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나리 기자] 국내 게임산업은 그동안 유달리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왔다. 콘텐츠 산업 수출 선봉장임에도 부정적 인식에 걸핏하면 규제 대상이 되거나 두들겨 맞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매년 몸집을 키워 현재 매출 규모 15조원대 산업으로 입지를 다졌다. 이제는 핵심 산업으로 위상에 걸맞는 진흥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다행히 지난 국회 때 일부 의원 중심으로 게임산업 진흥을 위한 여러 개선안이 시도됐다. 그러나 아직 실효성 있는 방안까지는 갈 길이 멀다. 문화체육관광부도 14년 만에 게임산업법 전면 개정에 나섰지만 공개된 초안을 놓고 기대에 못 미친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게임산업 경쟁력 강화, 한류 세계화의 첨병으로 '날개'를 달려면 낡은 법, 규제부터 고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게임법 전부 개정, 필요성 살펴보니…
정부가 추진 중인 게임법 전부 개정 자체에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14년 전 제정된 규제 위주의 낡은 법으로는 고도화된 게임 생태계를 담아내기 힘들뿐더러 진흥은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강신철 한국게임산업협회장은 "현 게임법은 지난 2006년 제정된 것으로 급변한 게임 생태계를 반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연관 기술의 발전과 플랫폼 융복합화, 유통방식의 변화와 같은 '새 술'을 담을 수 있는 '새 부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개정을 더 이상 늦출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인 강태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도 "바다이야기 사건 이후 사행성 규제를 포함하면서 실상 규제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게임법의 본 역할을 다시 세우는 것은 지금 반드시 해야 할 작업"이라며 "이제는 전면 개정을 검토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게임법 전부 개정을 통해 변화된 상황을 반영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게임법 체계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앞으로의 게임산업 발전과 이용자 보호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문체부가 최근 공개한 게임법 전부 개정안 초안은 이 같은 기대와 달리 사실상의 '규제법'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
한국게임산업협회도 의견서를 통해 ▲'게임사업법'으로의 법 제명 변경 ▲산업 발전을 위한 중장기 계획 수립의 미선행 ▲게임을 진흥이 아닌 규제 대상으로 취급 ▲선언적 조항의 신규 규제 도입 근거 활용 여지 ▲다수 조항의 대통령령 위임 ▲청소년을 만 18세 미만으로 정의한 타 콘텐츠 산업과의 연령 차별(게임법은 만 19세 미만으로 정의) 등에 대한 우려를 문체부에 전달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강신철 협회장은 "전부 개정안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고, 업계 입장에서 초안에 대한 우려의 뜻을 낸 것"이라며 "사업자 입장에서는 게임법 전면 개정이 전 세계 시장에서 우리 게임이 경쟁력을 갖고 지속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설명했다.
문체부 역시 업계 의견 등을 수렴해 해당 개정안을 개선하겠다는 방침이다. 여러 전문가 논의를 통해 업계가 수용할 수 있는 법안이 마련되면 21대 국회에 상정한다는 계획이다.
◆확률형 아이템 논란 심화…전문가도 입장 갈려
현재 공개된 게임법 개정안의 논란 중 하나는 '확률형 아이템' 확률 공개 문제다. 국내 게임업계 대부분은 자율규제를 준수하고 있다. 문제는 해외 게임사 참여가 저조하자 공정거래위원회가 관련 고시 개정을 추진하고 나선 것. 문체부까지 이의 법제화에 착수하면서 규제 강화로 이어질 지 우려되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은 어떤 아이템이 뽑힐지가 운에 따라 달라지는 이른바 '뽑기 상품'을 뜻한다. 이용자에는 우연성으로 인한 재미를 주면서 게임업계 핵심 수익 모델로 자리잡았지만, 사행심과 과소비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전문가들의 입장도 엇갈리고 있다. 먼저 국내 사업장을 두지 않은 해외 게임사에 대한 규제 집행력 담보가 어려워 이른바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반면 더이상의 부정적 인식 악화를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맞서고 있다.
강신철 협회장은 "법적 규제가 자율 규제보다 강제성을 갖겠지만, 해외 기업을 대상으로 어떻게 실효성을 확보하고 정착시킬 수 있을 지 살펴봐야 한다"며 "산업이 건전하게 성장하려면 자율규제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태욱 변호사 역시 "게임 산업은 기본적으로 창의성에 바탕을 둔 분야로 직접 규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업계 자율 규제를 유도하는 게 필요하다"며 "또 게임은 근본적으로 확률 요소를 가질 수밖에 없어 이에 대한 규제는 결국 내용 규제로 연결돼 표현의 자유 보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전석환 한국게임개발자협회 실장은 "그동안 게임업계는 확률형 아이템 문제와 관련해 자정 기회가 많았지만, 스스로 개선하지 못했다"며 "이제는 국가가 직접 개입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도 "국내 게임사들이 자율규제를 통해 정보 공개 노력을 지속해온 것은 잘한 일이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라며 "로또보다 낮은 확률로 국민적 편견을 양산하는 확률형 아이템 문제는 지금 제동을 걸지 않으면, 향후 질병코드와 같은 극단적인 정책 도입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문제도 우려…업계 등 대응해야
지난해 WHO가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ICD-11)에 등재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 문제도 게임업계가 넘어야 할 난관 중 하나로 꼽힌다. 해당 질병코드가 국내 도입될 경우, 인식 악화로 인한 시장 위축과 인력 이탈 등이 가속화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현재 국무조정실은 민관협의체를 구성, 우선 2022년까지 도입 여부를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해당 질병코드는 이르면 2025년부터 국내 도입될 수 있다. 이의 도입에 반대하는 문체부와 찬성하는 복지부는 현재 관련 공동 연구용역에 대한 입찰을 진행 중이다.
