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은희 기자] “대본을 보면 역할들이 있잖아요. 적당한 게 없으면 ‘석광이 못 하겠네’ 그런 생각이 제일 먼저 들더라고요.”
신유청 연출과 배우 백석광은 지난해 연극 ‘그을린 사랑’ ‘와이프’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 등 3개 작품을 같이 하며 남다를 호흡을 자랑했다. 특히 그 중 2개 작품이 주요 시상식에서 상을 받으면서 주목받는 연출가·배우 콤비로 부상했다.
수상에 대해 백석광은 “‘와이프’는 모두가 주인공”이라며 “1막부터 4막까지 토스되는 감각들이 일반적이지 않다. 어떻게 보면 퀴어의 영역에서 나올 수 있는 상상력으로부터 오는 사건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부 강간이라는 커다란 사건과 퀴어에 대한 사회적 반감 속에서 꽃피우지 못한 사랑 등의 연결고리가 있다”며 “극을 끌고 가는 역할도 아닌 내가 상을 받았다는 건 연극계가 소수자의 이야기에 힘을 실어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의견을 전했다.
신 연출은 “상을 받았을 때도 체감이 안됐고 지금도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되게 중요한 시간을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1부의 인생이 지나가는 느낌인데 2부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신중히 바라보고 있다”고 밝혔다.
신 연출은 “나는 그때 22세였는데 연극을 뜨겁게 하다가 군대 갈 날짜가 다가와 다른 일을 재밌게 하고 있었다”고 운을 뗐다. “바코드로 충전하는 게임머니가 출시됐을 때 편의점에서 판매할 수 있게 돕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한참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무료하던 차에 그 일을 소개해준 형이 홍대에서 놀자고 해서 갔는데 석광이를 만났죠.”
백석광은 “나는 앞니가 없는 무용수였다. 갑자기 이가 빠졌는데 형편이 안돼서 5년 정도 앞니 없이 살았다”고 하자 신 연출은 “동그란 안경을 쓰고 앞니가 없는데 아주 해맑게 웃던 모습이 생각난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안면을 튼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건 12년이 지나서였다. 그 사이 중앙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한 신 연출은 계속 연극 일을 하고 있었고, 백석광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무용을 공부하다가 같은 학교 연극원 연출과로 재입학했다.
2014년 명동예술극장에서 제작한 연극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구소련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에서 백석광은 조연출을, 신 연출은 조명 디자이너 어시스턴트를 하면서 지금과는 또 다른 업으로 조우했다.
백석광은 “텍스트를 봤을 때 느껴졌던 역할에 대한 영감을 표현하는 게 재밌는 일이지 않나”라며 “형이 갖고 있는 기운 때문인지 형이 편안하게 자리를 만들어주니까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서로가 보는 장점을 묻자 신 연출은 “연출의 디렉션을 수용하는 것을 넘어서 자기가 딛고 있는 이 공간을 굉장히 잘 만들어내는 것 같다”며 “손짓과 몸짓, 언어 쓰는 것까지 신중하게 만들어내서 숨 쉬는 것, 손짓하는 것, 바라보는 것 등이 평온한 상태에서 자기 것이 돼있다”고 칭찬했다.
백석광은 “형은 연출할 때 말이 거의 없다”며 “엄청 주의 깊게 계속 지켜보신다”고 설명했다.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할지에 대한 말도 절대 안 해요. 프로덕션 기간이 짧으니까 빨리빨리 만들려면 연출가가 ‘이렇게 하자’고 말할 수도 있는데 형은 ‘그 부분에 대해서 더 생각해보자’라고 하시며 배우에게 기회를 줘요. 배우들의 아이디어를 충분히 수용하고 그걸 즐거워해요. 배우를 한 명의 창작자로서 대우해줘서 순도 높게 무대 위에 올라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백석광은 “앞으로도 많은 작품을 만나겠지만 지금 무척 즐거운 시절인 것 같다”며 “모든 사람 다 만나면서 작품하기가 참 어려운데 한 연출가와 긴밀한 작품을 하는 건 더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알고 있어서 허투루 하고 싶지가 않다”며 “매순간 작품에 임할 때 충실하고 최대한 나로 있으려고 한다”고 조심스러운 마음을 드러냈다.
올해 ‘와이프’와 ‘그을린 사랑’을 다시 올리게 되면서 두 사람은 작업을 이어간다. 신 연출은 백석광에 대해 “가족 같고 형제 같은 친구”라며 “아직 차기작이 없지만 당연히 석광이랑 같이 하면 좋다”고 말했다.
박은희 기자 ehpar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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