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서상혁 기자] 존폐 기로에 서있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오는 26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사실상 마지막 면접을 본다. 지난해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에 최근 라임까지 사모펀드 사태가 연이어 터지면서 법안의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져있는 상태다.
관건은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 간 합의 여부다. 이미 지난 번 법사위에서 몇몇 의원들이 인뱅법 개정안을 두고 특혜 법안이라며 강하게 반대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패키지로 묶여있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은 논의조차 못하고 계류됐었다.
여야 의원들이 지속적으로 협의를 진행해온 만큼, 이번 법사위에서 두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높다. 다만 법안이 통과돼도 민생 법안을 인질로 삼았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24일 국회 등에 따르면 오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금융소비자보호법과 인터넷전문은행법 개정안 등을 심의한다.
◆DLF·라임 등 연이은 금융사태, '금소법' 필요성 키웠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은 말 그대로 금융소비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법안이다. 내용은 크게 금융회사의 상품 설명 의무 강화, 금융소비자의 방어권 등으로 구성됐다.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정부안과 10개 의원발의안을 통합한 정무위원장 대안)에 따르면 금융소비자에겐 계약 후 일정 기간 내 청약을 철회할 수 있게 하는 '청약철회권'을 쥐어줬으며, 설명의무 위반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시 판매자가 위법행위를 입증하도록 했다.
금융회사는 소비자가 상품에 오인할 수 있는 행위를 금하는 '6대 판매 규제'를 모든 금융상품에 적용해야 한다. 법안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적합성·적정성 원칙을 제외한 판매 규제 위반 시 금융회사에 관련 수입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처음엔 모든 판매 규제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방안으로 추진됐었으나, 정무위 법안 소위 논의 과정에서 금융회사를 과도하게 옥죈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금소법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금융소비자보호 추세에 따라, 한국에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우선순위에 밀려 좀처럼 논의되지 못하다 지난 해 DLF 사태를 계기로 약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정무위원회 문턱을 넘어섰다. 사후 서류 수정, 설명의무 위반, 치매 환자 대상 판매 등 불완전판매 사례가 다수 발견되면서, 여론이 들끓었던 게 주요 동력이 됐다.
최근 들어선 '라임 사태'가 동력을 키우고 있다. 지난 14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라임 검사 결과'에 따르면 라임자산운용과 신한금융투자는 플루토TF-1호에서 부실이 발생한 사실을 인지하고도, 수익률이 상승하는 것처럼 꾸민 것으로 드러났다. 24일 라임자산운용에 자펀드의 손실규모는 약 6천300억원에 달하며,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분쟁조정 신청 건수는 약 240여건 가량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이 마련되면 금융감독원이 소비자 보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더 많아진다. 지난 달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금소법 통과에 앞서 금융소비자보호처 산하 금융소비자 보호 부문을 소비자 피해 예방과 권익보호 부문으로 확대·개편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소법이 통과되지 않는다고 조직 개편이 무효화되는 건 아니다"라면서 "다만 법안이 통과되면 확대·개편된 금융소비자보호처에 더 큰 힘이 실릴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인뱅법과 운명공동체 금소법, 일단은 '맑음'
오는 법사위에선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개정안(인뱅법)'의 향방에 금소법의 운명이 갈릴 전망이다. 법사위 여야 의원들이 두 법안을 패키지로 처리하기로 합의를 봐서다. 지난 번 법사위에서 의원들은 인뱅법 개정안에 대해 의견을 모으지 못하자, 기존에 합의한 원칙에 따라 두 법안을 계류시켰다.
인뱅법 개정안은 인터넷전문은행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 요건에서 공정거래법 위반을 제외하는 게 핵심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대주주 적격성에 막혀 유상증자를 하지 못하고 있는 케이뱅크가 살아날 길이 생기기 때문에 입법 당시부터 '특혜 법안' 논란이 있었다.
법사위에서 여야 의원들이 합의를 보지 못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당시 의사록에 따르면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은행법, 자본시장법, 보험업법 등 금융관련법 모두 공정거래법이나 조세범 처벌법을 위반하면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할 때 제한되도록 돼있다"라며 "공정거래법까지 제외하는 건 개별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이고 금융업법 전체 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다"라고 지적했었다.
다만 26일 열릴 법사위에선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치권의 전망이다. 법안을 반대한 의원들이 소수인데다, 간사끼리 충분한 협의를 해왔다는 것이다.
국회 법사위 의원실측 관계자는 "결국 특혜냐 아니냐에 대한 것이 문제인데, 이 부분은 그간 전체회의 등을 통해 많이 논의가 이뤄졌었다"라며 "한 의원이 지속적으로 반대한다고 법안이 막히진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최근 공개 석상에서 설득 의지를 내비쳤다. 은 위원장은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금융 법안 통과 전망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마음 같아선 인뱅법 개정안, 금소법,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을 꼭 통과시키고 싶다는 생각이다"라며 "저를 비롯해 국장 등 실무자들이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통과가 안 됐을 수 있으니 의원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할 것이다"라고 답했었다.
이번 임시 국회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처리하기 위한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오는 27일 국회 본회의가 끝나면 정치권이 본격적으로 '총선 모드'에 돌입하는 만큼, 법안을 논의할 시간이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20대 국회가 끝나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법안은 폐기된다.
◆시민단체 "국회, 민생법안 볼모로 삼았다" 비판
법안이 통과돼도, 정치권이 민생법안을 볼모로 삼았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제2, 제3의 사모펀드 사태로부터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선 금소법 제정이 시급한데, 정치권이 법안을 패키지로 묶기로 한 탓에 소비자의 발목을 잡은 모양새가 됐다.
시민단체는 정치권의 이런 모습을 '구태'로 규정하고 비판한다. 김은정 참여연대 경제노동센터 간사는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고 있는 지금, 금융회사의 불완전 판매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라며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필요한 게 금융소비자보호법인데, 이런 법안이 과연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과 같이 취급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직 금소법이 완벽한 법안이 아닌 만큼, 이를 어떻게 더 보완해야 할지 고민하는 게 정치인의 도리다"라며 "입법 필요성에 맞춰서 우선순위를 정해야지, 입맛에 따라 거래하는 행태는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DLF에 이어 라임까지 터지면서 국회가 금융소비자보호법안을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나왔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라임사태까지 터지면서 금소법이 반쪽짜리라도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라며 "법이 없어서 금융소비자가 또다시 피해를 입으면 국회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게 되니, 계속해서 패키지로 묶는 건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서상혁 기자 hyu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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