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문기기자]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에 반도체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직접 일본을 방문한다.
중국과 대만 등에 기술유출을 우려한 일본 정부도 소극적이었던 1차 때와는 달리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 인수향방이 안갯속을 걷고 있는 형국이다.
업계에 따르면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4일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를 위한 답을 찾기 위해 직접 현장인 일본을 방문한다. 지난 17일 비선실세 최순실 씨와 관련된 수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최 회장에 대한 출국금지 처분이 끝나면서 첫 출장지로 일본을 택한 것. 글로벌 경영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게 됐다.
도시바는 지난 2006년 인수한 미국 원전업체 웨스팅하우스에서 발생한 사업손실을 메우기 위해 지난 1월 이사회 결정에 따라 반도체 부분을 분사키로 했다. 지난 3월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분사 승인이 이뤄졌다. 오는 5월 중순께 2차 예비입찰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후 우선협상자 선정이 진행된다.
1차 예비입찰을 통해 도시바 메모리 인수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곳은 대만 홍하이그룹(폭스콘)과 미국 브로드컴, 웨스턴디지털(WD)와 SK하이닉스다.
단, 일본은 일찍부터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중국과 대만 업체들을 인수 후보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한국도 경계대상이다. 일본 외환법에 따르면 해외 기업이나 투자자가 국내 반도체 등의 사업을 인수할 때 국가의 심사를 받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수전에 나선 기업들은 다양한 협력관계를 구축,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전략이다. 도시바가 메모리 사업부 기업가치를 2조엔(한화 약 21조원)으로 평가해 달라는 요청이 있어, 기업 한 곳에서 소화하기에도 어려운 처지다.
폭스콘은 1차 예비입찰에서 도시바 메모리 인수 규모중 가장 높은 3조엔(한화 약 31조원) 가량을 베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애플이 도시바 메모리 지분 20%를 목표로 폭스콘과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애플은 기술유출을 꺼려 미국에 도시바 메모리를 넘기려 하는 일본의 우려를 덜어낼 수 있는 카드다.
미국 브로드컴은 일본과의 협력 관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미국 투자펀드 실버레이크파트너스연합과 손을 잡은 이후 일본산업혁신기구(INCJ)와 일본정책투자은행 등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새로운 변수를 일으킨 곳은 WD다. WD는 도시바 메모리 경쟁업체 주주 참여를 반대하는 의미로 도시바에게 독점교섭권을 요구했다. WD는 2000년부터 도시바와 협력해 일본 내 위치한 욧카이치 반도체 공장을 공동으로 운영해왔다. 상대방 합의 없이 합작기업을 팔 수 없다는 계약서 조항을 강조하고 있다.
WD와 도시바는 꾸준하게 기술 협력을 지속해왔다. 최근에는 올해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512Gb 64단 3D 낸드플래시를 공동 개발하고 일본 욧카이치 공장에서 시험생산에 돌입한 바 있다.
최 회장의 일본행은 WD와의 협상을 위함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도시바와 협력관계를 공고히 했던 WD에게 SK하이닉스가 파트너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겠다는 복안이다.
SK하이닉스에게는 대규모 자금을 통한 인수에는 어려움이 있겠으나, 차세대 기술 협력과 적극적인 욧카이치 공장 투자, 고용 안정 계획을 제시해 협력 관계를 견실히할 수 있다면, 인수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최 회장이 현재 입찰 금액은 큰 의미가 없다는 발언도 이러한 정황의 근거로 작용한다.
이 외에도 SK하이닉스는 미국계 사모펀드 베인캐피탈과 협력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베인캐피탈은 1984년 설립된 사모펀드로 운용자산 750달러(한화 약 90조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에서 다양한 사업이 이미 투자를 진행 중인 곳이기도 하다.
SK하이닉스와 마찬가지로 일본 정부도 WD에 손을 뻗고 있다. 도시바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미국계 기업으로 기술유출 우려가 적다는게 WD가 각광받는 이유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현지매체들에 따르면 일본산업혁신기구와 일본정책투자은행은 각각 1천억엔(한화 약 1조원) 이상을 내놓는 한편, 미국 투자펀드인 KKR과의 협력을 논의 중이다. KKR은 일본의 다양한 기업들에 투자한 전력이 있다. 3자 컨소시엄이 완성되면 WD 진영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낸드플래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한 축을 이끌어나갈 것으로 기대되는 차세대 기술 중 하나다.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 여러 방면에서 쓰일 수 있다. 전원이 꺼지면 정보가 사라지는 D램과 달리 전원이 꺼저도 저장된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 비휘발성 메모리로, 생상 공정과 수율, 가격, 신뢰성, 속도, 수명 등을 고려해 지속적으로 진화 발전돼 왔다.
김문기기자 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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