이전보다 상당히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반도체 육성을 위한 중국의 실탄이 막대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라며 "중국은 당분간 미국의 제재를 피해 반도체 분야에서 취약한 곳을 보완하는 데 투자를 강화하는 한편, 외국 기업 유치와 인수를 통해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데 더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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