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연춘 기자] 유통식품업계 사위경영이 한창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사위들이 오너 2~3세 못지않은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경영 전면에 나서는 일이 잦아졌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 여기는 분위기가 사그라지는 분위기로 읽힌다.
일각에선 똑 부러지는 사위들이 아들과 딸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거나 가문의 파워를 극대화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유통 대표 기업인 신세계가(家)에는 알려진 바대로 정재은 명예회장에 이어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외동딸인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 남편인 문성욱 대표가 2대째 사위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딸들에게도 재산과 기회를 주는 범삼성가의 가풍 덕분에 정 총괄사장이 경영에 나서면서 사위인 문 대표의 행보에도 무게감이 실리는 분위기다. 재계에서는 신세계의 사위 사랑이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에 초점이 모이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장인에게 받은 사랑을 다시 자신의 사위에게 물려주고 있어서다.
1972년 서울 출생인 문 대표는 지난 2001년 3월 초등학교 동창인 정 총괄사장과 결혼 해 두 딸을 두고 있다. 미국 시카고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SK텔레콤 기획조정실을 거쳐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 차장 등을 지낸 IT전문가다. 2002년 미국의 와튼스쿨로 MBA유학을 떠나 귀국한 후 신세계 경영지원실 부장으로 부임했으나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일본의 후지쓰로 연수를 떠났다가 2004년 신세계 기획팀으로 입사했다.
이후 문 대표는 2013년 이마트에서 신규사업총괄 부사장을 지냈으며, 2017년부터 신세계톰보이 대표 및 신세계인터내셔날 글로벌1본부장으로 근무했다. 이어 2019년부터는 신설된 신세계인터내셔날 사업기획본부장을 역임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사업기획본부는 신규 사업과 기획·마케팅 업무를 총괄하는 조직이다.
문 대표가 신세계톰보이와 CVC(기업형 밴처캐피탈) 신설법인 시그나이트파트너스 대표를 겸직하면서 그룹의 새로운 성장 기업을 발굴하는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맡게 된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지난 7월 설립된 신설 법인이다.
신세계그룹 측은 이번 인사를 통해 과감한 변화와 혁신, 미래준비, 인재육성에 대한 의지를 명확히 하고 본격적 변화 작업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문 대표가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 맡아 온 업무의 연장선으로 해석되지만 정 명예회장의 사위라는 점에서 단순한 전문가 보강 이상의 의미를 일각에선 부여하고 있다. 경영권 승계와 연관 있다는 것이다.
향후 신세계는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총괄사장 남매에 대한 경영권 교통정리가 점차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하다. 이에 문 대표는 지금까지 쌓아 온 신사업 발굴 및 전략기획적 역량을 십분 발휘해 유망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통한 신성장 동력 확보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이 과정에서 신세계그룹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신규 사업을 모색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에서 사위경영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경우가 바로 오리온그룹의 담철곤 회장이다. 동양그룹 창업주인 고 이양구 회장의 사위로 이 회장이 작고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룹의 지휘봉을 잡았다는 점에서 일찍부터 '절대 반지'를 낀 사위경영자로 분류된다.
이 창업주의 차녀인 이화경 오리온그룹 사장의 남편인 담 회장은 2001년 동양그룹에서 독립한 이후 오리온그룹을 급성장시킨 주역으로 꼽힌다. 제과사업을 바탕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며 2001년 7천억 원에 불과했던 오리온그룹의 매출액을 지난해 2조 원까지 끌어올렸다. 오리온은 한국은 물론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 해외 법인을 두고 제과 사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 실적은 한국과 중국 법인이 이끌었다.
오리온은 한국은 물론 중국 등 해외 시장에서 제과 부문 신제품 라인업을 강화해 성장세를 이어 나가고 있다. 동시에 프리미엄 미네랄워터 제주용암수 국내 온라인 판매와 중국 등 수출을 본격화해 신성장 동력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
사위가 장남보다 더 월등한 경영성과를 보이는 사례도 있다. 크라운해태제과 윤영달 회장의 딸 자원 씨의 남편인 신정훈 해태제과 대표는 식품업계 내 가장 주목받는 스타 CEO로 부상했다. 2005년 크라운과 해태제과 합병 당시 윤영달 회장은 아들 윤석빈 씨에게 크라운제과 대표이사를 맡기고, 사위에게 해태제과를 맡겨 장남과 사위간 각자 경영 체제를 구축했다.
신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MBA를 취득한 후 삼일회계법인과 글로벌 경영컨설팅업체인 베인앤컴퍼니에 근무하며 크라운제과의 해태제과 인수작업까지 주도했다. 인수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윤 회장의 신임을 얻었다. 이후 해태제과 관리재정본부장으로 핵심 역할을 수행했으며 지난 2008년 '멜라민 파동'으로 홍역을 치룰 당시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해 경영 능력을 입증한 바 있다.
회계사 출신인 그는 컨설팅 출신답게 전략에 대한 큰 그림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소비자 중심의 수요를 맞춰가고 있다는 분석을 회사 안팎에서 받는다. 그는 베인앤컴퍼니 재직 당시 인수합병을 주도했다. 신 대표가 최근 해태제과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히는 빙과 사업을 떼고 신용도 개선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사위이자 이경후 CJ ENM 상무 남편인 정종환 CJ 부사장도 백년손님을 넘어 백년기업의 주역으로 보폭을 넓힌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정 부사장은 컬럼비아대 학사(기술경영)와 석사(경영과학), 중국 칭화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하고 씨티그룹과 모건스탠리를 거쳐 2010년 8월 CJ 미국지역본부에 입사해 인수합병(M&A) 등 업무를 맡아왔다. 이 회장의 장녀인 이경후 상무와 정 부사장은 미국 유학 중 만나 2008년 8월 결혼했다. 정 부사장은 지난 2017년 3월 이경후 상무와 나란히 상무대우로 승진했으나, 부사장 직함을 먼저 달았다.
업계 관계자는 "보수적인 기업문화를 지닌 유통과 식품업계에서 사위가 경영 전면에서 활약하는 사례들은 당연히 돋보일 수밖에 없다"며 "과거 철저히 장자승계 원칙을 고수하며 사위 경영을 배제하던 기업들이 많았던 게 사실이지만 경영 능력만 갖추면 소위 '백년손님'에게도 가업을 맡기는 사례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연춘 기자 staykit@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