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갑기자] 북한이 지난 9일 핵실험을 한 가운데 대부분의 기업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지만 개성공단에 입주한 업체들은 실낱같던 희망까지 잃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들은 대북 강경일변도 정책에 대해 무용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번 5차 핵실험이 실시된 것은 지난 1월에 있었던 4차 핵실험 이후 8개월만이다. 4차와 5차 핵실험은 모두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벌어졌다. 남북 관계가 이미 얼어붙은 상황에서 나온 5차 핵실험과 달리 4차 핵실험은 관계가 호전되고 있는 도중에 발생했다.
4차 핵실험 당시 각 경제단체와 시민단체들은 핵실험을 규탄하는 논평을 발표하고 각각 향후 입장과 새로운 대북 전략을 제시했었다.
4차 때와 달리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전국경제인총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은 5차 핵실험에 대해 논평을 내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기업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지 않고 경제 관련 문제로 가져가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전경련 관계자는 "핵실험에 따라 기업이 받는 영향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 부분은 경제적 이슈가 아니기 때문에 공식 입장 발표는 아직까지 예정에 없다"고 말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연초에는 4차 핵실험과 관련해 성명을 냈었지만 이번에는 기존의 냉각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므로 별도의 입장을 발표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무역협회 물류·남북협력실 관계자 역시 "한진해운 사태 분석에 전 직원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탓에 아직까지 5차 핵실험이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분석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전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도 "지난 1월에는 남북고위급회담 등으로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된 가운데 예상치 못하게 4차 핵실험이 발생해 기업들의 충격이 컸다"며 "지금 상황은 4차 핵실험으로 악화된 남북관계의 연장선상에 있다 보니 기업들이 특별하게 동요하거나 달라지는 등의 움직임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개성공단에 입주한 업체들의 경우 5차 핵실험이 남북 관계를 더 악화시키고 개성공단 재가동에 추가적인 악재로 작용하면서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정부가 지난 8월 개성공단 입주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약속했지만 추가경정예산에는 해당 지원금이 편입되지 못했다"며 "입주기업과 협력업체들은 남북 관계가 호전될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었지만 이번 핵실험으로 그런 기대가 무너져 희망을 잃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시민단체 "개성공단 정상화 필요…대북 정책 수정해야“
시민단체들은 개성공단의 가동을 정상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남북 관계의 긴장 유무와 개성공단 운영을 별도로 취급해 개성공단을 '코리아 리스크'로부터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지난 4차 핵실험 당시 남북 관계 유지의 유일한 보루인 개성공단을 폐쇄한 것 자체가 적절하지 못한 조치였다"며 "폐쇄 조치는 지난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개성공단 운영을 재개할 당시 북측과 합의했던 것과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정부 정책에 따라 얼마든지 닫힐 수 있는 곳에는 중국 등 외국의 자본이 쉽사리 들어갈 수가 없다"며 "정부가 정경분리원칙을 지켜 외국 자본에게 개성공단의 리스크가 없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기업과 외국 자본이 개성공단에 함께 들어가야 공단이 반복적으로 폐쇄되는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핵실험 당사자인 북한에 대해서는 강한 비판이, 정부에 대해서는 그간의 대북 강경책이 전향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시민단체들은 정부에 남북 관계 회복을 위해 대화와 소통이 있는 정책으로 선회할 것을 요구했다.
참여연대는 지난 9일 성명에서 "체제 유지를 위해 주민들의 생명을 볼모로 잡고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의 핵무장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정부가 대북제재라는 실패한 정책을 반복하는 것은 북한에게 핵무기 능력을 더욱 고도화할 시간을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경실련 통일협회도 같은 날 성명을 통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국제사회를 비웃기라도 하듯 연일 핵실험을 강행하고 있다"며 "핵실험-제재-핵실험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오직 대화와 협상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원갑기자 kalium@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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