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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학회' 참석, 과학계의 새로운 주홍글씨 되나


조동호 낙마 과정에서 '부실학회' 참석이 결정적 사유로 거론

[아이뉴스24 최상국 기자] 조동호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가 '부실학회' 참석을 이유로 전격 '지명철회'되자 과학기술계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조동호 교수가 장관이 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가 낙마한 과정 때문이다.

인사청문회를 전후로 제기된 갖가지 의혹들로 인해 장관 임명이 힘들 것이라는 예상은 있었지만 청와대가 '부실학회 참석'을 콕 짚어서 그것도 '지명철회'라는 강경한 형식으로 발표한 데 대해 과기계 인사들은 대체로 '실망, 자괴감,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한 과학기술계 단체장은 "과학기술계를 이끌어 가기에는 도덕적으로 흠결이 있어 보여서 부적절한 인사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다른 것도 아닌 부실학회 참석을 핑계삼아 후보자를 버리는 돌 취급한 것은 과학기술계 전체를 모욕한 것"이라며 청와대의 행보에 대해 불쾌감을 표현했다.

과학기술계 인사들은 대체로 지난해 뉴스타파 보도 이후 수면 위로 떠오른 '부실학회' 문제가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 없이 일방통행식 처벌 위주로 진행돼 온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지금이라도 '부실학회 참석'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오믹스 홈페이지 캡쳐
오믹스 홈페이지 캡쳐

◆ 부실학회 참석이 부동산 투기보다 더 나쁘다?

지난 31일 조동호 전 후보자를 지명철회한다는 브리핑에서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부실학회 참석을) 사전에 확인했다면 후보 대상에서 제외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은 검증과정에서 이미 다 알고 있었지만 후보자로 지명하는 데 문제가 없었고 부실학회 참석은 그 자체로 '부적격' 사유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한 과학기술정책 전문가는 "부실학회 참석이 부동산 투기보다 더 나쁜 범죄라는 이야기"라면서 "청와대의 학계에 대한 이해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학기술계는 정치판의 사석 취급 당하는 것도 억울할 텐데 이제 부실학회 참석은 평생 꼬리표로 따라다닐 중대 범죄 취급을 당하게 됐다"고 말했다.

◆ 부실학회, 기준은 무엇인가?

조동호 교수가 참석해 문제가 된 학회는 '오믹스(OMICS International)'라는 인도계 학술단체와 관련이 됐다. 오믹스는 지난해 뉴스타파 보도 이후 와셋(WASET)과 함께 대표적 해적 학술단체로 지목돼 교육부와 과기정통부가 대학과 출연연을 대상으로 이들 학회 참가자들을 조사하고 징계조치를 내린 바 있다.

문제는 조사 대상이 된 '부실학회'의 기준이 단지 와셋 또는 오믹스와 관련돼 있느냐였을 뿐 그 외의 다른 기준은 없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조사 당시에도 현장에서는 1차원적인 조사와 징계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한 지방 국립대 교수는 "오믹스만 해도 초기에는 꽤 괜찮은 학술대회였다. 최근 들어 행사를 남발하고 영리 행위가 늘어서 평판이 나빠졌지만 오믹스와 관련된 학술대회 전체를 다른 기준없이 일괄 부실학회로 낙인찍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오믹스가 '정상적인 논문 출판 문화를 해치고 과장 광고를 한 혐의로 지난 2016년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에서 공식 제소됐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

작년 10월5일 발간된 한국연구재단의 'R&D브리프 '美 FTC(연방거래위원회)가 연구자들에게 보낸 주의 메시지 - 약탈적 학술출판업자(OMICS 등)을 조심하라'에 따르면 'FTC가 오믹스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문제를 삼은 것은 오믹스의 저널이나 컨퍼런스의 콘텐츠가 아니고 오믹스의 불공정한 영업방식이다. 즉 미국 정부가 본 사건과 관련하여 문제를 삼는 것은 오믹스가 연구자를 상대로 거짓을 유포한 것과 과대광고를 한 것에 대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해당 브리프는 "부실학회에 대한 사전경고 없이 부실추정학회 참가 사실만으로 연구자들을 부정행위자로 간주하기보다는 부실학회에 대한 예방가이드를 제공하고 연구자 스스로가 부실학회를 이용하지 않도록 성숙한 연구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이런 보고서가 나오는 이유는 '부실학회'라는 기준이 무척 애매한 데다 신생학회일수록 직접 가보지 않고서는 부실학회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인식이기 때문이다.

◆ 부실학회 부추긴 제도적 문제점은 없나?

학계에서는 부실학회 문제가 발생하게 만든 제도적 원인으로는 BK21(Brain Korea 21) 사업을 주로 지목한다. BK21은 세계적 수준의 대학원 육성과 우수한 연구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석ㆍ박사과정생 및 박사후 연구원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고등교육 인력양성 사업이다. 이제는 BK21에 선정되지 않으면 대학원 운영을 못할 정도로 대학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업이다.

BK21에는 '참여대학원생 학술대회 발표실적'이라는 계량평가 항목이 있다. 교수와 학생이 해외학회에 참석해 발표하는 것은 중요한 평가 지표다. 여기에서 실적으로 인정하는 '국제학술대회'는 이공계의 경우 4개국 이상 참여, 총 구두논문 20건 이상의 학술대회다. 그 밖의 다른 규정은 없다. 이 때문에 지난해 부실학회 조사에서 징계를 받은 교수들 중에는 교육부에 소청 심사를 준비하고 있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국립대 교수는 "부끄러운 얘기지만 BK21 때문에 대학원생들을 학술대회에 보내는 이유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 문제는 '부실학회 참석'이 아니라 '학회 부실참석'

조동호 전 후보자는 부실 학회 참석 의혹에 대해서 "학회 참석 시 (중략) 유전체학․분자생물학 전문가가 기조강연을 하는 등 참석자와 발표내용이 충실하여 당시로서는 통상적인 학회로 인식"했다고 지난 30일 해명한 바 있다.

KAIST는 사전에 학회 참석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부실학회 참석 조사는 해당 학회 홈페이지에서 발표자와 논문을 검색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단순 참관자는 파악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과기계 한 관계자는 "조동호 교수의 해명은 국내 학계의 대다수에게도 적용되는 말일 것"이라며 "장관 후보자에서 낙마한 사유로 앞서 제기됐던 부적절한 외유성 출장이나 부동산 문제가 아니라 부실학회 참석이 결정적인 이유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서류상으로 아무 문제 없는 해외 유명 학회를 간다고 해서 모두 떳떳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기준도 애매한 '부실학회 참석'이 아니라 관광이나 다름없는 '학회 부실참석' 을 관행으로 생각하는 일부 연구자들"이라고 일침했다.

과기계 인사들은 '부실학회'참석을 결정적 이유로 삼은 조동호 전 후보자의 낙마를 계기로 "정치권의 과기계에 대한 낮은 인식과 함께 과기계의 민낯이 함께 드러났다"며 과기계가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선정적 용어로 학계 전체가 매도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상국 기자 skcho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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