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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어 집단사망 ㊦] 산재협의회 "새 역학조사 문제해결의 출발점"


산재협의회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전면 개정도 필요"…사측 묵묵부답

가장(家長)의 죽음은 평범했던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그만큼 가장의 어깨는 무겁다. 가족의 의지는 더 절대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사회 곳곳에는 열악한 근로환경으로 인해 가장을 떠내보내는 비극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내 타이어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인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이 곳에서는 지난 20년간 139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1년에 7명꼴로 가장이 운명을 달리했다. 지난 6월에도 노동자 한 명이 가족에게 돌아올 수 없는 다릴 건넜다. 지난 2017년 기준으로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전체 노동자의 44.8%가 질환을 앓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보고됐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에 어떤 일이 있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짚어봤다.<편집자주>

[아이뉴스24 황금빛 기자] 새로운 역학조사 실시, 개별 소송 제기,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전면적 개정 등. 지난 20여 년 동안 지속된 한국타이어 집단사망의 원인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타이어제조공정에서 나오는 유해화학물질이 노동자들의 사망과 질병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명확하게 입증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오랜 시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일단 지난 2008년과 2009년 두 차례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발표한 역학조사에서 이를 입증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 측은 한국타이어 재벌, 노동부, 노동청,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산업의, 건강검진기관인 선병원이 모두 조직적으로 연루해 노동자 집단사망의 핵심 원인을 은폐하고 조작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 측은 역학조사를 전면적으로 다시 실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먼저 건강검진기관부터 변경해 특수건강검진을 제대로 하고 질환자들에 대한 치료, 산재 시효가 지난 환자나 사망자들에 대한 보상 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측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피해자 측을 대변한 최석봉 변호사는 "사람이 죽으면 수사와 조사권이 있는 노동청에서 조사를 하고 집단 역학조사를 하는 게 정식절차다"며 "하지만 당시 한국타이어 측에서 지정한 병원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한 문제가 있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갑작스럽게 몇 십 명이 사망하고 수 년 사이 일반적이지 않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며 "특히 자살자도 다른 사업장에 비해 훨씬 많이 발생한 것 등에 비춰 제대로 된 집단역학조사를 다시 실시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역설했다.

물론 개별 소송을 하나하나 제기해 모아서 진실을 밝혀나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앞서 사측은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했다고 하는 등의 피해자 측의 주장에 대해 허위사실유포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했고, 1심에서 승소했다. 사실 이 또한 문제는 유해화학물질 사용 여부를 먼저 판단해야 하는데 역학조사가 중요한 열쇠다. 최석봉 변호사는 "법원에서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판단했는데 이 또한 허위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고 있는지 먼저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 사측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물질을 사용하는지에 대해 알려줄 의무는 없다. 영업비밀이라고 하면 그만이다. 최석봉 변호사는 "사측에서 유해화학물질 사용 리스트를 보내주긴 했는데, 회사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영문자 가장 앞 한 자리만 공개한 채 블라인드 처리했다"며 "사실상 알아보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물론 유의미한 자료는 있었다. 대덕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사측이 정화 작업을 거쳐 대기나 폐수로 물질을 방출하기 전 사실상 1급 발암물질인 벤젠, 톨루엔, 자이렌 등이 검출됐다. 하지만 이 정도 자료로는 입증하기 쉽지 않다.

또 허위사실이라 해도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데, 법원은 정당한 사유도 없다고 봤다. 최석봉 변호사는 "지상파 탐사보도 프로그램에도 나오고 수많은 언론에 보도가 됐는데 법원은 기자들의 합리적 의심도 인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소송과 관련해서는 현재 피해자 측에서 항소를 진행 중이지만 사실 소송 진행을 위한 경비 부분도 걸림돌이다.

산재 인정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다른 곳에 비해 사망률이 유의하게 높았던 원인이 심혈관계질환이었고, 자살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석봉 변호사는 "산재처리 인정 부분은 의학적으로 인정돼야 하는데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백혈병이면 선례가 있어 오히려 쉽다"면서 "심혈관계질환은 의학적으로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으니 산재 처리가 쉽지 않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어 "솔직히 자살률이 그렇게 높은데 연관됐을 것 같은 느낌은 있는데 밝혀내지 못하니 문제다"며 "자살이 산재로 잘 인정되지 않으니 더 힘든 싸움이다"고 덧붙였다.

 [사진=한국타이어]
[사진=한국타이어]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 측은 현재 대통령령으로 정해져 있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폐지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령 업무상 질병판정 기준에서 뇌심혈관질환의 유해물질을 제외하도록 해 산재신청을 해도 인정이 안 되도록 막아, 이를 악용한 개인합의가 산재승인율 0.98%라는 결과를 만들었다고 보고 있어서다.

또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8조에 따른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폐지를 요구한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를 심의하기 위해 공단 소속 기관에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두는데, 이와 관련한 운영은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고 있다.

이러한 관련법의 전반적인 개정과 함께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 측은 산재라는 것이 방대하고 전문적인 분야인 만큼 별도의 독립적인 기구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지금은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에 산재예방정책과, 산재보상정책과, 산업안전과 등으로 운영되고 있고 산재관련 정부 기관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서다.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 측은 "곧 의원들에게 관련 자료를 보낼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시기 정책질의에 대한 답변으로 집단사망 관련 책임자 처벌과 제도 개선, 포괄 보상을 약속했는데 특별법으로 만들어서라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석봉 변호사도 "산재 전반에 관한 법령 개정을 위한 논의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이날 사측의 입장도 들어보려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지난주 진행한 전화통화에서 사측은 "역학조사를 사측에서 한 것도 아니고 정부 기관이라든지 담당하는 기관들, 지자체에서 다 선임을 해서 두 번 진행한 거라 조작된 사실은 없다"며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 측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법원 1심 판결에서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판결이 났다"고 반박했다. 또 "벤젠 등 그 쪽에서 주장하고 있는 유해물질을 사용하는 것이 없다"며 "유해물질을 대기나 수질로 배출하고 있지도 않다"는 입장을 전했다.

황금빛 기자 gol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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