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서민지 기자] "가족이니까 당연히 먼저 챙겨야죠."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25일 오전 작은 아버지인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 소식을 접하자 마자 부인인 김희재 여사와 자녀 이경후 CJ ENM상무, 이선호 CJ부장 내외 등과 함께 빈소도 제대로 차려지지 않은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몸이 불편한 탓에 취재진을 피해 지하로 연결된 통로를 통해 현장에 도착했을 땐 빈소도 차려지지 않고 가족들도 있지 않아 꼬박 1시간여 넘게 이건희 회장의 가족들을 기다렸다.
이날 오후 4시 57분께 이재용 부회장이 아들 이지호 씨, 딸 이원주 양과 함께 막 마련된 빈소로 들어서자 이재현 회장과 그의 가족들은 가장 먼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지하 통로를 통해 도착한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과도 만나 이건희 회장을 함께 회상했다.
몸이 불편한 와중에도 20여 분간 대화를 나눈 이재현 회장은 CJ 관계자를 통해 "국가 경제에 큰 업적을 남기신 위대한 분"이라며 "가족을 무척 사랑했고, 자랑스러운 작은 아버지"라고 말했다.
이어 "일찍 영면에 드셔 황망하고, 너무 슬프고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길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경영 승계에 밀린 장남, '유산 분쟁'으로 갈등 키워
삼성과 CJ 한 때 경영 승계 및 유산 분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형제였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은 삼성그룹 경영 승계를 놓고 경쟁을 벌이며 50여 년간 냉랭한 관계를 유지했다.
창업주인 부친 이병철 회장은 첫째 아들인 이맹희 명예회장, 둘째 아들인 이창희 새한그룹 회장 대신 셋째인 이건희 회장을 삼성그룹 2대 회장으로 택했다. 관계가 좋지 않았던 첫째 아들, 둘째 아들과 달리 셋째 아들의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판단해서다.
실제로 이건희 회장은 후계 수업을 받던 지난 1974년에 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반도체 인수에 적극 나섰다. 또 1986년 7월 1메가 D램을 생산하는 결실을 맺는 등 능력을 입증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은 비교적 젊은 나이인 1987년 45세의 나이에 총수에 올랐음에도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주며 삼성을 이끌었다"며 "혁신을 거듭한 끝에 명실공히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했다"고 평가했다.
경영 승계에서 밀려난 이맹희 명예회장과 누나인 이숙희 씨 등은 지난 2012년 이 회장의 차명재산에 대한 상속권을 주장하며 1조 원대 소송을 제기해 또 다른 갈등을 키웠다. 창업주로부터 물려받은 상속재산을 이 회장 명의로 실명 전환해 독식하려 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상속 분쟁은 1·2심 모두 이건희 회장이 승소하고 이맹희 명예회장이 고심 끝에 상고를 포기하면서 마무리됐다. 이에 선대에 화해는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소송 도중 형제간 화해 가능성도 엿보였지만 서로 화해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물거품이 됐다.
하지만 이재현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어려울 때마다 힘이 돼 줬다. 특히 지난 2014년 이재현 회장이 횡령, 배임 혐의로 구속되자 이재용 부회장 등 범 삼성가에서 탄원서를 제출해 재계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이후 지난 2018년에는 CJ그룹이 삼성맨이던 박근희 CJ대한통운 부회장을 영입하자 재계에선 두 그룹이 관계 개선의 신호탄을 쐈다고 해석했다. 특히 박 부회장을 영입하기 전 이재현 회장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두 그룹의 화해는 기정사실화됐다.
재계 관계자는 "한 때 선대 회장들의 갈등은 컸지만 이재현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며 "3세 시대로 접어들면서 두 그룹의 화해 분위기는 더 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 외에도 현대가에서도 장례식장을 방문해 조문했다.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은 빈소를 방문해 이 회장에 대해 "큰 거목이셨다"고 취재진에게 말했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도 함께 방문해 애도의 뜻을 표했다.
장례식장에는 정세균 국무총리와 박병석 국회의장,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이 보낸 조화도 도착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빈소에 조화를 보내고,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을 보내 유족들에게 이 회장 별세에 대한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다. 노 비서실장은 오후 7시 24분께 빈소에 도착했다. 문 대통령이 고인에 대해 어떤 얘기를 전했냐는 질문에 대해선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는 짧막한 답변만 남겼다.
장유미 기자 sweet@inews24.com, 서민지 기자 jisseo@inews24.com, 사진=정소희 기자 ss082@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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