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 '빅 데이터 선거'가 뜬다


[빅데이터 선거] 美 오바마 캠프 비밀병기, 우리 정치권도 재조명

[조석근기자] 사례#1 대선이 열리는 2017년 12월. 군 입대를 앞둔 A씨는 정치에 철저히 무관심하다. 그런데 A씨에게 똑같이 군 입대 예정인 친구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한다. 현행 군 복무 기간을 3개월 이상 줄이겠다는 한 후보의 연설 영상이다. 후보의 선거캠프가 A씨처럼 군 입대를 앞둔 유권자들을 분류해 집중 유포한 메시지다.

사례#2 총선을 앞둔 2016년 4월. 경기도 한 아파트 단지 116동~118동에 복지를 강조하는 B 정당 후보 캠프의 유세차량과 선거운동원들이 하루가 멀다고 들른다. 이 3개동 거주자의 60%가 30~40대 직장인 맞벌이 부부, 그 중 절반은 3~5세 사이 자녀를 두고 있다. 그만큼 누리과정 예산을 비롯한 보육 이슈에 민감하다. B정당이 집계한 이곳 거주자들의 타깃지수는 70%. 평균 30%~40%의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다른 후보들에게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지역이다.

이른바 빅데이터 분석을 이용한 마이크로 타기팅 선거전략의 가상 사례들이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선거 필승카드였던 빅데이터가 국내 정치권에서 다시 회자되고 있다. 정치권의 사활을 결정할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바로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이다.

여야가 필승전략에 골몰하는 가운데 빅데이터의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 다가올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에서 빅데이터가 어떤 역할을 할지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빅데이터 기반 선거 운동, 美 정치판 흔들다

빅데이터란 인터넷과 모바일로 연결된 초 정보사회의 거대한 데이터 더미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각종 네트워크 기기를 통해 서버로 축적된 금융거래, 위치정보, 인터넷 접속기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수많은 정보들을 분석해 개별 사용자의 라이프 사이클과 소비패턴, 정치성향 등 매우 구체적인 정보들을 파악한다.

빅데이터는 전 세계 IT·금융 서비스업계를 필두로 마케팅 혁신의 대표적인 영역으로 자리잡았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지역과 연령, 성별, 직업 등으로 구별된 특정 집단과 개인의 특성들을 낱낱이 파악해 맞춤형 프로모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012년 오바마 캠프의 외뿔고래(narwhal) 프로젝트는 이같은 빅데이터 분석을 가장 효과적으로 선거에 이용한 사례로 손꼽힌다. 당시 오바마 캠프는 최고기술책임자(CTO) 하퍼 리드를 필두로 IT업계 전직 CEO, 통계학자, 수학자, 행동과학자, 소프트웨어 전문가 등 300명의 엔지니어팀을 풀가동했다.

그 핵심 작업이 빅데이터 분석이다. 1억6천만명의 미국 유권자들의 개별 정보를 분석해 이들의 정치 성향과 선호 공약, 민감 이슈를 파악하는 작업이었다.

당시 오바마 캠프는 이같은 분석을 토대로 유권자 개인별로 오바마와 그 소속 정당인 민주당 지지 가능성을 지수화했다. 이른바 타깃지수다. 특히 공화당 지지자와 부동층 유권자들 가운데 타깃지수가 높은 쪽을 분류해 집중적으로 정책과 공약을 홍보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일반적으로 선거에서 판세를 좌우하는 무당층(swing voter)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를테면 흑인과 히스패닉 빈곤층은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인 경우라도 타깃지수상 공화당보다 민주당으로 기운다. 미국의 고비용 의료체계 최대 희생자인 이들에게 방문, 전화, 이메일, 문자메시지 등 모든 채널을 가동해 오바마 보건정책의 성과를 강조하는 식이다. 심지어 맥주 브랜드 밀러를 즐겨 찾는 경우는 타깃지수가 공화당, 기네스는 민주당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통계학적으로 알아내 지지유세에 참고했다.

그 결과 오바마 캠프는 후원금 모금과 공약 개발, 자원봉사자 모집, 선거인단 확보, 투표독려 등 선거전략의 모든 측면에서 상대방 캠프를 압도했다. 수억달러의 TV광고와 대규모 집회로 상징되는 기존 물량전 위주 선거전략을 표적 위주의 정밀타격 전략으로 뒤바꾼 점에서 선거공식의 패러다임을 전환시켰다는 평가다.