복지부의 경우 최근 지난 연구 사업을 바탕으로 혈액검사 및 안구전도를 통한 게임중독 진단 특허 출원에 나서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에 반해 게임업계 등의 노력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게임문화재단 이사를 맡은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은 "지금은 질병코드와 관련한 게임계 역량과 의료계 역량을 다시 비교 및 점검해야 할 시점"이라며 "문체부 및 게임계 등은 '게임은 문화다' 슬로건에 집중하고 있는 듯 하나 과학과 문화를 같은 수준에서 논하기는 어렵다"고 짚었다.
그는 "복지부가 과학을 들고나온다면, 그 과학적 논리로 결과가 얼마나 타당한 지 보는 게 관건"이라며 "게임중독은 실체가 불분명하고, 학자들 사이에서도 합의가 안 됐지만 대중들은 특허의 객관성을 따지기 전에 게임중독을 진단할 수 있는 특허가 개발됐다는 사실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특허가 게임중독이 믿을만한 실체라 주장하는 근거로 쓰이기 전에 한국게임산업협회나 문체부 등이 나서서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강제적 셧다운제, 완화한다더니…여전히 제자리
청소년의 심야 게임 이용을 제한하는 '강제적 셧다운제' 역시 게임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대표 규제로로 꼽힌다. 여성가족부는 16세 미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온라인게임과 유료 콘솔게임 이용을 제한하는 강제적 셧다운제를 운영하고 있다.
강제적 셧다운제는 2011년 도입된 이래 해외 게임사와의 역차별, 시스템 구축 비용 부담 증가 및 산업 위축, 청소년의 행복추구권 침해, 모바일 게임 등과의 형평성, 문체부가 시행중인 선택적 셧다운제와의 이중 규제 등에 지적이 이어졌다. 그에 비해 청소년 수면권 보호 및 게임과몰입 예방이라는 당초 입법 취지는 달성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이에 기재부는 지난해 6월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문화체육관광부 및 여가부와 협의체를 통해 강제적 셧다운제의 단계적 개선 추진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별다른 변화는 없는 상태다.
또 법을 변경하려면 결국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폐지까지는 쉽지 않다는 예상도 나온다. 실제 과거에도 문체부와 여가부가 강제적 셧다운제를 부모선택제로 완화하는 법안에 합의했지만, 국회 여가위를 통과하지는 못했다.
위정현 학회장은 "부처 간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동의가 필요해 폐지는 어렵다고 본다"며 "게임중독 문제로 글로벌 차원에서 이미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가 시도되면서 셧다운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여가부 관계자는 "현재로선 변화가 없는 게 맞지만, 게임과몰입을 줄이기 위한 업계 차원의 자율규제가 활성화 되면서 국민적 우려가 해소되고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향후 제도 개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답했다.
◆게임산업, 진흥책 필요…중장기 계획 기대
게임산업 진흥책으로 투자 유치 및 1인 개발사·중소 게임사 지원 제도 개선, 전문 인력 양성 등이 지원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강신철 협회장은 "기업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도전할 수 있도록 투자 유치 같은 제도적인 진흥책과 세제 지원 등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석환 실장은 "인디 게임을 개발하는 1인 개발자와 중소 게임사에 실질적 혜택을 줄 수 있는 지원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정부 지원 사업 방향도 중소게임사에 필요한 바우처 지원 제도나 게임개발에 실제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접 지원 제도 등과 같이 실효성 있는 방안으로 전환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태욱 변호사는 "정부가 창의적이고 좋은 게임이 많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창업 활성화와 전문 인력 양성 등 인프라 조성을 위한 지원에 힘써야 한다"며 "게임 개발자들이 큰 부담 없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 조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무엇보다도 게임 산업이 사행 산업이나 어린아이들 코 묻은 돈을 노린 오락실 사업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 산업 규모에 걸맞은 위상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는 문체부가 올 상반기 중 공개할 게임산업진흥 중장기 계획에 주목하고 있다.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지난해 말 부산에서 열린 2019 대한민국 게임대상 시상식을 찾아 "미래 신성장 동력인 게임산업을 위해 2020년 초 중장기 계획을 발표하겠다"며 "불필요한 규제는 사업자의 시선에서 검토하고, 게임 이용자를 위한 사안을 법에 반영해 구체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 장관은 지난해 게임업계의 오랜 숙원이던 온라인게임 결제 한도를 폐지한 데 이어 과거 게임아카데미의 성과를 이어갈 수 있는 게임인재원을 개관하는 등 잇단 '친게임' 행보로 업계의 기대를 받고 있다.
강신철 협회장은 "장관을 비롯해 주무부처인 문체부에서 게임산업 진흥에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게임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협회를 비롯한 업계의 기대가 높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현재 게임법 전면 개정과 중장기 계획 수립을 병행해 진행하고 있는데, 게임법 개정은 게임 중장기 계획에 따라 개정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며 "중장기 계획이 우선 수립된 후, 해당 계획의 내용을 반영한 게임법 전면 개정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나리 기자 lor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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