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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별세] '별'이 된 재계 거목…사진으로 보는 이건희 발자취


25일 향년 78세로 별세…27년간 삼성 300배로 키워

1987년 취임사를 하고 있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1987년 취임사를 하고 있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한국 재계를 이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이는 지난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만이다.

삼성전자는 이날 "이건희 회장께서 2020년 10월 25일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드린다"며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고, 조화와 조문은 정중히 사양한다"고 말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년시절 [사진=삼성전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년시절 [사진=삼성전자]

1972년 장충동 자택 [사진=삼성전자]
1972년 장충동 자택 [사진=삼성전자]

고(故) 이 회장은 지난 1942년 1월9일 경상남도 의령에서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1965년 와세다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했고 1966년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과정을 수료했다.

1978년 삼성종합체육대회에 참석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1978년 삼성종합체육대회에 참석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1980년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왼쪽)과 함께 있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1980년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왼쪽)과 함께 있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이 회장은 1966년 동양방송의 이사로 사회에 본격 발을 내딛었으며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을 맡았고 이듬해 삼성그룹 부회장으로 취임했다.

1987년 회장으로 취임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1987년 회장으로 취임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아버지인 고 이병철 창업주가 별세한 1987년에는 삼성그룹 회장으로 올라섰다. 이건희 회장은 1987년 삼성 그룹 회장 취임 당시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건희 회장의 취임 당시 삼성그룹은 매출은 10조원이었지만 경영을 맡은 27년의 기간 동안 40배, 시가총액은 300배 이상 늘어났다.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지난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캠핀스키 호텔에선 200여명의 삼성 임원을 모아놓고 "마누라와 자식만 빼놓고 다 바꾸라"는 메시지의 '삼성 신경영'을 선언한 일화는 유명하다.

1993년 신경영 선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1993년 신경영 선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당시 이건희 회장은 일본 도쿄에서 삼성의 경영 현장을 지도해 온 일본인 고문들과 삼성이 지닌 문제점들에 대해 회의를 가졌다. 새벽까지 이어진 회의에서 이건희 회장은 디자인 수준을 어떻게 올려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놨다. 이후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은 이제 양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벗어나 질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고 선언하며 삼성 신경영을 발표했다.

1982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레슬링협회 선수단 격려 [사진=삼성전자]
1982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레슬링협회 선수단 격려 [사진=삼성전자]

고인의 스포츠와의 인연도 각별하다. 1982년 대한레슬링협회장을 시작으로 스포츠와 연을 맺은 이 회장은 1993년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회장에 취임한 뒤 199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올랐다.

1997년 올림픽 파트너를 맺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1997년 올림픽 파트너를 맺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2011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발표 현장에 참석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2011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발표 현장에 참석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모두 '무모한 도전'이라 여기던 사업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리며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반도체가 선봉장이었다. 1974년 이 회장이 파산직전의 한국 반도체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반대했다. 국내에선 자본, 기술, 시장이 없기 때문에 삼성의 반도체는 안된다는 게 업계 중론이었다.

2004년 반도체 공장에 방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2004년 반도체 공장에 방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당시 "언제까지 그들의 기술 속국(일본)이어야 하겠냐"며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한다. 내 사재를 보태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2010년 16라인 반도체 기공식에 참석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2010년 16라인 반도체 기공식에 참석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세계적인 전문가들을 직접 찾아 나섰고 스스로 자료를 분석해 나갔다. 1986년 7월 삼성은 1메가 D램을 생산하면서 반도체 사업에 자신감을 얻었다. 일본이 주춤거리는 사이 과감한 투자를 계속해 나갔다.

1992년 삼성은 마침내 64메가 D램을 세계최초로 만들어내면서 반도체 강자로 우뚝섰다. 1993년엔 기존 6인치 웨이퍼가 주류를 이루던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은 8인치 생산을 결단했다. 삼성은 64메가 D램 개발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한 데 이어 생산량을 늘리며 시장 점유율도 1위를 기록, 기술과 생산 모두에서 명실상부한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1995년 삼성전자 불량품 화형식 [사진=삼성전자]
1995년 삼성전자 불량품 화형식 [사진=삼성전자]

혁신을 꾀한 이 회장은 휴대폰으로 이른바 '애니콜' 신화를 썼다.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 선언 이후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온다"며 삼성의 신수종 사업으로 휴대폰 사업을 예견했다.

1984년 모토로라 카폰이 처음 등장한 이후 국내 휴대폰 시장은 모토로라가 석권하고 있었다. 마침내 1994년 10월 삼성은 애니콜 브랜드의 첫 제품인 SH-770을 출시했다.

이 회장은 당시 품질경영만이 살 길이라고 강조했다. 1994년 첫 휴대전화 출시당시 불량률은 11.8%에 달했다. 당시 이 회장이 구미사업장에서 불량품 15만대를 소각하는 ‘화형식’을 진행한 것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2010년 CES에 방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2010년 CES에 방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2011년에는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에 참관해 인재 및 기술 확보에 힘써줄 것을 주문했다. 이 회장은 "5년, 10년 후를 위해 지금 당장 (소프트기술, S급 인재, 특허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소프트웨어, 디자인, 서비스 등 소프트기술의 경쟁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필요한 기술은 악착같이 배워서 반드시 확보 해야 한다"며 "부품 수를 줄이고, 가볍고, 안전하게 만드는 것 등 하드웨어도 경쟁사보다 앞선 제품을 만들 자신이 없으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2012년 10월 베트남 사업장을 방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사진=삼성전자]
2012년 10월 베트남 사업장을 방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사진=삼성전자]

지난 2013년 10월 28일 '신경영 20주년 만찬'을 통해선 초일류 기업을 향해 새로운 첫 발을 내딛고 다시 한 번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고 임직원들에게 강조했다. 이 회장은 "앞으로 우리는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으로 재무장 해야 한다"며 "실패가 두렵지 않은 도전과 혁신, 자율과 창의가 살아 숨쉬는 창조경영을 완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떠한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초일류기업을 향한 새로운 첫 발을 내딛고 다시 한 번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2013년 신경영 20주년 만찬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2013년 신경영 20주년 만찬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또 지난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지기 전인 그 해 1월에는 신년사를 통해 불확실성 속에서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회장은 "핵심 사업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을 확보하는 한편, 산업과 기술의 융합화·복합화에 눈을 돌려 신사업을 개척해야 한다"며 "지난 20년간 양에서 질로 대전환을 이루었듯이 이제부터는 질을 넘어 제품과 서비스, 사업의 품격과 가치를 높여 나가자"고 강조했다.

장유미 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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