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양창균 기자] 최근 세대교체로 그룹 수장에 오른 총수들이 대외리스크에서 첫 경영시험대에 올랐다. 재계 5대 그룹 중 롯데그룹을 제외하면 외교적 갈등으로 위기 상황을 맞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를 향한 경제 보복의 공세가 누그러지지 않으면서 세대교체를 이룬 주요 그룹의 총수들이 대응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주요 그룹의 세대교체가 최근 수년 내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일본 경제 보복 등의 대외리스크 상황도 낯설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각 그룹의 새내기 총수들이 현재 당면한 위기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관심사다.
◆ 이재용·정의선·구광모 첫 대외리스크 데뷔전
재계 1위 삼성그룹의 법적인 총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지난해 5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그룹의 동일인(총수)을 이건희 회장에서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으로 변경하면서다. 법적 기준으로 보면 총수 데뷔 이제 막 1년을 넘어선 셈이다.
이 부회장은 이번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 조치 후 연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3개 품목은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웨이퍼에 칠하는 감광액 리지스트, 반도체 세정에 사용하는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이다. 삼성전자에 직접적인 영향울 주는 핵심 품목이다.
이 부회장은 이달 4일부터 일본 정부가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취하자, 사흘 뒤인 7일 일본으로 날아갔다. 이 부회장은 입국 다음날인 이달 13일 오후 수도권의 한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과 삼성디스플레이 경영진 등을 긴급 소집해 일본 출장결과를 공유하고 향후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이어 이 부회장은 일본의 추가 수출 규제(화이트 리스트 제외)와 장기화 조짐 등과 관련해서도 부문별 사장단 회의를 진행해 대응책 마련을 지시했다. 지난주 스마트폰(IM)부문에 이어 이번주 소비자가전(CE)부문 등과도 긴급 사장단 회의를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총수 역할을 하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도 이번과 같은 사태가 생소하다. 정 수석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시점은 지난해 9월이다. 부친인 정몽구 회장을 보좌해 경영 업무 전반의 총괄하는 자리에 오르면서다. 특히 올해 3월에 열린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에 선임되면서 기아차와 현대제철 등과 함께 주력 4사의 사내이사로 등재됐다. 실질적인 그룹의 중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새내기 총수 위치에 오른 정 수석 부회장도 일본 정부의 추가 경제 보복에 적극 대처하는 모습이다. 일본 정부가 추가로 우리나라를 안보상 우호 국가인 백색국가에서 제외할 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정 수석 부회장이 일본으로 떠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 수석 부회장의 공식적인 일본 방문 목적은 대한양궁협회장으로서 내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이벤트대회(프레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양궁 대표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한 성격이다. 하지만 일본의 우리나라 수출 규제 강화 움직임이 커진 만큼 공식 일정 소화 후 현지 상황을 점검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자동차 부품 소재에서 상당부분 국산화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당장 영향은 크지 않다. 다만, 일본 정부가 백색국가 제외 등의 수출 규제 강화 조치에 나설 땐 현대차그룹이 신사업으로 밀고 있는 수소전기차에도 일정 부분 영향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5월 세상을 떠난 고(故) 구본무 회장에 이어 총수에 오른 구광모 회장도 이번 사태가 대외리스크 첫 데뷔전이다.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당장 LG그룹 측에 피해가 발생하거나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본 정부가 추가 경제 보복에 이어 사태 장기화가 현실화될 땐 LG그룹 측도 일정 부분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현재 LG그룹 측도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신동빈 中 이어 두번째…최태원 사실상 첫 대외리스크
지난해 5월 롯데그룹도 공정위가 신격호 회장에서 신동빈 회장으로 총수를 변경하면서 법률적인 2세 경영을 알렸다. 신격호 회장은 2017년 8월 롯데 계열사 중 마지막까지 등기임원 직위를 유지하던 롯데알미늄 이사에서 물러나면서 경영 전면에서 배제됐다. 또 지난해 5월 11일에는 롯데지주 이사회를 통해 총괄회장이라는 직함마저 떼이면서 1세 경영의 막을 내렸다.
법률적인 총수에 오른 기간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같다. 그럼에도 신 회장의 대외리스크는 이번이 벌써 두 번째다. 사실상 총수 역할을 했던 2016년 중국 사드 경제보복에 이어서다.
다만, 당시와 상황은 결이 다르다. 이는 롯데그룹의 태생적인 배경 때문이다. 롯데그룹의 태생적 배경이 일본이고 현재 지배구조 상단에서도 일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일본산 불매 운동에는 롯데그룹 계열사와 관련된 곳이 적지 않다.
일본 의류 브랜드인 유니클로의 한국법인은 롯데쇼핑이 지분 49%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 생활 잡화 브랜드인 무인양품도 롯데상사가 40%의 지분을 갖고 있으며, 일본 맥주 아사히를 국내 수입·유통하는 롯데아사히주류도 롯데칠성이 지분의 절반가량을 확보하고 있다. 한일 간 대치 상황이 더욱 심화될 수록 신 회장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이 때문에 현재의 난관을 신 회장이 어떻게 극복할지도 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SK그룹을 이끌고 있는 최태원 회장은 새내기 총수는 아니다. 지난 1998년 총수에 취임한 지 벌써 21년째 회장직을 맡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IMF) 여파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2016년 중국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경제보복 등을 겪은 총수다. 하지만 대외리스크로 인해 SK 사업(SK하이닉스)에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인 것은 사실상 첫 경험이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최 회장이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계열사 CEO(대표이사)를 중심으로 힘을 실어주는 모습이다. 반도체 원자재 수급과 관련해서 지난 16일 김동섭 SK하이닉스 대외협력총괄사장에 이어 이석희 대표이사 사장이 일본으로 날아갔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1~2년 사이에 5대 그룹 총수의 세대교체가 이뤄진 후 처음으로 대외리스크와 맞닥뜨리게 됐다”며 “한일 국가 간 갈등이라는 점에서 총수가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시험대는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양창균 기자 yangc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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