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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키코배상…'피해 기업' 대신 '가해자 은행'이 돌려받는 배상금


키코공대위 "은행, 왼쪽 주머니에서 배상금 주고 오른쪽으로 돌려받아"

[아이뉴스24 서상혁 기자] 우리은행이 시중은행 중 최초로 키코 분쟁조정 기업에 배상금을 지급하면서, 키코 문제 해결의 신호탄을 쐈다.

그러나 정작 피해기업은 '실질적인 배상'이 아니라고 반발하고 있다. 은행들이 출자한 연합자산관리(유암코)가 피해기업들의 대주주로 남아있는 한, 배상금이 다시 은행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피해기업들의 이 같은 주장에 시중은행들은 별 도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도 실제로 이렇게 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어, 문제 해결까지 난항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지난 27일 키코 분쟁조정에 참여한 2개 기업에 배상금을 지급했다.

우리은행이 배상금을 지급한 기업은 일성하이스코와 재영솔루텍으로. 배상액은 총 42억원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해 12월 키코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6개 시중은행에게 손실을 본 4개 기업에 대해 최대 41%를 배상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배상비율의 최저치는 15%며, 평균치는 23%다.

키코란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하기 위한 환헤지 통화옵션 상품을 말한다. 미리 정해둔 약정환율과 환율변동의 상한선 이상 환율이 오르거나, 하한선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손실을 입게 된다. 키코분조위는 은행들이 상품 판매 과정에서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키코공동대책위원회 "경영권 회복이 진정한 피해 보상"

10여년 만에 받은 배상에도 불구하고 피해기업은 실질적인 보상이 아니라고 반발하고 있다. 피해 기업의 대주주가 시중은행들이 출자한 유암코인 이상, 배상금이 다시 은행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키코 사태 당시 대다수 기업들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는데, 그 과정에서 대주주도 창업주에서 은행들이 출자한 회사인 유암코로 전환됐다.

이번에 배상금을 받은 일성하이스코가 딱 맞는 예시다. 키코 사태 이후 유암코는 일성하이스코(당시 일성)의 지분 70%를 가져가며 대주주로 등극했다. 현재 유암코는 일성하이스코의 지분 95%를 갖고 있다. 키코공대위에 따르면 분쟁조정을 신청하지 않은 기업 147개 회사 중 일성하이스코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회사가 60~70%에 달한다.

이 때문에 그간 키코공대위는 금융당국에 개인 보증채권을 소각해 기업인들이 다시 경영에 나설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해왔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조붕구 키코공대위 위원장은 "키코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나"라며 "우리가 이야기하는 피해 구제는 결국 경영권 회복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배상을 두고 일각에선 부수익이 생겼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라고 지적했다.

◆시중은행 "별 도리 없다"…금감원도 "가능성 낮아"

반면 은행들은 분조위 권고에 따른다 하더라도 배상금만 지급하면 끝이지, 그 이후의 단계는 관여할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더구나 분쟁조정도 예전 주주 개인이 아닌 회사라는 '법인'을 대상으로 이뤄진 만큼, 임의로 개인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분조위 권고를 받아들이더라도, 은행의 역할은 기업에게 배상금을 주는 것까지다"라며 "유암코도 주식회사인데 그 이후에 돈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해 은행이 어떻게 관여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설령 유암코가 배상금을 예전 주주에게 주겠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이 받아야 할 돈을 안 받는 것이라 배임에 걸려들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금융감독원이 '결자해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여러 진통을 무릅쓰고 키코 문제를 다시 꺼낸 만큼, 금감원이 주도적으로 나서야한다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의 고민은 배상을 할지를 결정하는 것까지고, 어떻게 나눌지는 감독원의 몫이다"라며 "이미 대법원 판결이 난 문제를 다시 가져온 만큼, 계속 문제가 꼬여가지 않을까 싶다"라고 밝혔다.

일단 금감원은 공대위가 우려할 만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실제 유암코에서 은행으로 자금이 흘러가기까지엔 상당히 많은 절차가 필요한 데다, 당장 일성하이스코에 지급된 배상금도 회사 운영자금으로 사용하기로 한 만큼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유암코에서 출자한 PEF(사모펀드)가 해당 기업의 대주주로 들어가 있는데, 공대위 측에서 우려하는 일이 벌어지려면 PEF에서 유암코로, 유암코에서 다시 은행으로 흘러야 한다"라며 "많은 과정이 필요한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또 공대위의 우려에 따라 자체적으로 알아보니 일성하이스코는 배상금을 직원 급여 등 경영자금으로 사용한다고 한다"라며 "종합적으로 봤을 때 공대위가 우려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공대위 측에선 지난해 발족한 '금융피해기업 지원재단'(가칭) 앞으로 기금을 조성해 직접 피해기업에게 배상금을 나눠주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은행들의 배상 여부도 정해지지 않은 데다, 배상을 결정하더라도 해당 재단이 피해 기업의 대리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현재로선 사실상 뚜렷한 해법이 없는 상황이라, 앞으로 키코 문제가 해결되기까지엔 난항이 예상된다,

한편 금감원이 정한 키코 분쟁조정 수락 기한은 오는 6일까지다. 지난달 7일 금융감독원은 우리은행을 제외한 5개 은행에게 검토 기한을 30일 연장해준 바 있다.

서상혁 기자 hyu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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