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현석 기자]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돼지고기 가격을 폭등시켜 소비자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보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지만, 생산자인 한돈 농가들은 오히려 하락한 도매 가격에 한숨짓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돼지고기 도매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가량 하락한 4천154원을 기록하고 있다. 돼지 가격이 크게 하락했던 지난 1, 2월 대비 오른 편이지만 이는 계절적 요인에 따른 수요 증가 때문으로 풀이된다. 통상 봄이 되면 나들이객 증가와 개학 등 학교 급식 수요가 늘어나 돼지고기 소비가 늘면서 가격이 오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일일 소매가격에 따르면 소비자 가격도 일각의 보도처럼 폭등한 것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일 기준 한돈 삼겹살 100g당 가격은 1천950원으로, 평년 1천907원 대비 2.3% 오르는데 그쳤다. 지난 4월 평균 가격도 1천875원으로 지난해 1천817원 대비 3.2% 인상 수준이다. ASF 영향이 있었다 하더라도 지난 2017년(2천 원)과 2016년(1천885원)에 비해 낮아진 수치다.
경기 이천에서 한돈농가를 운영중인 손종서 씨는 "경기불황으로 지난 6개월간 생산비 이하의 돈가가 지속된 상황에서 ASF 이슈까지 터져 생업을 아예 접어야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최고조"라며 "이런 상황도 모른 채 날마다 돼지고기값이 올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한돈농가들이 큰 수익을 올리는 것처럼 비춰져 답답하다"고 말했다.
수입돼지고기 가격도 지난해나 평년 대비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수입 냉동 돼지고기 삼겹살 중품 100g당 전국 평균 소매가격은 993원으로, 1년 전의 1천65원 대비 9.3% 내려갔다. ASF로 인해 돼지고기 가격이 폭등했다는 일각의 주장과는 다른 수치다.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한돈자조금) 관계자는 "중국발 ASF의 영향이 아직까지 국내 돼지고기 수급과 가격에 큰 영향은 미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돈농가들은 ASF가 전국민적 이슈로 떠오르고 돼지고기 가격 상승폭이 커지면 오히려 소비가 위축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 또 올해 1분기 돼지고기 수입이 9만5천 톤을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5% 증가하면서 수입 돼지고기의 역습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경기 포천에서 한돈농가를 운영하고 있는 왕영일 씨는 "지난해 돼지고기 자급률 70%선이 무너질 만큼 수입 물량이 늘어나고 있다"며 "2010년 구제역 발생으로 2천여 마리를 살처분 한 경험도 있어 ASF에 대한 불안감이 크며 생존의 위협까지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에 한돈자조금과 대한한돈협회는 ASF 국내 유입을 막기 위해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대한한돈협회는 ▲북한 접경지역 멧돼지 개체수 조절 ▲음식폐기물을 급여하는 잔반농장(260여 곳) 금지 ▲불법 축산물 유입 과태료 상향 조정 등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협회와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 등 관계부처 관계자들은 지난달 21일부터 28일까지 ASF가 발병했던 독일, 벨기에와 유럽연합(EU) 본부를 방문한 뒤 유럽 방역 시스템을 국내에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여당도 지난 7일 당정 긴급회의를 열어 국내 ASF 유입 방지 의지를 밝혔다. 이 회의에서 정부·여당은 ASF 국내 유입 차단을 위해 불법 축산물 반입시 과태료를 현행 10만 원에서 최고 1천만 원까지 인상했으며, 가축전염병 예방법 시행령을 개정해 다음달 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또 과태료 미납시 재입국 거부 등의 강력한 제재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하태식 한돈자조금 위원장은 "연초부터 돼지가격이 최근 5년 사이 최저가격을 형성하는 등 어려운 한 해를 맞이했는데, ASF로 인해 한돈산업은 또 한 번의 큰 위기를 겪고 있다"며 "ASF는 농가뿐 아니라 가공업, 음식업 등 관련 산업까지 흔들릴 수 있는 중대한 질병인 만큼 ASF 유입 방지에 전국민적인 관심과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현석 기자 try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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