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공사를 다녀와서 '대동' 시내 숙소에 늦게 도착했다. 대동의 한국식당을 검색해 보니 '수얼가'(우리말 서울식당)라는 식당이 나온다. 여행의 피곤함이 자주 한국 음식을 찾게 만든다. 식당의 간판과 실내 장식이 중국 식당에 비해 깔끔하고 깨끗하다.
중국의 변방에 한국 식당이 있슴에 감사하면서 '수얼가'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시켰다. 설탕 범벅으로 김치찌개가 아니다. 배고파서 웬만하면 먹을 텐데, 저녁 식사는 포기했다. 하바롭스크, 돈황,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에서 고려인 후손이 운영하는 한식당에서 한식을 많이 먹었는데 이곳이 여행 중 만난 가장 형편없는 식당이다.
![한국식당 '수얼가' 간판. 2014년 개업.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64b46ddbb42aba.jpg)
식당의 젊은 여자 주인에게 "한국 음식 조리법을 어디서 배웠느냐? 한국 음식을 과거 먹어본 적이 있는지?" 물어봤다. "한국 음식 조리법은 인터넷에서 배웠다. 한국 음식을 먹어보거나 한국에 가본 적이 없다." 대답한다. 10년 전 2014년 한류가 유행할 때 무턱대고 한국식당 개업했는데 현재까지 10년 동안 장사가 잘된다고 한다. 'K 푸드'로 먹고 사는 사람이 중국 변방에 있다니 한류의 힘이 대단하다.
아내는 서울에서 김밥, 떡볶기 조리법을 배워서 장사하면 잘될 것 같다고 말한다. 길거리 노점상에서 양고기 꼬치구이로 저녁을 대신했다. 유목지대와 가까워서 많은 노점상이 양고기 샤슬릭 구이를 팔고 있다. 샤슬릭 요리에 들어가는 향신료 양념이 타는 매캐한 냄새와 연기가 거리에 자욱하다. 7월 하순 주말 저녁이라 노점에서 식사하는 인파가 매우 많다. 북방지역이라 밤 9시 이후 기온은 쾌적하다.
7월 20일 일요일 아침 일찍 산서성 '대동(大同)'을 떠나 약 400킬로 남쪽 '평요'로 향한다. 화북지방의 넓은 들판에 옥수수밭이 끝이 없다. 화북평야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한다. 과거 몽골 황제 '오고타이 칸'(제2대 몽골 황제)이 중국 북부의 금나라(만주 여진족이 중국 북부에 세운 나라, 1234년 멸망)를 정복하였다. '오고타이 황제'는 농사짓는 농부를 쫒아내고 화북지방에 초지(草地)를 조성하여 양, 말, 소 등을 키우도록 부하에게 지시하였다.
당시 재상이던 '야율초재'가 농토를 보전하여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 초지(草地)에 양을 키우는 것보다 나라 재정에 도움이 된다고 몽골 황제를 설득하여 초지 조성을 철회했다는 일화가 있다. 초창기 몽골 황제의 유연한 리더쉽, 뛰어난 인재를 선발하는 안목이 유라시아 대제국을 만든 배경 중 하나이다. 대동 숙소에서 40여 킬로 떨어진 곳에 북위 시대 조성된 1500년 된 중국의 4대 석굴중 하나인 '윈강석굴'(용문석굴, 돈황석굴, 맥적산석굴)이 있으나 일정이 빡빡해서 건너뛴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이민족 국가 '북위'는 중국 역사상 가장 독실한 불교국가이다. 윈강석굴은 서기 460년에 처음 조성이 시작되었고, 훗날 통일신라의 '석굴암' (751년 김대성 만듬)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평요로 가는 고속도로 양옆은 넓은 폭(수십 미터)의 '가로수 숲'이 계속 조성되어 있다. 가로수 나무숲 때문에 화북평야 지대의 농촌풍경을 볼 수가 없어 답답하다. 도로에 갇혀서 달리는 기분이다. 중국의 '녹화사업'이 가장 중요한 국책사업임을 피부로 느낀다.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만리장성' 흔적을 찾으려고 했으나 찾을 수가 없다.
![한국식당 '수얼가' 간판. 2014년 개업.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706d0b11c62ba2.jpg)
현재 남아 있는 만리장성은 20% 미만이고, 50% 이상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만리장성은 중국의 기원전 춘추전국시대 북방 유목민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조나라, 연나라, 진나라'가 축성했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고 확장 연결한 것이 최초의 만리장성이다. 현재 관광객이 보는 북경 근처 '팔달령', 하서회랑의 '가욕관'은 명나라가 세운 것이다. 명나라는 초원으로 쫒겨 간 몽골족의 재침략을 무서워해서 14세기 만리장성을 재건하였다.
