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배기자] 한국 대표 보안기업으로 꼽히는 안랩이 이어지는 '소송설'로 골치 아프다. '사실과 다르다'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소문은 잠들지 않은 채 안랩을 괴롭히고 있다.
'지난 3·20 전산망 대란과 관련해 농협이 안랩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고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결국 소송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소문의 골자다. 물론 여기에는 '안랩 책임론'도 전제돼 있다.
안랩은 이를 전면 부인한다. 지난 4일 안랩은 농협이 손해배상 요구를 하고 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손해배상금액을 통보 받은 바 없고, 구체적인 피해보상 금액을 제시 받은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사고 직후 농협과 사후 대책에 대한 포괄적인 논의가 오간 적이 있을 뿐 피해보상과 관련해 문서나 공문, 이메일 등을 통한 공식적인 전달이나 협의는 일절 없었다는 게 안랩의 입장이다.
농협도 이러한 사실을 일부는 인정하고 있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사실을 보면 지난 18일 농협중앙회 국정감사에서 농협은행 전태민 IT본부장은 "현재 공식적으로 안랩에 손해배상을 요구한 적은 없으나 직접적인 피해액 50억 원에 대해서는 알려줬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문은 확산될 뿐 잠잠해지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고 보니 일각에서는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냐'며 의구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논란이 가중되는 시점이 국정감사 기간과 맞물려 있고 쏟아져 나오는 언론보도 대부분이 당사자인 '농협발(發)'이라기보다 '여의도발'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국정감사장에서 나오는 말들은 신뢰를 더 떨어 뜨린다. 질문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최악의 경우'라는 단서를 달고 소송 진행 여부를 묻는 질문이나 '농협이 소송을 안하면 업무상 배임'이라는 의도적 지적과 압박은 무심코 흘려버리기 어렵다.
안랩은 소송설과 더불어 이번 국장감사에서 '판교테크노밸리 입주가 임대장사가 아니냐'는 억지 주장에도 직면해야 했다. 특정 의원이 안랩의 기술력을 도마 위에 올려 반박과 재반박의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것은 기본이다.
안랩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 '안철수'. 때로 해커보다도 무서운 정치인들은 국회에 있는 '안철수'를 거론한다. 안랩에 책임을 넘기고 이미지를 훼손하면 정치인 '안철수'에 게도 흠집이 날 것이라는 점을 철저히 계산한 듯하다.
한 보안업계 관계자는 "안철수=안랩=V3로 이어지는 고리를 통해 이미지 훼손을 계속할 수 있지 않겠냐"고 하고 다른 관계자도 "해커에게 지울 책임을 보안 회사에게만 전가하는 것도 문제"라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물론 안랩에게 책임이 없다는 소리가 아니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안랩에 귀책 사유가 있다면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귀책 사유를 판단하는 어려운 과정에 법정이 개입하는 것도 불가피하다.
다만 그 과정이 당사자인 안랩과 농협을 통해 이뤄지지 않고 다른 곳에서 더 불거지는 것이 아쉽다. 3·20 전산망 사고에 대한 명확한 원인과 귀책 사유를 판단하는 일은 정치인들의 수사가 아닌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다.
정작 당사자인 안랩과 농협은 이번 문제가 소송 없이 잘 마무리되기를 바랄 수 있다. 소송으로 이어질 경우 수 년 간 법정 다툼에 따른 소모전을 감수해야 한다. 안랩이 농협에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솔루션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손해를 가름하는 방안도 가능한 해법일 수 있다.
안랩은 고객사를 상대로 한 법정 싸움이 다른 고객사의 눈에 어떻게 비춰질 지 부담스럽다. 농협도 이번 사고의 피해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소송을 제기할 경우 '더 큰 피해자'인 농협 고객들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 편치 못하다. 잘못하면 두 회사 모두 피해를 입은 일반 대중에 대한 대책 강구 없이 책임 공방만 벌인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볼 때 과연 소송은 누가 원하는 것일까. 안랩도 농협도 아닌 정치권이 소송을 원하는 것은 아닌가.
안랩(구 안철수연구소)에서 안철수라는 이름은 지워졌을지 모르나 안랩은 여전히 안철수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국배기자 verme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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