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조석근 기자] 전기오토바이를 수입하는 서울 소재 A업체는 올해 1월부터 돌연 전기오토바이 수입이 중단됐다. 관세청이 제시한 이유는 해당 제품이 전자파 적합성 평가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달대행업체 등 업체들에게 대량 공급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한마디로 날벼락 같은 소식이다.
A업체 관계자는 "전기오토바이에 대한 전자파 인증은 금시초문이라 부랴부랴 인증 시험기관을 수소문했다"며 "인증 기준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기오토바이 인증을 위한 설비를 갖춘 시험기관도 국내 50개 시험기관 중 단 1곳밖에 없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전남 소재 B업체는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전파정책 집행기관 전파관리소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전자파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을 불법 판매했다는 내용의 전파법 위반 혐의 관련 조사에 응하라는 것이다. 미인증 제품 판매 시 징역 3년 이하, 또는 벌금 3천만원 이하의 형사 처벌이 가능하다.
B업체 임원은 "전기오토바이 취급점이 전국 이륜차 대리점, 판매점을 포함 1만 곳이 넘는데 이들도 문제가 된다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며 "10년째 판매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 국민신문고에 접수하든 해야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전기오토바이를 포함한 전기이륜차 전반에 대한 전자파 적합성 평가를 의무화하고 본격적인 단속에 들어가면서 발생한 일이다. 전자파 인증 미비를 이유로 상당수 업체들의 판매와 수입이 중단됐다. 이 와중에 전기오토바이에 대한 정부 보조금 사업 예산은 전년보다 2배 늘었다. 한 마디로 대혼란이다. 도대체 전기오토바이 업계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애매모호 '전자파 인증' 규제에 업계 '대혼란'
발단은 전자파 적합성 평가 업무를 전담하는 전파연구원의 2017년 9월 입법예고다. 전파연구원은 당시 전동자전거, 전동보드, 전동휠체어, 전동스쿠터와 '기타 이와 유사한 기기' 등 이동용 전동기기들의 전자파 적합성 평가를 통한 인증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은 유통이 금지되고 판매 업체는 형사 처벌까지 가능하다.
이 내용을 담은 전파연구원의 고시 개정안은 같은 해 연말 시행된다. 전파연구원은 문제가 된 전기오토바이를 '기타 이와 유사한 기기'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했다. 고시 개정안에 전기오토바이를 '직접' 명시하진 않았지만 전자파 인증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게 전파연구원의 입장이다. 정작 고시 개정안 시행 과정에서 업계가 이같은 사정을 까맣게 몰랐다는 게 이번 혼란의 원인이다.
전기오토바이의 경우 그간 전파법상 전자파 인증 대상에서 자동차관리법에 따른 면제 대상으로 간주됐다. 배터리, 컨트롤러 등 전자장치에 대해 승용차, 화물차, 일반 오토바이와 함께 별도의 인증을 거치면 된다는 취지다. 전기오토바이가 시속 25km/h 이하 전동스쿠터, 전동자전거, 전동보드 등 다른 전동식 이동기구들과 달리 도로 주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일반 오토바이와 비슷한 특징을 갖는다는 점 때문이다.
전기오토바이 업계 입장에선 전파연구원의 고시 시행을 계기로 인증 기준이 완전히 달라진 셈인데, 고시 내용의 '기타 이와 유사한 기기'라는 모호한 규정 자체가 혼선을 부채질한 셈이다. 업계가 전파인증 의무화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 들어서다. 전동스쿠터, 킥보드 등 전동식 이동기구들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면서 전자파 미인증 제품에 대한 단속이 본격화되던 시점이다.
전파연구원은 소비자 안전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이같은 기구들이 실내 가전제품에 준하는 인증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반 오토바이를 포함한 차량에 비해 높은 기준이 적용된다. 전파연구원이 요구하는 적합성 평가를 통과하기 위해선 모터를 비롯한 구동부, 배터리와 충전계, 컨트롤 패널, 리모콘 등 주요 부품의 재설계가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이미 상당한 제품들이 시중에 유통된 상황이기도 하다. 업계 관계자는 "전동식 이동기구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전기오토바이가 적어도 1만대 이상, 스쿠터와 킥보드 등을 포함하면 30만~40만대가 이미 판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급 기관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전자파 적합성 평가는 시장 유통 전 기술기준에 부합하는지 '사전 인증'하는 취지"라고 설명했지만, 결과적으로 '사전 인증'은커녕 사후 약방문이 된 셈이다.
스마트e모빌리티협회 관계자는 "전기오토바이의 경우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지만 생산업체도 배터리 등 핵심 부품을 제외하면 마찬가지"라며 "상당수 업체의 제품과 부품 수입이 중단됐는데 인증을 받기까지 적어도 6~9개월 정도가 걸릴 수 있어 영업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환경부·지자체 보조금 사업도 차질 불가피
환경부의 경우 전기오토바이 보급 확대를 위한 보조금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전기오토바이 구매 시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대당 230만~360만원을 지급한다. 지난해의 경우 정부와 지자체를 합쳐 250억원 규모로 목표 보급대수는 1만대다. 전년 124억원, 5천대보다 2배 증가한 규모다.
전기오토바이 보조금 사업은 전기차 보급 사업 일환으로 2012년부터 시행됐다. 대기환경 개선 차원인데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사업 규모도 커졌다. 오토바이 1대가 승용차 20대분의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만큼 일반 오토바이를 전기오토바이로 교체할 경우 환경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조금 사업은 각 광역시도 이하 지자체의 수요를 기반으로 결정된다. 환경부의 26일 기준 구매보조금 지급현황으로 서울시가 올해 공고한 900대 중 접수는 223건이 이뤄졌지만 출고는 0건이다. 부산도 521대 중 접수대수 223건에 출고 0건, 인천이 600대 중 접수대수 31건에 0건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전자파) 인증이 이뤄진 차에 대해서만 지원금이 나갈 수 있다. 현재 신청 접수만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신청자는 있지만 전자파 인증에 따른 혼선으로 실제 전기오토바이 판매가 이뤄지지 않아 보조금 지급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판매가 이뤄진 곳도 있다. 대구도 1421대 중 31건의 출고가 이뤄졌다. 광주가 50대 중 2건, 대전이 299대 중 2건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자파 인증 적용 여부를 모르는 지자체들도 있어 미인증 차량이 판매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가 미인증 제품에 보조금을 지급해온 꼴로, 정부의 규제 도입이 부처간은 물론 지자체들과도 공유가 안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조석근 기자 mysun@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