화북 지역의 만리장성은 청나라 지배 이후 유목민 침략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농민들이 농사와 통행에 불편하니 훼손되거나 사라진 것으로 생각이 든다. 만리장성의 길이는 자료에 따라 3700킬로, 5천 킬로, 2.1만 킬로 등 다양하다. 지선(支線)을 어디까지 포함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 중국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요동 지역의 고구려가 만든 성곽도 만리장성에 포함하여 2.1만 킬로라고 발표했다.
중국의 고속도로 휴게소는 시설에 따라 등급을 붙여서 4등급, 5등급 휴게소라는 표시를 도로변에 붙여 놨다. 우리는 시설이 좋은 5등급 휴게소 간판을 보고 들어간다. 우선 5등급 휴게실은 시설이 크고, 식사 메뉴도 다양하다. 특히 화장실이 청결하고, 사용료를 안 받는다. (유라시아 여행 중 중국은 화장실 요금을 안 받는 유일한 국가이다). 자본주의 시장 논리를 통해 휴게소를 청결하게 만들려는 인센티브 정책이다. 오래전 만든 노후화된 휴게소는 장사가 안될 것이다.
험준한 태항산맥을 종단하여 남쪽으로 달린다. 고속도로 왼쪽에 중국 4대 대승불교 성지의 하나인 '우타이산(오대산)'이 나타난다. 우타이산(오대산)은 '문수보살'이 현신하는 산이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 '반야경'을 편찬한 보살로 알려져 있다.
![한국식당 '수얼가' 간판. 2014년 개업.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2eaa387f30baa1.jpg)
조선시대 세조 임금이 피부병을 고치러 전국을 순회하던 중 강원도 오대산 '상원암' 가는 계곡에서 동자로 현신한 문수보살을 만나서 피부병을 고쳤다는 설화도 있다. 대승불교의 특징은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 사상'이다. 대웅전에서 자주 보는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아미타보살, 미륵보살' 은 멀리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온 것이다.
중국 오대산은 신라승 혜초와 관련이 있어서 유심히 산을 보면서 통과한다. 천축을 다녀온 신라의 구법승 혜초스님(704~787년)은 오대산 '건원보리사'에서 입적하였다. 혜초스님의 인도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이 돈황석굴에서 발견되었다. 왕오천축국전은 앞뒤 표지가 없고, 제목도 없는 두루마리 문서이다. 프랑스 사람 '펠리오'가 1908년 돈황석굴을 방문하여 사간 문서 중 하나가 '왕오천축국전'이다.
프랑스 사람 펠리오는 언어의 천재로 중국어를 포함 13개 언어에 능통하였다고 한다. 펠리오는 왕오천축국전의 저자가 혜초임을 발견하였으나, 혜초가 중국인으로 알았다. 1915년 일본학자에 의해 신라 승으로 확인되었다, 책 제목 '왕(往)오(五)천축국'은 '동.서.남.북.중앙' 5개 천축 지역을 다녀왔다는 뜻이다.
혜초는 16세에 신라 계림에서 당나라에 유학 와서 인도승 '금강지'를 만나고, 스승의 권유로 20세 나이인 723년에 중국 광저우에서 해로(海路)로 인도로 갔다. 8세기에는 벌써 바다를 통한 '해상' 실크로드가 '육상' 실크로드보다 활발해 가던 시기이다. 당나라로 귀로(歸路)는 '육로'로 돌아왔는데 페르시아 북동부(현재 이란)에도 간 적이 있다. 16살은 우리의 고등학생 나이인데, 대단히 모험심과 탐구심이 많은 신라 청년이다.
![한국식당 '수얼가' 간판. 2014년 개업.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f7cea9906259dd.jpg)
혜초는 4년(723~727년)의 천축 여행을 마치고 파미르고원을 넘어서 서역북로, 돈황, 서안(西安)을 거쳐 오대산 '건원보리암'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혜초스님이 1300년 전에 중국으로 귀환했던 길을 역순으로 여행할 계획이다. 학창 시절부터 꿈꾸었던 혜초의 여행 길과 실크로드를 가는 중이다. 혜초스님은 돈도 부족하고, 언어도 안 통하고, 아무런 지리적 정보도 없이 20살 청년 나이에 목숨을 건 구법(求法) 여행을 하였다. 1300년 전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다녀온 구법승이자 탐험가인 신라의 젊은 스님의 패기와 용기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평요(平遙) 고성'은 1370년 명나라 때 축성한 성으로 현재 중국에서 가장 잘 보존된 성이라고 한다. 변방에 위치한 관계로 중국 문화혁명(1966~1976) 때 홍위병에게 파손이 안 되어 명, 청 시대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도시라고 한다.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견디어 낸 고건물, 상가, 관청, 민가 건물 등이 고풍스럽다.
