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연춘 기자] "현재 코로나19 확산으로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악화된 것은 수출과 내수 동시 침체로 수익성이 저하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이런 때에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활동을 옥죄기보다는 수출지원 및 내수활성화에 집중해 기업들이 자금난을 해소하는데 실질적 도움을 줘야 할 것이다."
A그룹 고위 관계자는 "정책금융 등 일회성 단기처방보다는 기업투자를 활성화해 수익성을 향상시킴으로써 기업 자금사정을 개선시키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도 이달 25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사상 초유의 비상상황인 만큼 한시적이라도 규제를 풀어 기업의 활력을 높여야만 이른바 '퍼펙트 스톰'의 충격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방역만큼이나 경제분야에서도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며 54개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안을 요청했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대기업들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다. 재계 곳곳에선 사실상 비상경영에 돌입하면서 경제계 전반으로 긴축경영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불경기와 코로나19 유행이 겹치면서 국내 전 산업에 1997년 IMF식 정리해고 그림자가 드리우는 모양새다.
이미 여행객과 소비 급감으로 항공·유통·여행 업종이 직격탄을 맞았고 자동차, 에너지, 중공업에서도 희망퇴직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의 인력 구조조정 광풍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업황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항공업계는 한푼 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긴축경영에 돌입했다.
저비용항공사(LCC)보다 상대적으로 재정 여력이 두터운 대형항공사들도 임원들이 급여 반납에 나설 정도로 위기 극복에 사활을 걸었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장기화 여파로 지난해 말 채용한 2020년도 신입사원의 입사를 잠정 연기하기로 했다. 회사는 대면 교육 과정에서 감염 위험이 있어 입사를 연기했다고 했지만, 과거 외환위기 당시 기업들이 경영 악화를 못 이기고 채용 및 발령을 줄지어 취소하던 모습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아울러 대한항공의 전 임원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악화에 따라 다음달부터 일부 급여를 반납하기로 했다. 4월부터 부사장급 이상은 월 급여의 50%, 전무급은 40%, 상무급은 30%를 경영상태가 정상화될 때까지 반납할 방침이다.
대기업이 주식, 채권 발행이 힘들어져 은행 대출로 눈을 돌릴 정도로 자금시장 사정이 악화하자 인건비 지출부터 줄이고 나서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시아나항공도 다음달부터 모든 직원이 최소 15일 이상의 무급휴직에 돌입한다. 또한 아시아나항공 임원들은 4월 급여 반납폭을 확대해 총 60% 반납할 예정이다.
LCC들은 사실상 '개점 휴업'이다. 대부분 노선이 비운항에 돌입한 LCC들도 휴직을 비롯한 강도 높은 자구책을 시행 중이다. 제주항공은 지난달 경영진 임금 30% 이상을 반납하는 등 위기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진에어는 무급휴직과 순환휴직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스타항공은 지난 24일부터 한 달간 모든 국내·국제선 노선을 운항하지 않기로 했다. 티웨이항공과 에어부산, 에어서울, 플라이강원도 전 국제선을 운항하지 않고 있다.
업황 악화까지 맞물린 정유업계 등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현대오일뱅크도 임원 임금 20%를 반납하기로 했고 에쓰오일은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최근 직종을 불문하고 직원 2천600여 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접수했다. 2014년 이후 첫 명예퇴직이다. 하지만 실제 신청자는 600여 명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이 밖에 고정비 절감을 위해 일부 유휴인력의 유급휴직도 검토 중이다.
전경련은 기업들이 위기 상황에서 자발적인 사업 재편에 나설 수 있도록 '원샷법'의 적용 대상을 모든 업종과 기업으로 확대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기업이 선제적으로 사업 재편을 할 때 절차 간소화, 규제 유예 등 특례를 부여하는 이 법은 현재 과잉 공급 업종으로 적용 대상이 제한돼 있다.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안 그래도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한국 경제에 코로나19 사태까지 덮쳐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는 주로 아시아 지역의 문제였고 금융위기 당시에는 한국의 경제 상황이 나쁘지 않았던 반면 이번에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세계적인 위기 상황이 닥쳤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연춘 기자 stayki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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