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태현 기자] "이사들의 사익 추구 행위를 차단하는 등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1월 한국거래소에서 밝힌 내용이다. 2020년 LG화학의 LG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과 상장으로 불거졌던 일반주주 가치 훼손을 지적한 것이다.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은 불법이 아니다 보니, 이를 바로잡으려면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윤 대통령의 지적에 정부와 국회, 그리고 금융감독 당국까지 상법 개정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 과정에서 상법 개정에 주도적으로 나선 이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었다.
이 원장은 6월 "다수 시장 참여자가 국내 자본시장의 근본적인 문제로 후진적인 기업 지배구조를 지적해 왔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와 주주의 이익 보호'로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상법 개정 공론화를 이끌었다. 그러면서 재계의 반발을 감안해 "배임죄 폐지가 맞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총주주로 확대될 경우, 경영진을 상대로 배임죄 남소 우려가 있다는 재계의 비판을 달래려고 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제기하고, 이 원장이 주도한 상법 개정은 2011년 상법 개정 이후 13년만의 큰 변화였다. 겉으로 드러난 상법 개정의 취지는 '쪼개기 상장'을 막아야 한다는 일반주주의 바람이었다. 그렇지만 상법 제382조의3항은 주식회사 이사의 의무를 규율하는 기본 조항이라는 점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대통령이 의지를 보이고, 그의 복심으로 불리는 이 원장이 논의를 주도했음에도 재계의 반발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상법 개정안을 잇따라 발의했다.
침묵하던 상법 개정의 주무 부처 법무부와 금융위원회는 11월 상법 개정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 원장도 논란을 피하기 위해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입장을 바꿨다. 회사법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상법 개정 대신 상장법인의 자본거래 항목만 개정하는 땜질 처방으로 돌아선 것이었다.
13년 전 이명박 정부 시절 법무부는 상법 개정을 주도했다. 당시 상법 개정안은 자기주식 취득 허용을 비롯해 전환상환우선주(RCPS)같은 종류주식의 허용 등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마련해주는 대규모 개정이었다. '기업하기 좋은 법적 환경'을 마련한다는 것이 개정 취지였다.
2024년 윤석열 정부는 일반주주 이익 보호를 표방하면서도 재계의 반발을 의식해 상법 개정을 포기했다. 13년 만에 시도된 자주적이고 근본적인 상법 개정은 실패로 막을 내렸다.
/정태현 기자(jth@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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