성안은 차량 출입이 아니 되어, 성 밖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야 한다. 전통 카트에 짐을 싣고 숙소인 '평요 회관'으로 이동한다. 우리가 숙박하는 '평요 회관'은 건물 동(棟)수도 많고, 객실 수도 수백 개가 넘는다. 현대식 호텔에 익숙한 우리에게 청나라 전통가옥의 구조와 방이 반갑다.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아내가 매우 좋아한다. 여관방 내부는 청나라 '객잔(客醆)' 형태라고 한다.
여관 바로 옆에 있는 공자를 모시는 문묘와 대성전 건물이 있다. 명나라 시대 사용하던 '대성전' 건물에서 저녁 식사, 전통 문화공연을 한다. 아침 식사는 과거 유생들이 공부하던 '명륜당'에서 한다. 이곳 문묘는 1100년경 금나라 때 건설되어 매우 오래된 유교 시설인데, 상업목적으로 전통문화재를 활용하고 있다. 오래된 문화재도 상업주의로 활용하는 현대 중국 모습이다.
'공자'는 중국의 문화혁명(1966~1976년) 당시 홍위병에게 부르조아 사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된 인물이다. 공자를 모시는 유적이 대부분 파괴되어, 문화혁명 광기가 사라지고 등소평의 개혁 시기에 전문가를 우리나라에 파견하여 문묘 제사 의식, '팔일무' 춤 등을 배워갔다. 평요고성 안에 3700채의 상가와 민가가 있는데, 모두 명나라, 청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고(古)건물이다.
![한국식당 '수얼가' 간판. 2014년 개업.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1570a5565567e6.jpg)
명나라 시대 지은 500년 이상 된 목조 건물이 많다. 긴 세월 동안 전란과 화재를 피하고 잘 보존한 점에 경외감이 든다. 유네스코에서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시내 중심에 현(縣) 청사가 있고, 청사에서 현감과 형방, 포졸 등이 죄인을 취조 하는공연을 한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데, 중국인 관광객들이 폭소를 터트리는 것으로 봐서 코믹한 내용임을 짐작할 수 있다. 현청사 안은 현감 근무실, 병졸 연병장, 감옥, 식당 등 과거 시설을 잘 보존하고 있다. 현청사 입장료는 40위안(약 8천원)으로 비싸다.
'평요고성' 성곽의 길이는 6킬로미터이고, 성 위는 마차 두 대가 다닐 정도의 넓이다. 구운 벽돌을 쌓아서 만든 성이다. 성곽에 올라가는 요금은 100위안(원화 19000원)으로 매우 비싸다. 성곽 입장료가 비싸니 성곽 위에 올라가는 관광객은 많지 아니하다. 야간의 고성(古城) 거리는 거리마다 홍등(紅燈)을 환하게 켜서 화려하기가 그지없다. 야간에 관광객이 인산인해(人山人海)라서 명동길 인파는 저리 가라이다.
중국은 관광을 내수진작으로 적극 유도하고 있고,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어디를 가나 중국인 관광객이 매우 많다.
관광지 입장료도 매우 비싸다. 서구 학자들이 중국 당국에 서민들이 이용하는 관광지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중국 당국자 답변은 당신들 이론에 의하면 '수요가 많으면 요금을 올려라 하지 않았느냐?' 말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과거 외국인은 비싸게, 내국인은 낮게 이중요금을 받았는데, 내국인 요금을 외국인 기준으로 상향하여 통일했다고 한다. 경제면에서 자본주의 중국의 단면이다.
중국은 관광업무를 담당하는 중앙부처 이름을 종전 '여가국'에서 '관광 여가국'으로 변경했다. 중국 정부가 관광을 통한 내수진작과 관광 일자리 창출에 대한 의지를 알 수 있다. 차마고도 트래킹을 위해 과거 운남성 '리장 고성'을 방문한 적이 있다. '리장 고성'과 비교하여 평요 고성은 규모가 훨씬 크고 보존 상태도 좋아 보인다. '평요고성, 리장고성, 서안성' 등이 명나라 성(城)의 모습을 잘 간직한 고성(古城)이라고 한다. 아내는 우아한 전통 청나라 객잔 방에서 하룻밤만 자고 떠나는 게 아쉬움을 갖는다.
![한국식당 '수얼가' 간판. 2014년 개업.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9214052e0a4af4.jpg)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서울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 석사, 가천대학교 회계세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국세청, 재무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제24대 관세청장,삼정kpmg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심산기념사업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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