◆정보 갈증 여의도, 2016년 총선은 빅데이터 실험장

한국은 세계적인 IT 인프라를 갖춘 국가다. 케이티(KT)의 추산으로 국내 인터넷 인구는 2015년 2월 기준 4천100만명, 스마트폰 인구는 4천만명이다. 사실상 영유아와 노년층을 제외한 전 국민으로 이들이 SNS를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만 매일 수억 건이다.

행정 영역에서도 빅데이터는 더 이상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지자체들 중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정책을 개발하는 사례가 흔히 등장한다. 서울시가 지난해부터 시행한 올빼미 버스가 대표적이다. 이통사로부터 입수한 심야시간대 고객 위치정보를 활용해 심야 버스노선을 구축한 것이다. 정부가 정부3.0을 기치로 각 부처의 행정정보를 공개하고 있는 점도 빅데이터 활용을 통해 행정 서비스의 질을 높이자는 취지다.

부산 해운대구청장 출신인 새누리당 배덕광 의원은 국회 내 빅데이터 관련 토론회에서 "주민들 생활의 질적인 변화를 정밀히 포착하자는 취지로 구청장 시절 청사 내 빅데이터 조직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다"며 "예측가능한 행정을 해보자는 차원에서 공무원들도 관심이 큰 분야"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총선과 대선이라는 운명의 시간이 다가온 여의도는 어떨까.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마이크로 타기팅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오히려 당장의 '스몰데이터'도 절박하다. 선거법상 엄격한 규제로 실제 선거운동에 활용할 유권자 전화번호 구하기도 만만찮은 상황이다. 정부와 기업, 지자체가 빅데이터 분석에 집중하는 추세이지만, 정치권은 극심한 정보갈증에 허덕이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후보들은 2주 가량의 선거운동 기간 중 1억3천만원~1억5천만원의 법정 선거비용으로 선거를 치른다. 그러나 소속 정당 당원들의 개인정보가 기재된 정당명부를 제외하면 해당 선거구 유권자들의 전화번호, 이메일, 거주지 주소 등 가장 기본적인 선거운동 데이터도 접근하기 어렵다. 선거법과 개인정보법상 그 수집이 엄격히 금지되기 때문이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실제 선거판에서 참모들은 동창회, 교회, 조기축구회, 재개발조합, 학부모단체, 상가회를 돌며 회원명부 구하기 바쁘다"며 "유세차 리스비와 사무실 유지비도 빠듯한 마당에 축구선수가 경기는 제쳐두고 직접 잔디 심고 골대 세우는 거다. 무슨 민심이 눈에 들어오겠나"라고 토로했다.

지자체장, 시·도의원의 경우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같은 전국단위 선거라도 국회의원보다 더 적은 돈과 인력으로 선거전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앙선관위의 6·4 지방선거 대상 조사에서도 출마자들은 유권자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를 가장 필요한 정보로 꼽았다. 뒤집어 말하면 후보 홍보를 위한 문자메시지 발송도 결코 쉽지 않다는 뜻이다.

정치컨설턴트 국민대 정치대학원 김학량 교수는 "선거 출마자들 중 역대 선거결과 같은 중요 자료들을 어디서 구할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제한된 기간과 비용 아래 극심한 정보 부족 속에서 치르는 지금 선거는 결국 돈과 조직을 갖춘 현역 의원들에게만 유리한 판"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한계는 정당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해당 선거구의 특성과 정세를 분석하고 직업·연령·소득 등 다양한 계층별로 정책과 공약을 개발해 홍보와 유세, 모금 등 구체적 선거전술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바닥 민심은 핵심 요소다. 그러나 행정자료와 여론조사 같은 일반적인 데이터로 실제 민심을 파악하기란 버거운 현실이다.

그러나 정치컨설팅업계는 빅데이터 기술을 접목한 SNS 여론조사, 선거구 정밀분석 등 솔루션을 앞세워 정당과 예비 출마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최근 중앙선관위와 국회 입법조사처 등 선거 관련 기구들이 빅데이터 제도 개선을 위한 공론화 작업에 나선 것도 정치권의 극심한 정보갈증을 해소하는 차원이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2012년 미국 대선 이후 국내에도 우후죽순 생긴 빅데이터 업체 중 당 차원에서 직접 접촉한 곳만 40여군데나 된다"며 "그만큼 정당 입장에서 실질적인 민심을 파악하기 위한 데이터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컨설팅업체 빅토리랩 고한석 대표는 "빅데이터 분석은 결국 돈과 조직 위주의 현재 선거판을 과학적 선거전략과 선거운동이 통하는 곳으로 변화시켜보자는 취지"라며 "이용 가능한 모든 선거수단이 동원될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내년 총선이 빅데이터 선거의 중요한 실험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석근기자 feelsogoo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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