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훈기자] '잊힐 권리'의 제도화 논의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부터 잊힐 권리의 법제화를 위한 찬반 양론이 쏟아지고 당국의 법제화 검토논의가 시작됐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3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등에 따르면 현재 두 기관이 함께 운영하고 있는 '잊힐 권리 연구반'은 1년 넘게 가이드라인도 구성하지 못한채 여전히 의견수렴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잊힐 권리란 인터넷에 공개돼 있는 이용자 정보를 당사자가 원하지 않을 경우 향후 검색되거나 저장, 유통되지 않도록 하는 권리를 뜻한다. 지난해 5월 유럽사법재판소(ECJ)가 잊힐 권리를 정식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세계 각국에서도 잊힐권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판결 뒤로 구글은 EU회원국을 대상으로 정보 삭제 요청 페이지를 개설했다. 구글은 이후 유럽에서 삭제 요청을 받은 인터넷 접속 링크 35만여개를 삭제했다.
하지만 구글은 국내에서는 법률미비 등을 이유로 잊힐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구글코리아 관계자는 "삭제요청에 대한 조치는 EU 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구글이 새롭게 선보인 제도"라며 "유럽 판결은 개인의 잊혀질 권리와 대중의 알 권리 사이에서 구글에게 어려운 결정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지난해 6월 잊힐 권리와 디지털 유산 등에 대한 법제도 구축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KISA와 함께 전담 연구반을 구성한 바 있다.
이후 정기적인 안건을 통해 매월 연구반 모임을 열어 왔지만 지난 5월 '잊힐 권리 보장을 위한 세미나' 개최 이후 연구반의 구체적인 활동은 거의 없는 상태다.
방통위 관계자는 "법제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은 실제 실행이 가능한 부분이어야 하는데 이는 워낙 많은 사업자들이 영향을 받는 부분"이라며 "의견수렴 과정이 길어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연구반은 현재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포털과 관련 사업자들을 중심으로 의견수렴을 하고 있으며 추가 안건이 있을 경우에만 간헐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구반 간사 역할을 하고 있는 KISA측도 잊힐권리 문제는 신중한 결정을 할 수밖에 없어 시간이 더 걸릴 것임을 시사했다.
KISA 관계자는 "잊힐 권리에 대한 해법은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문제로 해외 법제동향을 지켜보고 속도를 맞춰가야 하는 부분도 있다"면서 "법제화를 위해서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방통위 종합감사를 앞두고 잊힐 권리 법제화를 위한 정책방안을 제언했다. 이에 따라 잊힐권리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당시 전 의원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잊힐 권리의 역할을 수행하는 임시조치 제도의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 의원은 특히 법제화를 위해서는 입법기관인 국회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전 의원은 미방위 산하에 잊힐 권리를 위한 소위원회 구성을 제안한 것.
그러나 소위원회 구성 논의 역시 뒤로 밀려난 상황이다.
전병헌 의원실 관계자는 "소위원회 구성은 당장 법제화 하자는 것이 아니라 찬반양론을 모두 검토하면서 심도깊은 논의를 하자는 취지"라며 "정기국회가 끝나면 다시 논의가 활성화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잊힐권리 보장 문제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사안이 분명하다"면서도 "현재의 상황은 '의견수렴' 단계라기보다 논의가 중지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성상훈기자 hnsh@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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