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발자가 질문했다.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소니가 절대 스스로 시작할 수 없었던 일 중 하나가 오프라인 유통망을 잠식할 온라인 유통망을 구축하는 거였죠."
아이폰과 PSP의 길은 그 지점에서 갈렸다.
단말기 부문, 콘텐츠 부문을 모두 가지고 있던 소니는 기술에서 뒤처진 것이 아니다. 당시의 수익모델에서 돈을 벌어들였기 때문에 오프라인 유통을 깨부수는 자기혁신까지 미치지 못한 것이다.
이 질문을 던진 개발자는 지난 12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월 매출 20억원의 스마트폰게임을 탄생시킨 JCE의 신재찬 모바일사업부 PD다. 신재찬 PD는 과거 와이브로 휴대형 게임기 사업팀에서 일하던 당시 온라인 콘텐츠 유통망이 가진 파급력을 확신했다. "해외파트너가 그 게임기가 PSP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냐고 질문했을 때 주저없이 온라인 콘텐츠 유통이 오프라인을 이길 수 밖에 없다고 대답했죠."
그로부터 약 6년이 지난 현재, 모바일 분석 전문기업인 플러리는 지난 2011년 iOS와 안드로이드 앱 연간 다운로드 건수가 250억건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 2009년 국내 시장에 첫 발을 들인 아이폰은 국내 IT업계 전체를 뒤흔들었다.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는 아이폰이 도입된지 만 22개월만인 지난 2011년 10월 2천만명을 돌파했다. 스마트폰 인구는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 5천만명 중 40%를 차지하고 있으며, 비즈니스 인구 2천800만명 중에는 80%가 이미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있다.
파급력은 게임업계로까지 곧바로 이어졌다. 2012년 새해 첫 날, 한 온라인 게임회사는 자사의 스마트폰 게임이 일일 접속자수 40만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월 접속자수로 단순환산하면 1천만명이 넘는 결과로 웬만한 온라인게임 포털 방문자수를 뛰어넘는 수치다.
모바일게임 시장의 성장잠재력 앞에 국내 게임업계도 혁신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은 지난 2일 사내 시무식을 통해 "현재 (회사가 처한) 상황은 아프리카 사막 한가운데에서 물을 찾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코끼리 떼와 같다"고 비유하며 "환경이 급변하고 생활 패턴이 모바일 시대로 완전히 넘어가고 있다. 게임을 PC에서만 단순히 즐기고 마는 단계를 넘어 즐거움을 서로 연결해 주고, 나아가 우리의 기술이 학습 등 기능적 측면으로까지 확장되는 플랫폼 단계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넥슨 김정주 회장 역시 한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매일 두려워 잠이 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PC를 외면하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열광한다. PC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확 줄었다"며 "10여 년 전 소니가 했던 고민을 지금 우리가 한다"고 말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모바일게임 개발자를 채용하기 위해 수개월간 모집공고를 내도 한 명도 오지 않아 결국 모바일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재공고를 낸 적이 있다"며 "불과 2~3년 전 일인데 최근에는 모바일게임이 국내 IT인력을 모조리 흡수하는 블랙홀이 된 것 같다"며 업계의 변화상을 전했다.
지난 2011년 한 해 국내 게임업계는 청소년의 심야시간 게임 이용을 제한하는 '셧다운제'를 비롯해 각종 규제와 싸움을 치렀다. 확률형 아이템의 우연성, 고스톱·포커류 게임의 게임머니 간접충전, 청소년이용가 게임의 아이템 현금거래 문제 등이 게임산업의 주요 의제로 부상했다. 뒤집어 보면 이 같은 규제와 전쟁은 포화상태에 이른 국내 온라인게임 이용자층과 둔화된 시장성장성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시야를 조금만 넓히면 게임업계가 집중해야 할 싸움은 전방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당장은 모바일게임이다. 지난해 11월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안드로이드 마켓의 게임 카테고리가 모두 열렸다.
그러나 이조차 혁신이라기보다는 변화에 따라가는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국내 게임업계는 애플과 구글이 주도한 자기파괴적 혁신의 판 위에서 생존법을 고민하고 있는 과정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애플이 신기술로 선보인 음성인식 서비스 '시리'와 온라인 유통망을 이용한 콘텐츠 서비스 '앱스토어'와 유사한 서비스를 5~6년 전에 SK텔레콤도 고민한 적 있다. 그러나 '시리'와 '앱스토어'는 이들 업체에서 나오지 않았다. 자기파괴적 혁신을 감수할 수 있는 기업만이 애플과 구글이 주도하는 현재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고 그 이후의 주도권까지 넘볼 수 있을 것이다.
박계현기자 kopil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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